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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중년생 Apr 25. 2024

Roma : 바티칸 인파 박물관

4월 1일 (1일차)

[중년생]의 눈이 번쩍 떠졌다. 여행용 만능멀티탭에 밤새 연결된, 그래서 아마도 100% 충전 상태에 도달한 지 한참 지났을 스마트폰의 시계를 바라보니 6시 59분. 

7시로 맞춰둔 알람이 울리기 직전이었다. 급하게 설정 모드로 들어가 알람 예약을 껐다. 그리곤 천천히 시간을 들여 짜증 내지 않을 만큼 [사회]를 단계적으로 가볍게 흔들어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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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이 여행기의 두 주인공을 필자의 브런치 제목인 사회중년생에 대입시켜 디자이너이자 독후감을 담당하는 [사회]양과 카피라이터이자 소설을 담당하는 [중년생]군으로 표기하고자 함을 말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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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절할 정도로 피곤한 날이 아닌 이상 중년생은 신기하게도 매번 알람이 울리기 직전에 저절로 깬다. 그렇다면 알람 따위는 맞춰 둘 필요가 없을 텐데도 일정이 있는 전날 밤이면 매번 꼭 맞추고 잔다. 혹시라도 못 일어날까 봐 두려워서다. 그리고 이 본능 같은 습관은 서울과 거의 1만 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진 로마의 아침에서도 여지없이 작동했다. 장시간 비행의 피로 때문이든 시차 때문이든 일찍 일어나긴 여간 쉽지 않은 컨디션이었으나 오전 바티칸 가이드 투어를 예약해 둔 아주 중요한 날이었기 때문에 반드시 일어나야 했다. 


패키지여행도 아닌데 오자마자 무슨 투어냐고? 실은 급하게 떠나느라 한 달 일정을 구체적으로 계획할 시간이 부족해서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란 생각으로 일단 로마 왕복 항공권과 닷새 후 다음 행선지로 가는 기차티켓 및 그곳에서의 숙박시설 정도만 빠르게 예약했던 두 사람. 출국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이탈리아와 로마에 대한 사전지식이 너무 없다는 사실이 엄청난 불안감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갑자기 선택한 것이 현지 가이드 투어였다. 어차피 아는 게 전무하니 로마에 머무르는 초반 5일 동안 몇 가지 투어를 하면 최소한의 상식이라도 채워질 거란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로마 도착 바로 다음날 아침 투어라니. 당연히 이곳에 쉬러 온 두 사람의 원래 계획이었을 리 만무했다. 

처음엔 3/31일 밤에 로마에 도착하는 상황을 고려해 다음날인 4/1일은 편히 쉬면서 자유시간을 보낸 뒤, 2일부터 4일까지 가이드 투어를 하고, 5일에 타 도시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그중에서도 바티칸은 마지막 날인 4일(화요일) 예정이었는데 모집인원 부족으로 부득이하게 1일(토요일) 투어로 앞당겨 합류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불만 같은 건 없었다. 주위에서 로마 하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이 ‘바티칸은 꼭 가이드 투어 해라.’와 ‘설명 듣고 아는 만큼 보인다.’였기에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오전 투어 모이는 시간은 9시 50분. 장소는 바티칸 박물관 입구였다. 7시 정각에 기상한 우리는 빠르게 씻고 가벼운 힙색/크로스백을 메고 호텔 로비로 내려갔다. 여행 기분도 낼 겸해서 평소 서울에서는 거의 착용하지 않는 선글라스까지 특별히 챙긴 채였다. ‘굿 모닝!’ 어젯밤과는 다른 직원이었지만 건네는 상냥한 인사에 우리도 똑같이 답하고는 큰 쉼 호흡과 함께 무서운 그래피티가 기다리고 있을 골목으로 나섰다. 어? 골목도 어젯밤 기억과는 모습이 전혀 달랐다. 하나도 후미지지 않고 양 옆으로 이국적인 건물이 늘어선 너무 예쁜 길. 그래피티는 오히려 귀엽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어제의 첫인상은 낯선 도시에 밤에 도착해서 생긴 두려움 때문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에서 바티칸까지 소요 예정 시간은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우리는 천천히 도시를 즐기며 걸어갈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전에 오랜 공복을 버텨낸 고마운 위장에게 이탈리아식 간단한 아침식사를 선사해 주기로 했다. 

