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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May 02. 2019

가끔은 너에게 편지를 써보렴

다른 시기의 너에게 편지를 써보는 것 말이다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엄마의 글을 읽는다면, 그때까지 여전히 ‘편지’라는 단어가 존재하고 있을지 가끔은 궁금하다. 


편지(便紙)의 지(紙)는 종이를 뜻한다. 엄마에게 편지란 종이에 쓰는 글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다양한 디자인의 종이에 알록달록한 색깔의 펜으로 무언가를 적은 편지를 친구에게 슬며시 건네기도 했다. 손발이 오그라든다며 지금은 다시 읽어보기를 거부하지만, 네 아빠는 엄마에게 자주 종이에 편지를 적어주곤 했단다. 편지는 종이에 쓰는 글이다. 그리고 대개 연필보다는 펜으로 적기 마련이지. 그러다 보니, 글을 쓰다 틀릴 경우 혹은 삐뚤어지게 쓸 경우 화이트로 수정을 하기에는 영 멋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한 글자 한 글자 신중하게 써야 하지. 그리고 생각을 하면서 문장을 완성해야 하기에, 시간도 제법 걸린단다. 하지만, 편지를 쓰는데 걸리는 시간이 낭비라고 생각되거나 아깝다고 생각되는 경우는 없었다. 편지를 쓴다는 것은 기꺼이 상대방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겠다는 의미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미 엄마도 짧은 글과 당장의 피드백에 익숙해져 가고 있으니, 어쩌면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편지’라는 글자가 ‘글의 역사’와 같은 주제에서나 접할 수 있는 유물이 되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가끔은 너에게 편지를 써보라고 말하고 싶다.


니체의 가까운 친구 중 한 명으로, 작가이자 작곡가인 하인리히 쾨젤리츠는 니체에게 쓰는 편지에서 자신의 직업에 대해 이렇게 말을 했다지. “음악과 언어에 대한 나의 생각들은 펜과 종이의 질에 의해 종종 좌우되지." 종이를 쓰는 시대에는 종이가 이렇게나 중요했나 보다. 지금은, 어떤 어플이나 어떤 플랫폼에 쓰느냐가 중요한데 말이지. 시대가 변한 만큼, 편지를 쓸 때 꼭 종이에 쓰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어디라도 상관없으니, 언제든 다시 읽어볼 수 있는 곳에 편지를 써보았으면 좋겠다, 진지하게.


그런데 편지를 너에게 쓰라니, 좀 웃기지?

엄마는, 다른 시기의 너에게 편지를 써보라고 말하는 것이다. 


시기는 네가 정하기 나름이다. 


어제의 너에게 쓰는 편지도 좋다. 어제는 어떤 실수를 해서 속상했던 하루였을 수도 있고, 무엇인가를 해내서 인정받고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생긴 하루였을 수도 있다. 그런 너를 토닥토닥해주고 용기를 주고 칭찬해주는 그런 편지를 써보자.


출근하기가 귀찮다 못해 두려운 내일의 너에게 쓰는 편지도 좋다. 처음에 왜 이 회사를 선택했었는지, 어쩌다가 이 일을 하게 되었었는지, 지금은 왜 내일이 두려워졌는지를 쭈욱 적어보자. 그럼에도 출근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면 “그래도 해보자”라는 내용의 편지를 쓰게 될 테고,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다른 용기를 품어보자는 내용의 편지도 좋다.


10년 뒤의 너에게 쓰는 편지도 좋다. 네가 꿈꾸는 10년 뒤의 너의 모습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을 이룬 너에게 편지를 써보는 것도 좋겠다. 그동안 네가 얼마나 노력하며 살았는지, 그간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었을 테지만 분명 그것을 이겨냈을 미래의 너에게 자랑스럽다고 말해주는 그런 편지도 좋다. 꿈꾸었던 10년 뒤의 모습을 생각해 보는 시간 조차 너무 행복할 것 같다.


너에게 선물처럼 다가올 미래의 아이에게 써보는 편지도 좋다. 편지를 쓰는 시기에 아이가 있고 없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편지로 써보는 것도 좋겠다. 그 편지에는 아마도, 너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네 삶의 교훈들이 담겨질 것이다. 소중한 사람한테 쓰는 편지일 테니 말이지.


그리고 버리지 말고, 나중에 꼭 다시 읽어보렴. 내일 읽어도 좋고, 1년 후에 읽어도 좋다. 편지의 내용을 마음에 새기렴. 편지의 내용은 결국 네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였을 테니 말이야. 너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사람은, 바로 너란다.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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