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생이 아니라고 배움의 끝은 아니다_세 번째
오랜만에 친구와 점심을 먹다가, 이런 일에는 초탈한 듯 담담하게 말했다.
“나 지금 입은 옷 2주째 똑같은 코디다. 그런데 아무도 몰라. 2주 동안 매일 외출한 것도 아니고, 매번 다른 사람들을 만나니깐.”
내 얘기에 공감한다며 깔깔 웃어대는 모습에 나까지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친구는 학창 시절부터 시작했던 오랜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현재 가정 주부다.
결혼 전에는 아니 엄마가 되기 전에는 옷을 쇼핑하는 것이 꼭 해야 하는 필수 행동 중 하나였다. 쇼핑이라는 행위 자체가 스트레스 해소법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스트레스 요소이기도 했다. 이번 주에는 어떤 옷을 입지? 겹치는 옷은 없나? 이 팔찌는 좋아하지만, 맨날 차면 너무 없어 보이니 오늘은 허전해도 그냥 가자. 귀걸이는 그냥 무심한 듯 어제와 같은 것으로. 결과물이 항상 거기서 거기여도, 하루를 시작하는 여자들의 의상은 머릿속에서 몇 번의 시뮬레이션을 거친 결과다. 가끔은 직장인도 교복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백화점에 가도 서있는 옷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 보다는 누워있는 옷 (매대에 쌓여있는 옷)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열심히 운동을 한다고 해도 임신 전에 입었던 옷들은 이제는 옷태가 나지 않아, 아름다운 가게 기부용으로 착착 쌓여가기만 할 뿐이다.
그렇다, 전형적인 엄마, 아줌마의 모습이다.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했던 모습. 그래서인지 맨날 똑같은 옷을 입는다는 표현을 할 때도 티셔츠는 그냥 티셔츠가 아닌 ‘후질근한’ 티셔츠가 되고, 남편이 원피스를 사주겠다고 하면 입고 갈 곳도 없다며 말꼬리를 흐리고 만다. 이 상태로는 동네에서나 다닐 수 있다. 좀 창피하다.
그런데 억울한 일이 생겼다.
2개월 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업무에 복귀하는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가 “First day back after paternity leave. What should I wear?”라며 페이스북에 공개한 본인의 옷장 탓이다. 늘 같은 청바지에 같은 티셔츠를 입고 출근은 물론이요 공식 석상에까지 등장하는 마크 저커버그의 코디는 종종 화제가 되곤 했는데, 그는 그 이유에 대해서 "무엇을 입을 것인지, 아침식사로 무엇을 먹을 것인지 같은 사소한 결정도 피곤하고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의 매일 반복되는 옷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CEO 다운 모습으로 끄덕이게 되지만, 엄마의 옷은 ‘아줌마니까 그렇지’라는 어쩔 수 없다는 시선으로 끄덕이게 된다. 똑같은 상황이어도 뭔가를 ‘크게’ 이루었다는 사회적 인정 덕분에 마크 저커버그의 옷은 공식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고, 엄마의 옷은 그냥 정신없는 하루를 살면서 '자기 관리에 소홀히 하는' 모습의 단면이 되었다.
억울하다.
효율적인 시간 관리를 위한 마크 저커버그의 단벌신사 콘셉트가 사회적인 성공과 함께 인정을 받아서 당당해졌다면 나도 뭔가 이루었다는 인정을 받아서 당당하면 될 텐데, 난 그게 쉽지 않다는 거다.
마크 저커버그의 말대로 무엇을 입을 것인지, 아침식사로 무엇을 먹을 것인지 같은 사소한 결정도 피곤하고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맞다. 워킹맘의 애환을 유쾌하게 담은 영화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여자’의 주인공 사라 제시카 파커는 야근을 끝내고 아이를 재운 후, 겨우 침대에 누워 천장을 빈 종이 삼아 오늘의 to do list 중 제대로 해낸 것과 못한 것을 체크한다. 천장에 써지는 그녀의 to do list는 회사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육아와 집안일에 대한 항목들이다. 잠들기는커녕 해내지 못한 것과 내일의 일에 대해 걱정을 하기 시작하고, 심지어 늦은 밤 아이를 위한 쿠키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몸이 녹초가 되고도 줄어들지 않는 그녀의 to do list에 '휴식'이라는 항목을 강제로 넣고 싶은 욕구가 들 정도다.
이렇듯 사소한 결정들의 연속이 워킹맘들만의 고민은 아니다. 전업 주부 역시 마찬가지. 티를 내기도 애매한 ‘나 혼자만 알 수 있는’ 집안일은 매일 도돌이표이며, 아이가 잠시 낮잠이라도 자야 마음 편하게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다. 아이를 안고 있을 때도 머릿속에서는 아이가 낮잠자는 2시간 동안 바짝 끝내 놔야 하는 오늘의 to do list를 잊지 않으려고 계속 되뇐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에는 열심히 반응해주고 충실하겠다는 의지 앞에서, 핸드폰을 자주 쳐다보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카톡으로 간단한 안부 인사를 하는 것조차 오늘의 list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면 내일로 넘어간다.
워킹맘이나 전업 주부 모두 ‘엄마’라는 같은 이유로 이리도 머리가 혼란스럽다.
우리에게도 왜 이렇게 옷을 ‘실용적으로’ 입는지에 대해 누가 물어봐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 그 to do list를 다 해내는 사람들이 바로 엄마들이다. 결과적으로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니, 마치 회사에서 일을 잘하는 직원에게 더 일을 많이 주듯이 엄마에게 더 많은 임무를 부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엄마들의 이러한 비결은 억척스러움이라기보다는 다름 아닌 시간 관리 능력이 아닐까 싶다.
다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해보기도 전에, 스스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효율적인 시간 관리를 위해 슬프게도 to do list 중 다른 것도 아닌 ‘나는 오늘 무엇을 입을지’ 항목을 지웠다. 그렇게 좋아했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이와 함께 성장하며 스스로 시간 관리법을 체득한 엄마다.
당당하게 말해보자.
마크 저커버그도 시간 관리를 위해 이렇게 실용적으로 입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