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생이 아니라고 배움의 끝은 아니다 _ 첫번째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다.
20살이 되던 해, 철이 없게도 다 컸다고 자부하며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마냥 독립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30대 중반이 되어 처음으로 ‘엄마’가 된다는 사실은 마치 새로운 세상에 아무런 지식 없이 떠밀린 기분이었다. 일상이 '찾기’의 연속이었다. 엄마가 될 것을 확인 한 순간부터 출산과 관련된 책에서부터 프랑스 부모의 육아법까지, 십 여권의 책을 읽었음에도 언제나 불안했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아이의 몸짓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육아 카페를 들락거렸다.
출산 후 100일이 될 무렵, 스트레스는 최고조에 달했다. 숙면을 제대로 취할 수 없을뿐더러, 한 생명체를 ‘잘’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은 때로는 ‘내가 엄마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나’라는 자격지심까지 들게 했다.
하지만, 아이가 어느 정도 낮잠을 자기 시작하게 되자, 이제는 아이가 아니라 내가 문제였다. 예상치 못한 사건들의 반복으로 자신을 추스를 시간조차 없었던 나는, 아이가 낮잠을 자는 잠깐의 여유가 생기자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아이만 신경 쓰다 보니 내 옷은 언제나 ‘분유 향수’ 냄새였고, 기억력도 감퇴하는 것 같았으며, 앞으로 다시는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달렸다.
아이를 직접 가르칠 생각으로 TESOL 자격증을 취득하기로 한 것이다. 9월부터 시작하여 졸업증서를 받은 다음 해 2월까지, 일주일에 3일은 아이가 잠든 후 새벽 2~3시까지 책을 붙잡아야 했지만, 그럼에도 행복했다. 늦게까지 책을 보는 것이야말로 공부라고 생각했고, 이렇게 해야만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가방을 등에 메고 다시 모교를 거닐자, 마치 내가 20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졸업 후 당장 TESOL 자격증을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또다시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다시 달리기로 했다.
외출의 기회를 모색하던 중, 친구의 추천으로 매주 토요일 오전에 집 근처 toastmasters 모임에 참석하기로 한 것이다. Toastmasters(www.toastmasters.org)는 public speech와 leadership을 연습할 수 있는 모임으로, 매번 스피치마다 ‘The Ice Breaker’, ‘Organize YourSpeech’, ‘Your Body Speaks’, ‘Vocal Variety’ 등의 다양한 미션을 수행하고, 미팅 진행을 위한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해보면서 스스로를 트레이닝할 수 있다. 무엇보다 긍정적으로 서로를 격려해주는 분위기라 부담이 없었기에, 곧 정식 멤버가 되었다. 하지만, 나의 주된 생활 장소는 아이와 함께 있는 집인 까닭에, 이 시간이 내 머리를 식혀주는 ‘외출’이라는 의미 외에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을까. 한 모임에서 줄곧 손을 들고 있는 내 모습, 말하려고 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순간 알았다.
나는 언제나 그랬지만,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시했다.
항상 배우고 있었음에도.
눈을 비벼가며 늦게까지 책을 봐야만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안심했다. 어딘가로부터 증서를 받아야만 이루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보여줄 수 있어야 만족했다. 어딘가를 다녀야만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30대가 되어서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차마 생각하지 못했다.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든 파도가 일었든, 파급력의 정도와는 상관없이 모든 경험들이 축적되었기에 변화된 지금의 모습이 있는 것이고, 축적된 경험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일상 배움 그 자체다. 하지만, 배움에는 격식이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일상 속에서 체득한 배움은 배움이 아니라고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크다.
나 역시 아이를 키우면서 집에만 있다는 이유로 나 스스로를 무시했다. 아이를 돌보는 과정에서 체득한 지식과 경험은 배움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재 아무것도 배우고 있지 않기에 발전도 없는 상태라고 생각한 나는, 늘 무엇인가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압박해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집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황을 순간적으로 파악하고 대처하기, 엄마와 아내라는 두 포지션을 조율하기, 언제나 현재 상황을 점검하고 순위를 정하는 등의 행동들은 단순히 조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이 경험들이 쌓여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배움이 되고, 배움의 결과물은 집뿐만이 아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발휘된다.
하지만 집에 있는 모습을 평가 절하하는 것, 이 것이 나만의 문제일까? 소위 가정주부를 집에서 살림 ‘이나’ 하는 사람이라고 무시해버리는 분위기 때문에, 나 역시 나를 그렇게 여기는 것 같다. ‘집에 있으니 편하겠다’는 쉽게 던지는 말 한마디에, 살림과 육아로 아등바등하는 모습은 투정과 징징거림에 지나지 않게 된다. ‘집에 있으니 편하게 지낼 수 있음’ 에도 나만 뭔가가 모자라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는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다가 전업주부로 전향하게 된 경우, ‘안타깝다, 역시나’라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시선도 위축되게 만드는 것 같다.
내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남에게 의지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엄마가 된다는 삶의 큰 변화 속에서 쉽게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까닭에, ‘엄마가 되니 힘들다’는 느낌이 더 커지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말이다. 나에게 자신이 있으면, 상대방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도 당당해진다. 스스로를 사랑한다면 지금 힘들다 해도 금방 털고 일어날 수 있다. 나에게 생기가 생기면, 내 주변도 활기차진다. 아이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육아 서적들을 많이 읽으면서, 나의 자존감을 높이려는 시도를 해본 적은 있을까?
엄마가 되면 전업주부든 워킹맘이든 자신이 없어지기 쉽다. 다른 엄마에 비해 유독 나만 게으른 것 같다. 나만 정보가 없는 것 같다. 아이에게는 늘 미안하다. 이렇게 나만 탓하면서 엄마로서 무력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엄마라는 존재는 늘 배움의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성실한 학생이고, 항상 발전하고 있기에 지금의 상황까지 꾸려올 수 있었다.
그래서 아이의 두 돌을 몇 개월 앞두고 있는 지금, 나 스스로에게 계속해주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나와 같은 느낌을 받고 있는 엄마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엄마의 자존감 프로젝트, 나를 잃지 않는 일상 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