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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Nov 22. 2018

숨어있는 신들을 찾아라

나는 숨바꼭질보다 다른 놀이를 더 좋아한다. 그 놀이에서는 한 사람이 숨고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찾아 나선다. 숨은 사람을 찾아낸 사람은 그 옆에 같이 숨는다. 그러다 보면 작은 공간에 빼곡히 함께 숨게 된다. 얼마 안 가서 누군가 킥킥거리고, 또 다른 누군가 웃음을 터뜨리고, 그러다 모두 들켜버린다. 중세의 신학자들은 신을 숨바꼭질과 비슷하게 ‘숨은 신’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나는 신이 이 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놀이에서는 함께 모인 사람들의 웃음소리 때문에 들킨다. 신도 이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발견되리라고 생각한다.

-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너를 만날 날을 기다리며 꿈꾸던 세상은 천국같이 환하고 웃음이 넘치는 밝은 곳이었다. 하지만, 너를 직접 품에 안은 순간 엄마가 꿈꾸던 천국은 없었다. 그저 너만 환하고 너만 밝았다. 이렇게 작고 어린 너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갑자기 모든 것을 위험하게 보이게 했다. 당장 우리 집만 해도 모서리가 뾰족한 가구가 너무나도 많았고, 유독 귀에는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소식만 깊게 박혔다. 모든 부모들이 그럴 것이다. 자식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쁨과 동시에 내가 겪었던 고민이나 고생을 경험하지 않게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공존할 테다.


‘세상이 몰래 널 사랑하고 있어’라는 제목의 에세이 책이 있단다. 사실, 이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엄마는 이 제목이 너무나도 좋다. 세상이 몰래 엄마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지금까지 널 이렇게 키울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세상이 몰래 엄마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너를 만날 수도 없었겠지. 엄마의 마음 속을 들락날락하는 고민들이 결국에는 해결이 된 것도, 어쨌든 누군가의 도움 덕분이었고 즉 세상이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에 받은 도움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대놓고’ 엄마를 사랑해주면 정말 좋으련만,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을 함께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아쉽게도 ‘몰래’ 사랑해 주는 것 같다. 


너 역시 세상이 몰래 주는 사랑을 받고 살고 있단다. 엄마는 마음 졸이며 세상을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지만, 네가 잘 자라고 있다는 것 자체가 세상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다.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은 특별한 혜택을 받아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잘 먹고, 잘 놀고, 많이 웃고. 이것 외에 더 바랄 것이 있을까 싶다. 공부를 잘하고, 뛰어난 결과를 내고는 다 잘 먹고, 잘 놀고, 많이 웃고를 토대로 이룰 수 있는 것들이다. 세상의 사랑을 받고 있는 너는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그런데 지금 받고 있는 사랑 외에 더 큰 축복을 받을 수도 있겠구나. 네가 ‘숨은 신’을 찾는다면 말이다.


엄마가 어린 시절,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긴 제목의 책을 집 책장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엄마가 어릴 때라 이 책을 읽어볼 생각이 들지도 않았고, 그냥 난 이제 중학교를 들어가는데 유치원에서 배운 것이 제일 중요하다니 뭐 이런 제목의 책이 다 있나 싶었지. 그런데 아직도 서점에서 판매를 한다는 것이 흥미로워 슬슬 넘겨보다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했지.


중세의 신학자들은 신을 ‘숨은 신’이라고 표현했다는 것 그리고 저자인 로버트 풀검은 특별한 놀이를 즐겼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숨바꼭질의 반대 버전이라고나 할까. 한 사람이 숨고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찾는다는 설정. 숨은 사람을 찾아낸 사람은 ‘찾았다!’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옆에 같이 숨는다는 놀이. 그러다 보면 결국 한 공간에 많은 친구들이 숨어 있게 되고, 이 재미있는 상황에 한 친구가 웃기 시작하고, 웃음은 전염되고, 그렇게 다 들켜버린다는 어린 아이다운 놀이. 머릿속에서 이 장면을 상상해보면 볼 수록, 이 놀이는 아이들만 가능한 놀이다. 어른이라면 놀이 방법만 들어도 피식거리며 시도 조차 해보지 않을 법하니 말이다. 그런데 로버트 풀검은 신도 같은 놀이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아이 같은 놀이를 말이다.


유치해 보이는 놀이여도 신이 이 놀이를 즐긴다면, 그것은 신이 유쾌한 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살금살금 다가와 놀래키며 잡는 것이 아니라 웃음으로 발견되니 말이다.


신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혼자 독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이기에 더 신나는 일이다. 신을 발견한다는 것은 함께 같이 숨고 같이 찾아야 더 즐거운, 함께하는 게임같은 것이거든. 잡혔다고 얼굴 붉히며 억지로 술래가 되는 놀이에 웃음이 있을 리 없다. 술래도 숨는 사람도 모두 즐길 수 있는 놀이에 웃음보가 터지게 마련이지. 


이렇게 들켜버리는 신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너무 많아서, 한 분 한 분 찾는 과정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 너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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