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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하연 Jan 16. 2022

한 끗 차이가 만들어낸 세종의 큰 그림

훈(訓)민정음은 왜 교(敎)민정음이 아닐까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누구나 알고 있는 훈민정음(訓民正音)의 뜻이다. 가르칠 훈, 백성 민, 바를 정, 소리 음. 표면적으로 보면 그렇게 해석이 된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가르친다는 것을 표현할 때 가르칠 교(敎)를 쓰지 않나? 왜 훈(訓)이라고 했을까?’ 학교, 교재, 교사. 모두 가르칠 교(敎)를 쓰는데, 백성을 가르친다면서 왜 훈(訓)을 쓰는 걸까?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했던가, 세종이 꿈꿨던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하며, 훈(訓), 민(民), 정(正), 음(音). 글자 각각에 담긴 의미를 찬찬히 살펴보기로 했다. (글자 해석은 네이버 한자 사전을 참고하여 구성함)    



  


세종은 왜 훈민정음의 첫 글자를 ‘훈(訓)’이라고 한 것일까?

‘가르칠 교(敎)’는 효 효(爻), 아들 자(子), 칠 복(攵) 자가 결합하여 선생이 학생에게 도덕, 규율을 가르치는 형상을 띤다. 학생들에게 어떤 일을 시키고, 명령하고, 전수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가르칠 훈(訓)’은 결이 다르다. 말씀 언(言)과 내 천(川)자가 결합한 이 글자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자연스럽게 흐르듯 말의 흐름이 자연스럽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에서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은 ‘이치에 맞다’라는 뜻으로, 세종은 훈민정음을 통해 백성에게 일방적인 가르침을 주기보다는, 이치를 스스로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사람 인(人)이 아닌 ‘백성 민(民)’ 자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당시, ‘사람 인(人)’은 양반 사대부에게만 쓸 수 있었던 제한적인 단어였다. 여자, 노약자, 어린아이, 천민 등은 사용할 수 없었던, 그들만이 누렸던 특권이었다. 그에 반해 백성 민(民)은 모두를 포함하는 글자였다. ‘백성 민(民)’은 송곳으로 사람의 눈(目)을 찌르는 모습으로, 노예의 눈을 멀게 하여 복종하도록 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지금 보면 참 가슴 아픈 글자지만, 세종이 다스리는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 글자이기도 했다.    

  



“임금과 신하가 한 몸이 되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도와야 한다.

나는 덕을 닦는 데 힘을 쓰고, 신하들은 충성스러움과 엄숙함을 장려하여, 이 백성들을 활기차고 평화로운 시대에 오르게 하면, 그 어찌 위대하지 않겠는가. 내가 하늘을 대신하여 인민을 사랑하매, 정성스럽게 경계하는 마음을 두어, 마음 씀씀이가 적은 사람들을 내 옆에 두지 않으며, 필요 없는 비용으로 나라에 재력에 피해를 주지 않고, 형벌로 인해 교화에 앞세우지 않고, 넘치는 정벌로 군사를 수고롭게 하지 않겠으니, 대들은 나의 지극한 이 뜻을 본받아 그 직임에 부응토록 하라.” (세종 7/7/25)

 



이렇게 세종은 人과 民 모두를 지극히 사랑하는 왕이었다.     



정(正)과 음(音)도 마찬가지다.


'바를 정(正)’은 ‘정당하고 바람직하다, 올바르다’라는 뜻으로, 사람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를 지닌 글자다. 하나(一)밖에 없는 길에서 잠시 멈추어서(止) 살핀다는 뜻을 합하여, 말을 할 때 신중해야 한다는 태도를 이야기한다. 또한, ‘소리 음(音)’은 ‘글 읽는 소리, 말, 언어, 음악’이라는 뜻이다. 말씀 언(言)에서 출발한 이 글자는, 음악과 말을 구별하기 위하여 言에 획을 추가했다. 같은 뜻이지만 다른 ‘소리 성(聲)’ 자는 귀 이(耳)를 포함하며, 풍류와 음악에 더욱 집중되어있는 글자다. 세종은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닌 말로써 표현할 수 있는 소리를 창제했기에 音이라는 한자를 선택했다.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情)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28자를 만들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할 따름이니라.” - 세종 28/9/29 훈민정음 어제 서문     




세종은 백성들이 품은 뜻을 情이라 표현했다. 마음과 사랑, 이치와 정성이라는 뜻이 담긴 ‘情’은 백성이 하고자 하는 생각뿐만 아니라 그들이 느끼는 감정까지도 헤아리고 있었다. 이렇게 그는 글자를 하나 하나 선택함에 있어 허투루 하지 않았다.    

  

한 끗 차이는 정말 종이 한 장처럼 작은 차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敎를 쓰든 訓을 쓰든 ‘가르치다’라는 의미는 같아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세종은 보이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았다. 잘못된 길을 가는 백성을 올바른 방향으로 가르쳐 고치기 위한 것이 아닌, 어린(어리석은) 백성이 이 28자를 통해 이치를 자연스레 깨우치기를 바라며 훈(訓), 민(民), 정(正), 음(音)이라는 글자를 택했을 것이다. ‘훈민정음을 통해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꿈을 꾸고 이룰 수 있는 시대’를 꿈꾸었던 세종의 큰 그림. 이 그림은 그와 더불어 글자를 지켜온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다.  





* 이미지 출처 http://mbiz.heraldcorp.com/view.php?ud=20141201000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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