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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May 22. 2017

27일

제주방송, 제주유랑



돌문화공원에 갔을 때 돌에 낀 회색 부스럼 같은 것을 보고 윗집 언니가 이끼라고 알려주셨다. 
"이 이끼는 다른 이끼 위를 덮으며 자라는 종인데, 회색 돌이끼가 있다는 건 이 돌이 아주 깨끗하다는 증거예요. 회색 이끼를 걷어내면, 봐요, 초록색 이끼가 또 있죠." 
"와, 언니는 어떻게 이런 정보까지 아세요? 따로 공부를 하셨어요?"
"하하, 아뇨. 제주방송 보면 다 나와요." 

오늘 아침에 씻고 나서 제주mbc를 잠시 보았다. 제주라고 해서 제주방송이 계속 나오는 게 아니라 특정 시각에 돌아가며 나오는 것 같다. 그 외에는 전국 방송을 틀어주고. (케이블 서비스의 특성인지도 모르지만. 이 집은 올레티비.)  <생방송 제주가 좋다>라는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는데 대정향교에서 전통혼례를 올리는 장면과 성인식을 치르는 장면이 나왔다. 

대정향교는 2011년 가을, 친구와 둘이 5박 6일 일정으로 제주에 왔을 때 우연히 가보았다. 숙소가 근방이어서 바닷가로 산책 나가는 길에 헤매다가 도착한 곳이었다. 사람 하나 없이 조용한 한옥이 있었고 구경 삼아 한 바퀴를 돌고 나가려는 때, 한 사내가 나타났다. 우리에게 뭐라고 말을 걸었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사투리 때문이 아니라, 언어 능력이나 지각 능력에 문제가 있는 분 같았다. 그분은 계속 말을 걸며 뒤를 따라왔고, 우리는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정말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무서움이 훅, 밀려왔다. 그 와중에 키가 큰 친구는 향교 문에 머리를 세게 찧었다. 어쨌든 그 길로 걸음을 재촉해 바다를 찾아갔고, 그제야 조금 안도할 수 있었다. 돌아올 때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분은 우리에게 악의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의사소통이 어려운 성인 남성의 의도를 우리는 알 수가 없었다. 근력이 약하다는 물리적 한계가 우리를 겁쟁이로 만들었다. 지금 똑같은 상황이 되어도 같은 행동을 할 것 같다. 함부로 용기내지 않기로. 

오후에는 윗집 언니와 함께 제주유랑을 찾아갔다. 제주유랑은 정해진 장소 없이 바닷가를 다니는 푸드트럭(커피트럭?)이다. 커피 음료와 샌드위치를 파는데 치즈가 잔뜩 들어간 허니버터샌드위치가 유명하다. 해변을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꾸준히 영업을 하며 발전하고 있어서 주민들 사이에 평이 좋다고 한다. 커피도 맛있고 샌드위치도 맛있었다. 치즈가 주욱 늘어나는 게 볼만했다. 게다가 경치 좋은 곳에 있어서 돗자리를 깔고 먹고 마시는 재미가 좋았다. 종달리 바다의 넘실거리는 푸른 물결을 보며 한가로운 낮과 뜨거운 햇볕을 깊이 느꼈다. 그리고 아까도 바로 그 바다로 돌고래 떼가 지나갔다고 한다! 또 지나갈 수 있다고 해서 바다를 열심히 바라봤지만 우리가 있는 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차를 얻어탄 김에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둔 식재료들이 바닥났다. 사람 입이 참 무섭다는 생각을 한다. 고작 몇 주를 지내면서도 이렇게 양손 가득 장을 봐야 먹고살 수가 있구나. 집에 휴지가 떨어져서 사야 했는데 30롤짜리밖에 없었다. 우리에겐 너무 많은데. 남겨두고 가면 다른 분이 쓰시겠지. 

저녁에는 잠시 나가 노을을 봤다. 




치즈 쭈우우우ㅜ웅ㅇㅇ우ㅜㅜㅜ

굴 같은 곳


제주유랑이 있던 벌판.




저거 거대 샐러리처럼 생겼다

돌 아래서 친구들하고 쉬다가 나를 보고 다가오는 니은이.


오늘의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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