목적지는 어젯밤 숙소에서 잠들기 전 감기는 눈을 붙잡고 혼신의 구글맵 검색으로 발견한 가까운 커피 바(bar). 평점이 무려 4.8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바에서 서서 에스프레소를 마신다던데.’, ‘아침에는 빵이랑 카푸치노를 먹는다던데.’ 여기저기서 듣던 얘기가 사실인지 직접 가서 확인해 볼 차례였다. 사회와 중년생은 긴장과 설렘이 섞인 표정으로 길 모퉁이 작은 커피 바 입구로 향했다. 좁은 입구에 이탈리아 아저씨 두 분이 서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뚫고 들어가기 애매해서 서성였더니 웃으면서 들어가라고 비켜주셨다. 정말로 몇몇이 바에서 선 채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 뒤로도 줄지어 들어오는 현지인들. “부온 조르노~”, “부온 조르노~” 들어오며 건네는 인사말에 녹아있는 이탈리아어 특유의 어조가 리드미컬하게 들려서 재미있었다. 입구부터 안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바 선반 위에 놓인 커다란 은빛 쟁반. 그 위에 가득 쌓아둔 직접 구운 꼬르네또(Cornetto/크루아상의 이탈리아식 표현. 스타일도 맛도 프랑스의 그것과는 조금씩 다르다.) 냄새와 진동하는 커피 향,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연기까지. 부부로 보이는 두 분이 운영하는 동네 카페의 분위기가 너무 맘에 들었다. 각종 위스키 병이 가득한 바 안쪽 벽면도 눈에 들어왔다. 저녁에는 아마도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바(bar)로 변신하는 모양이었다. 이탈리아의 바는 아침엔 착실한 모범생이다가 밤엔 화려한 클러버로 변신하는 카멜레온 같은 꽃미남/꽃미녀 정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사이, 주인아주머니가 서툰 영어로 말을 거셨다. “Are you raedy?” 우리의 선택은 각각 슈크림과 피스타치오크림이 들어간 꼬르네또 하나씩과 카푸치노 한 잔씩. 긴장했던 것보다 주문은 어렵지 않았다. 카푸치노 두 잔은 “카푸치노!”라고 소심히 얘기하면서 손가락을 브이로 펼치자 찰떡같이 “오! 투 카푸치노?”라고 바로 영어로 되물어주셨고, 빵은 바로 눈앞에 있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됐으니까. 자릿세는 필요 없으니 그냥 테이블에 앉아도 된다는 주인아주머니의 친절을 정중히 사양하고 우리는 현지인들 틈에 섞여 바에서 서서 먹었다. 모두 합쳐 5유로의 행복. 빵은 달콤 쫀득했고, 커피는 고소하고 진하며 부드러웠다. 사회와 중년생은 어디를 여행하든 그 나라의 음식을 즐기는 편이고, 특히 아침을 현지식으로 하는 걸 좋아한다. 맛도 맛이지만 그 나라의 활기찬 아침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어서다. 이번 결과는 대만족. “그라치에!” 로마에서의 첫 번째 이탈리아어를 입 밖으로 내고 우리는 기분 좋게 커피 바를 나섰다. 


