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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Nov 09. 2023

가을과 겨울 추억을 기록하며, 그리운 베이커리와 함께

타향살이 2020년 기록

어제부터 스마트폰에 저장된 수천 개의 사진을 정리했어요. 그러다 발견된 한 장의 사진.

바로 코스트코에서 판매하는 퀸아망 베이커리 사진이었어요. 베이커리 이름이 생소해서 빵을 구입하고 사진을 찍어뒀었는데 세상에 4년 만에 이 사진을 보게 되었어요.

천안에서는 코스트코가 가까웠어요. 바로 옆 동네였거든요. 심심하면 아이 아빠가 놀러 가자고 했으니 새로 나온 제품을 매번 마주하게 되었죠. 사실 대형 마트를 가게 되면 하루 생활비가 훌쩍 넘기는 장 보기가 부담스러웠어요. 될 수 있는 대로 참고 참다 가자고 말하면 불같이 화냈던 아이 아빠가 이 빵 사진을 보니 기억나네요.

퀸아망 베이커리를 두어 박스 사서 냉동실에 소분해서 넣어두면 배가 고프거나 간식으로 먹기 좋았던 간식이었어요.

부산에는 코스트코가 너무 멀어요. 수영구에 있다 보니 제가 사는 곳과 거리가 상당히 멀어요. 어떨 때는 아주 잘된 일이라고 칭찬하고 위로해요. 대형마트를 가게 되면 못해도 10~20만 원은 써야 하니까요.

집 근처 일반 마트도 잘 다니지 않게 되니 아주 잘된 일이지만 한 번씩 천안 맛이 그리운 날이면 퀸아망을 기억하게 되네요.

버터가 가득 채워져 있었고 달콤한 시럽으로 입맛을 살아나게 한 퀸아망. 시럽인지 슈가인지 알 수 없지만 고소 달콤한 퀸아망을 잊을 수 없어요. 언젠가는 퀸아망을 한 번쯤 마주하게 되겠죠.

과거를 회상하며 스마트폰에 있는 사진을 정리합니다.


코스트코 퀸아망 베이커리

엄마도 좋아했던 베이커리인데요. 한 번씩 물어봐요. 

"그때 코스트코에서 산 빵 그거 맛있었는데" 추억을 회상하는 듯했어요.

추억을 회상하는 그런 음식 있으세요. 그때 그 감정, 느낌, 풍경, 주위 사람들을 기억해서 글을 써보세요. 새로운 향기와 맛을 덧 입힐 수 있어요.



2020년 가을 천안 살이

천안에서 일을 수습하러 2020년 9월에 올라갔어요. 10월쯤 서울에 위치한 병원에 가야 했어요. 염증 수치와 각종 검사를 하기 위해서이고 몇 달 복용해야 할 약을 처방받기 위한 거지요.

이때가 코로나로 조심해야 할 때라 부산에 있는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병원으로 향했던 날이었어요. 천안에서 srt 타면 수서역까지 30분이면 가거든요. 근데 부산에서 수서역까지는 두 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가 꽤 차이나죠.

천안에서 서울에 위치한 병원 가는 날은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다녔는데 지금은 다소 무거워요. 하루 아니면 이틀 시간을 내고 가야 하거든요.



서울 아산 병원

2020년 가을, 

지금 이 계절이었어요. 이젠 추억 상자에 고이 모셔두려고 기록해 둡니다. 

'2020년 가을 나 뭐 했지!' 기억나지 않을 때 나만의 공간인 이곳을 검색하면 나오니까요. 



천안 가는 길

부산에 내려온 지 일주일 만에 집 매도 체결하기 위해 천안으로 올라갔어요. 이때 부산 날씨는 매섭게 춥기만 했는데 천안 오니 부산이 왜 추웠는지 알 수 있었어요.

새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거든요. 마지막 눈이구나 직감으로 알 수 있었어요. 더는 새하얀 눈을 보지 못할 남쪽 지방에서 살아야 하니까요. 여니를 데리고 오지 못해 아쉬웠어요.

빈집에서 부동산 중개인 두 명과 법률 대리인 그리고 매수자와 매도인 그리고 전세 세입자까지 다 모이니 정신이 없었던 날이었어요.

모든 일을 끝내고 저는 법률 대리인과 함께 다른 업무를 마지막으로 마치고 천안 아산역에 도착해 부산행 고속 철도를 기다리며 눈을 한없이 구경했어요.



천안 가는 길

시원 섭섭했던 천안살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울컥했어요.

다사다난했던 천안살이, 즉 충청남도살이 4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가는 현실을 마주하니 울컥했죠.

어차피 부산에서 살 걸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와서 힘들게 고향으로 돌아가나 싶었어요.

하지만 인생은 그렇듯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가는 건 막을 수 없었어요. 강물이 흐르듯 내 인생도 강물처럼 흘러야 알게 되고 제자리를 찾는 거 같아요.



부산 내려가는 길

넋 놓고 눈을 구경하다 딸에게 영상통화가 옵니다.

"언제 와 엄마"라고 물어보는 딸에게 곧 기차가 올 거라고 말하면서 눈이 내리는 천안을 영상으로 보여줬어요.

딸은 자신도 눈 보고 싶은데 아쉽다고 말했어요. 겨울에 서울로 놀러 가자 약속했습니다. 약속은 아직 지키지 못했어요.

겨울마다 아픈 딸, 이런저런 상황으로 겨울보단 가을에, 여름보단 봄에 서울을 찾다 보니 겨울 서울은 한 번도 찾지 못했네요.

병원 가는 날이 겨울이면 좋으련만. 가을이라서 가을 서울만 구경하고 와요.



반지

이뻐서 샀던 스와로브스키 큐빅이 박힌 반지를 껴봤어요. 약간 커서 중지에 꼈는데 그래도 컸어요.

겨울 햇살에 반짝이는 반지를 벗 삼아 피곤한 몸을 기차에 실었어요. 2020년 천안을 마무리한 일을 기록합니다.

더는 천안에 갈 일이 없어요. 천안살이 추억은 그리 많지 않지만 소중하네요. 어린 여니를 키우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타향살이.

타향살이 또 할래 물어보면 아니라고 말할래요. 정말 외롭고 쓸쓸했던 타향살이였거든요. 

타향살이하다 보니 실보다 득이 많았어요. 바다의 귀함도 알게 되었고 내가 싫어했던 엄마 동네도 아쉬웠어요. 늘 다니던 남포동 거리이며 겨울이면 길거리에서 호호 불어 먹던 호떡도 그리웠어요.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 바다를 품은 내 고향 내 동네가 타향살이로 인해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졌어요.

하다못해 부산 버스가 그리울 정도였으니 말이죠. 딸의 고향은 충청남도 아산이지만 삶의 터전을 엄마 고향에서 시작하니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해줘요. 이젠 소소한 타향살이 추억을 조금씩 정리해 봅니다. 


천안 가는 길
천안 가는 길
부산 내려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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