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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룸메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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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Apr 01. 2022

용머리 떡볶이



어느 날 저녁을 먹은 뒤, 상을 차린 나는 TV를 보며 잠깐 쉬고 룸메는 설거지를 하던 참이었다. 달그락거리던 그가 갑자기 손을 멈추고 말했다. 


"용머리 떡볶이를 먹고 싶어!"

"뭐? 갑자기?" 

"그 두툼한 쌀떡의 쫀득쫀득함과 빨갛고 진한 양념이 갑자기 그립네. 용머리 분식 말고는 그런 떡볶이를 본 적이 없어. 안 그래? 그런 거 어디서 본 적 있어?"

"그러게... 나도 그 이후로 본 적이 없네."


용머리 떡볶이는 우리가 함께 놀았던 옛 동네의 분식집 용머리분식에서 팔던 메뉴다. 그곳은 망원동 유수지 앞 사거리로 용머리분식, 용머리슈퍼, 용머리부동산 등이 있었는데 왜 그 지역이 용머리인지는 30년 넘게 그곳에 산 나도 잘 모르겠다. 제주의 용머리해안처럼 진짜 용머리 닮은 바위라도 있었던 걸까? 대체 얼마나 옛날에 그런 지형지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저 말끔히 정리된 한강공원이 있을 뿐이다. 

(검색해 보니까 마포 쪽의 지형이 용의 머리를 닮았다 해서 그런 지명이 붙었다고 하는데 그 이름에 해당하는 지역은 현재의 용강동이다. 그러니까 망원동의 용머리는 대체 어디서 왔는지 지금 내 검색 실력으로는 알 수가 없다.)


근처의 교회에 함께 다니던 우리는 주일 예배가 끝나면 용머리분식으로 몰려가 떡볶이를 사 먹었다. 용머리분식은 평일에는 칼국수나 김밥 같은 것을 주로 팔았지만 일요일만 되면 교회에서 몰려오는 아이들을 위해 커다란 판 가득 떡볶이를 만들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대 역시 찜통 한가득 준비돼 있었다. 용머리 떡볶이는 아주 굵은 쌀떡으로 만든다. 양념은 새빨갛고 되직하다. 거기에 대파와 얇은 오뎅을 숭덩숭덩 썰어 넣고 떡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양념 맛이 스며들 때까지 졸이면 완성된다. 때를 못 맞춰 가면 떡볶이가 다시 완성될 때까지 10분이고 20분이고 기다려야 했지만 막 만들어진 신선한 떡볶이는 왜 그리 맛이 있는지. 어슷썰기로 잘라진 쌀떡의 길이는 아주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다. 나처럼 한 입이 크지 않은 사람은 포크로 반절을 잘라 먹으면 여유 있게 좋고, 입에 꽉 차는 느낌을 즐기는 이는 한번에 와앙 집어넣고 씹는다. 매콤하면서 슬쩍 끼어드는 단맛이 어른맛 같기도 하고 아이맛 같기도 하여 남녀노소를 사로잡았다. 쌀떡 특유의 쪼오오오올ㄹㄹㄹ깃함은 말할 것도 없고. 밀떡파인데다가 매운 걸 싫어하고 이에 고춧가루가 낄까 봐 늘 조심하던 나도 용머리 떡볶이만큼은 종종 즐겼다. 허름한 건물의 1층, 삐걱거리는 미닫이문, 대충 나무로 뚝딱 만든 것 같은데 덜컹거리면서도 몇 년이 지나도록 끄덕없는 길고 좁은 의자, 구석의 작은 테이블 두 개. 그 안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으며 우리는 일요일이 아니더라도 근방에서 모임이 있는 날이면 용머리분식에서 떡볶이, 순대, 오뎅을 포장해 들고날랐다. 


우리가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될 무렵, 용머리분식 건물이 헐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면 우리는 대체 어디에 가서 떡볶이를 먹냐며 용머리분식 아주머니를 만날 때마다 하소연을 했지만 아주머니는 그저 웃어넘길 뿐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마침내 용머리분식이 사라졌다. 한동안 그 자리는 공사 가림막이 설치돼 있었다. 공사가 끝나고 같은 자리에 말끔한 새 건물이 들어섰다. 용머리분식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는 '용머리 감자탕'이라는 간판이 걸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용머리분식 아주머니가 그 가게의 사장님으로 계셨다. 이제는 못 만날 줄 알았던 아주머니를 다시 만나게 된 것도 놀라웠지만 분식집이 감자탕집으로 바뀌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우리는 한동안 아주머니께 떡볶이를 다시 먹고 싶다고 조르기도 했지만 이내 적응해 닭도리탕과 감자탕을 시켜 먹었다.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직장인이 되고 그런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게 별일이 아니게 되었지만, 여전히 주변에 존재할 중고등학생들은 이제 어디에 가서 떡볶이를 먹을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유수지 주변에는 저렴한 음식을 파는 식당은 없고, 교회는 많고, 무엇보다 사립 독서실에 가기에는 생활이 넉넉치 않은 아이들이 이용하는 구립 독서실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그래도 떡볶이랑 감자탕은 너무 가격 차이가 크잖아. 그러고 보니 이제는 편의점 삼각김밥과 컵라면이 있구나. 이렇게 세상은 변해가는 거구나. 


한참 뒤 동네의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다가 옛날 용머리 떡볶이와 비슷하게 생긴 떡볶이를 발견했다. 담뿍 반가운 마음에 1인분을 포장해와 룸메를 불렀다. 

"내가 발견했어! 용머리 떡볶이랑 비슷해!" 

먹어보니 맛은 좀 달랐지만 비슷한 굵기의 쌀떡에서 나오는 쫄깃함은 여전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쌀떡파인가 봐." 

자기가 쌀떡볶이를 좋아한다는 걸 마흔이 되어서야 알아챈 룸메를 조금 타박하며 추억의 맛을 떠올려 떡볶이를 집어 먹었다. 아무래도 나는 밀떡파지만 가끔은 이렇게 새빨간 쌀떡볶이를 사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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