아직 차가운 아침 공기를 마시며 1시간 넘게 천천히 걸어 바티칸으로 향하는 길. 조금 걷다 보면 너무나도 멋진 조각 분수가 물을 내뿜고 있었고, 다시 조금 가다 보면 이름 모를 웅장한 성당이 어마어마한 아우라를 내뿜었다. 그리고 우리가 내뿜을 수 있는 건 최소 5분에 한 번씩 나오는 감탄사뿐이었다.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멋지고 유서 깊어 보이는 건축물과 거리가 자태를 뽐냈다. 무슨 건축물인지 그때마다 서서 일일이 검색해보고 싶었으나 평소에도 안전에 대한 의심이 많은 중년생이었고, 여행 초반이라 소매치기에 대한 경계심이 극에 달한 상태였기에 가방을 꼭 붙잡고 긴장한 채로 대부분 그냥 지나쳤다.(이제와 생각해 보면 오히려 거액의 현금이라도 들고 다니는 수상한 사람 같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나오긴 했지만 초행길에 도보라서 일단 바티칸에 빠르게 다다르는 게 목표였기도 했다. 다시 한참을 걸어 이 때는 테베레 강과 천사의 성이라는 사실도 몰랐던 아름다운 풍경을 지나치자 사람들의 행렬이 한 곳으로 급격히 쏠리기 시작했다. 바티칸 박물관에 거의 다 왔다는 신호였다. 마침 울리는 전화벨. 오늘의 담당 가이드였다. 

우리 둘만 원래 일정에서 며칠 앞으로 당겨 합류하게 된 거라서 시스템상 입장을 따로 하고, 투어 일행과는 내부에서 만나야 한다는 내용. 가이드와 접선하여 표만 받은 후 먼저 입장해서 기다리기로 했다. 박물관 입구로 올라가는 오르막 길에 어마무시한 사람들의 대기 줄이 흘러내리고 있어서 순간 겁을 먹었지만, 역시 가이드 투어를 미리 예매한 패스트트랙 입장자는 그 줄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휴~ 정말 다행이었다. 설마 하는 일은 없었다. 가이드에게 받은 표는 사실 표라기보다는 하얀 A4용지에 인쇄된 설명이 포함된 QR코드였는데 입구 쪽 하얀 천막에 서 있는 제복 차림의 직원에게 제시하니 찍고 바로 입장 가능했다. 사람들이 엄청 붐볐지만 생각보다 절차가 복잡하진 않았다. 보안검색을 마치고 들어가면 나오는 왼편 티켓창구에 큐알용지를 제시하니(개인적으로 예매한 경우 따로 용지에 출력하지 않고 스마트폰 상에 PDF파일로 저장한 것만 보여줘도 입장 가능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실물 티켓으로 교환해 줬다. 그리곤 개찰구에 티켓을 찍고 정식 입장!


입장하는 곳 바로 옆 계단으로 반층 내려간 곳에 화장실이 있길래 들렀다 가기로 했다. 화장실 옆에는 생수 자판기도 있었다. 한 병에 1유로. 바티칸은 사람이 많고 넓어 지치고 힘들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서 본 김에 한 병 샀다. 잠시 쉬면서 용무를 해결한 두 사람. 이제 진짜 관람을 위해서는 위 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가는 방법은 두 가지. 정면으로는 에스컬레이터가 보이고, 바로 옆으로는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나선형 통로가 나 있었다. 얼핏 봐도 에스컬레이터 쪽이 너무 붐벼서 우리는 한산한 통로로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실수였다. 높이가 꽤 있어서 초반에 체력 소모를 한 셈이 됐으니까.(역시 사람이 몰리는 데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위 층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가이드들과 그 뒤를 졸졸 따르는 관광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마치 유치원 인솔 선생님과 아이들 같이 느껴져서 나이에 상관없이 귀여워 보였다. 가이드들은 수많은 인파 속에서 눈에 띄기 위해 깃발을 만들어 들고 다니는데 그 형식도 정말 제각각이었다. 누구는 회사 이름이 적힌 깃발을, 다른 누구는 귀여운 인형을, 또 누구는 예쁜 액세서리를 깃발에 달고 있었고, 본인 스카프를 묶어서 들고 다니는 개인 가이드도 많았다. 눈에 띄기 위한 갖가지 방법을 보고 있자니 은근히 재미있었다. 잠시 뒤, 티켓 받을 때 한 번 만나서 낯익은 얼굴 하나가 일행을 이끌고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한 손에는 깃발을 들고 있었다. 우리 가이드의 선택은 빨간색 스카프였다. 강렬한 색상이어서 일행을 놓칠 일은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회와 중년생은 오늘 하루 우리를 인도해 줄 빨간색 등대를 눈에 새겼다. 제법 많은 일행이 다 모이자 수신기를 하나씩 나눠 받고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 수많은 역사를 간직한 수많은 작품들 사이로, 또 그보다 더 많은 인파 사이로 우리는 재빠르게 뛰어들었다.


