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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May 12. 2023

너도 저렇게 될 수 있는거야?

다시 한번, 희망을 가져볼까 한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스쳐 지나가는 거울에도 둥그스름해진 턱선과 푸석해 보이는 피부가 눈에 띈다. 속상하다. 그래서 젊어지겠다는 것은 욕심이고, 건강한 피부를 갖겠다는 다짐으로 5월을 시작했다. 내가 20대 때부터 이렇게 관심을 갖고 내 얼굴을 대했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 싶을 정도로, 얼마전부터 거울을 오래 들여다보면서 조금씩 공을 들이기로 했다.


내 얼굴이 이렇게 생겼구나 새삼 느낀다. 내가 알던 예전의 모습과 변해버린 부분에 대해서는, 마음이 쓰리지만 이 또한 내 모습이라고 되뇌이며 받아들이는 시간을 갖는다. 회피하지 않고 오랫동안 더 들여다보는 것이 얼마나 값진 시간인지 다시금 깨닫는다. 사람의 얼굴에는 모공이 있다는 팩트가 나한테는 해당 사항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존재감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인지 놀란다. 이는 모두 미리미리 거울을 제대로 들여다 보지 않았던 내 탓이다. 


값비싼 화장품을 바르기 보다는 가성비 좋은 제품을 아낌없이 듬뿍 꾸준히 발라보자는 목표를 갖고 실행하는 중이다. 하는 김에 남편 얼굴에도 함께 발라주니, 남편도 덩달아 피부에 관심이다.


우리집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화장품 홈쇼핑이 드라마 만큼이나 재밌다. 선명하게 대비되는 드라마틱한 변화에 감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별도의 시간을 들여가면서 그 이름도 헷갈리는 시술을 받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일 것 같다는 생각에, 홀린듯이 리모콘으로 주문하기 버튼을 누르게 된다.


홈쇼핑에서 화장품을 구매하는 것은 금전적인 면 말고도 다른 면에서 부담이 덜하다. 한 번에 다량을 판매하는 만큼 ‘꾸준히’ 써야 효과를 볼 것이라고 인식되기 때문에, 단 며칠 쓰고 ‘우와’ 하는 변화를 느끼지 못하게 되더라도 불안하지 않다. ‘그래. 곧 나타날 효과를 확인하는 그날까지, 한 번 지켜 보기로 하자.’라고, 쌓여있는 화장품을 보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 날도 남편과 같이 TV를 보고 있었다. 화장품이나 피부 관련 제품의 광고를 만나면, 잠시나마 그 짧은 영상을 보기 위해 돌리던 채널까지 멈추게 된 남편이 감동받은 표정으로 물었다.


“저것만 바르면, 너도 저렇게 될 수 있는 거야?”


배우 김고은이 메이크업 제품 한 겹 발랐다며 결점 하나 없는 도자기 피부를 화면 가득히 채우고 있었다. 


“저거 사줄게. 너도 저거 발라 봐.”


연애할 때도 내가 쓰던 화장품을 기억하고 있던 남편은, 아직 도서관에서 시험 공부를 하고 있는 나를 위해 회사 야근을 마치고 화장품을 사서 학교 교문 앞에서 기다리곤 했다.


그런데 광고하고 있는 저 제품을 사주겠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는 침울해졌다. 나는 저 제품 바르라는 대로 발라도 김고은의 피부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남편이 저렇게 희망에 찬 표정으로 나에게 선물해준답시고 쳐다보고 있으니, 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게 될 경우 실망하게 될 남편의 마음을 어떻게 보듬어줘야 할까 벌써부터 걱정이었다.


화장품 뿐이랴. ‘이것만 하면’, ‘일주일만 하면’, ‘30일 완성’ 이런 표현에 속아온 세월이 벌써 몇 십년인데, 불혹의 나이에 또 휘둘릴 수는 없었다. 


“절대 안 돼. 광고 찍을 때 조명이고 뭐고 얼마나 신경을 썼겠어? 그래서 저런 피부로 보이는 거야. 저것만 써서 저렇게 예뻐지면, 세상에 피부 나쁜 사람 하나도 없지 않겠어?”

“그런거야?”


반짝이던 남편의 얼굴에서 빛이 급격하게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책임감이 느껴졌다. 피부과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자연스럽게 늙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면서 이것저것 얼굴에 바르는 나를 위해 뭔가 도움을 주겠다는 남편의 제스처를, 너무 칼같이 잘라버린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했다.


김고은은 절대 될 수 없겠지만, 남편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졌다.


김고은 화장품은 이미 아니라고 했으니 다시 무를 수는 없지만, 다음번에 남편이 또 이렇게 새로운 화장품을 사주고 싶어 한다면 그때는 당당하게 “응!”이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피부 밑바탕을 잘 다져 놔야 겠다는 생각이다. 다시 한 번, 나도 예뻐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봐야겠다.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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