일행은 바티칸 박물관을 거쳐 시스티나 성당, 산 피에트로 대성당까지 차례로 주요 작품의 간단한 설명을 들으며 빠르게 이동했다. 사실 두 사람은 엄청난 인파의 홍수 속에서 빨간 스카프를 놓치지 않는 데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천천히 여유롭게 관람하며 예술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스스로의 멋진 모습을 상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정신없었다. 방대한 양의 작품과 설명을 머릿속에 저장하기엔 너무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만 더 커지는 순간이었다.(혹시 바티칸 박물관의 작품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과 견해를 기대하신 독자가 계시다면 미리 사과드리는 바이다. 이 기행문은 이탈리아 전문가가 아니라 왕초보 두 사람의 시각으로 작성한 완전 주관적인 기행 감상문이라는 점도 함께.) 관광객들의 어깨와 어깨 사이를 뚫어내며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같은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이렇게 지나쳐 가고 있다는 것이 실시간의 아픔으로 다가왔다. 뿐만 아니라 모르는 눈으로 봐도 감동이 밀려오는 작품들까지 셀 수 없이 많다 보니 바티칸 박물관과 이곳 작품들에 대한 사전지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훨씬 나았을 거라는 후회도 밀려왔다. 하지만 이미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마지막까지 한 작품이라도 더 눈에 담으려고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두 눈을 부릅뜨는 사회와 중년생이었다.

잠깐 스치듯 본 것만 같은데 투어가 끝나고 기념품 샵까지 둘러보고 난 시간은 어느덧 오후 3시였다. 5시간 가까운 도보 관람. 아침 7시부터 준비하고 걸어서 온 것까지 합하면 벌써 8시간째 서 있었던 셈이었고, 우리가 알아차렸을 땐 온몸에 걷잡을 수 없는 피로감이 몰려온 뒤였다. 시차 적응도 안된 입국 바로 다음날인 데다가 하필 로마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은 장소 중 하나인 곳이라 기가 쭉쭉 빨렸다. 게다가 인파 속에 섞여 있을지 모를 소매치기에 대한 경계태세까지 내내 가동했기 때문에 예상된 결말이었다.


꼬르륵~ 꼬르륵~ 꼬꼬르르륵~ 갑자기 사회와 중년생의 배가 소리치기 시작했다. 천천히 점차적으로 그런 게 아니라 배고픔의 게이지가 0에서 100까지 단번에 차오른 느낌이었다. 바티칸에서 여러모로 초 집중한 탓이 컸으리라. 산 피에트로 대성당 앞 광장을 지나 출구로 나가니 쭉 뻗은 길가를 따라 햄과 치즈가 꽂힌 샌드위치와 음료수, 젤라토 등을 판매하는 푸드트럭 같은 것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트럭에서 파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열쇠고리나 마그넷 같은 작은 기념품부터 이탈리아나 로마 같은 문구가 크게 새겨진 티셔츠까지 함께 팔고 있었다. 딱 봐도 멋모르는 관광객을 낚는 듯한 분위기가 풀풀 나서 평소 같으면 쳐다보지도 않을 만한 가게. 하지만 정말 더 이상은 한 걸음도 걸을 수 없다는 사회의 진심 어린 호소에 우리는 샌드위치와 젤라또를 각자 하나씩 사서 근처 벤치에 앉아 쉬기로 했다. 샌드위치 2개, 젤라또 2개에 총 20유로. 관광지라고 하더라도 너무 비쌌다. 힘들고 배고픈 나머지 가격을 묻지도 않고 주문한 후, 음식이 나온 뒤에야 얼마냐고 물어봤으니 바가지를 쓰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얼마인지 물어보니 살짝 고민하다가 20유로라고 한 것만 봐도 1,000퍼센트 확실했다. 하지만 그때는 맛있었다. 왜냐하면 비교대상이 없었으니까. 이탈리아에 도착한 어젯밤엔 물만 마시고 쓰러졌고, 오늘도 아침에 커피 바에서 먹은 카푸치노와 꼬르네또, 박물관 입구에서 사 마신 생수가 먹은 것의 전부였다. 아사하기 직전에 이탈리아에서 만난 첫 샌드위치와 첫 젤라또니 무조건 맛있을 수밖에. 4월 초, 오후 서너 시쯤의 햇빛은 엄청 뜨거웠지만 우리는 땀을 뻘뻘 흘려가며, 또 녹아내리는 젤라또를 핥아가며 열심히 먹었다. 그러고는 얼마간 앉은 채로 풀려버린 다리를 충전했다. 시간은 오후 4시. 저녁 먹을 때까지 로마를 누비며 다시 걸어 볼 계획이었다. 

이제와 말이지만 만일 [사회]와 [중년생]이 아닌 [대학]과 [초년생]의 체력이었다면 가능했었을까? 우리는 의지와는 다르게 다시 걸은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다시 목이 타고 다리가 풀려버리고 말았다. 약간의 휴식 정도로는 채워지지 않을 심각한 체력의 구멍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아까 시스티나 성당에서 경이롭게 올려다보았던 미켈란젤로의 걸작 최후의 심판을 우리가 받고 있는 것 같은 절망이었다. 우리에겐 구원이 필요했다. 마침 기적적으로 근처 젤라또 가게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고, 본능적으로 들어가서 주문대 앞에 섰다. 젤라또는 방금 전에도 먹었지만 상관없었다. 당 보충이 필요했고 너무 뜨거운 태양을 잠시라도 피하지 않으면 정말 쓰러지지 싶었으니까. 


한국어로 번역하면 ‘달콤한 인생’이라는 달콤한 가게의 이름이 고단한 우리를 치유해 줄 것만 같았다. 와플 콘에 시원 달콤한 젤라또. 맨 위에는 사랑스러운 와플 쿠키도 하나씩 꽂아주는 착한 가게였다. 콘을 하나씩 받아 들고 길 건너편 도서관 앞 계단에 풀썩 주저앉은 채로 먹으며 쉬었다. 작은 광장이라 우리처럼 지친 관광객들이 계단에 앉아있었다. 한쪽 구석에 세워진 이름 모를 석상의 얼굴 부분이 새똥을 가득 맞은 채여서 우스꽝스러웠는데 이 때는 웃을 힘도 없었다. 

얼마를 앉아 있었을까? 우리는 고심 끝에 호텔로 돌아가기로 전격 합의했다. 산책은커녕 움직이기도 힘든 상태라는 걸 완벽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때 남은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그 당시 사회가 뱉은 한 마디를 덧붙여보겠다. “근데, 우리 호텔까지는 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찍은 이날의 사진이 오후 4시 10분 30초의 젤라또가 마지막이고, 그다음 사진은 다음날 아침인 것만 봐도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호텔뿐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나마 남아 있던 혼신의 힘을 짜내어 미니 마켓에서 얇디얇은 1회용 슬리퍼 두 개와 물 세병을 샀다. 방 안에서 신발을 신기는 싫었고 이때만 해도 호텔 직원에게 말을 걸기는 엄두가 안 났으니까. 그리고 당연히 물은 생존용이었다. 

열쇠를 돌려 딸깍하고 열리는 방문 소리가 천국의 효과음처럼 들렸다. 들어가자마자 물을 벌컥벌컥, 샤워를 빠르게 빠르게.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5시나 채 넘었을까? 우리는 그대로 기절하듯 잠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로마에서의 이틀째 저녁도 공복인 셈이었다. 배고파서 우리를 욕하며 울다 잠들었을 그날 우리의 위장에게 다시 한번 미안하다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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