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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Jun 04. 2020

누나에게 존댓말 들으니 좋니?

남편에게 9년 차 존댓말 하는 이유.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죠? 날씨가 더워져서 걱정이네... 저녁에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퇴근하기 전에 문자 하나만 부탁해요.^^"

"친정에서 전화 왔는데 다음 주에 시간 괜찮냐고... 자기한테 물어보고 다시 연락드리기로 했어요. ^^ 자기 일정 보도 저녁에 이야기해줘요."

"오늘 아들이 학교를 너무 잘 다녀온 거 있죠? 아이가 기분 좋은 거 보니 저도 기분이 좋았어요. 퇴근할 때 웃으며 현관문으로 들어오기를....^^"


출근한 남편에게 보내는 톡들~ 바쁜 그는 짧은 대답을 보내온다. 보통 "출근했습니다. 점심 먹고 있어요. 자기도 챙겨 먹어요. 퇴근합니다." 보고들처럼 딱딱하게 느껴지지만 나는 이 문자도 빙긋 미소가 지어진다.


나보다 2살 연하, 남동생과 동갑인 남편에게 처음부터 존대를 하기란 쉽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이야기지만 내 눈에 뻔히 보이는 철없는 행동에 나도 모르게 목젖까지 올라오는 잔소리를 삼킨 적도 여러 번이었다. 과연 이 남자가 듬직한 남편,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시절이 분명 내게 있었다.

'아 내가 이 남자와 사는 동안 존대를 해야겠구나.'라고 다짐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결혼식 주례사였다. 무척 긴장했던 그날 오랜 기간 결혼생활을 잘 유지하셨던 주례사 선생님께서는 딱 두 가지만 명심하라 하셨다.

하나. 아무리 화가 나도 서로에게 막말은 하지 말 것. 막말이라 함은 욕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야!! 너!!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말이나 차가운 어투로 말하는 것이 사는 동안 평생 가슴에 피멍을 만드는 말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화가 나면 일단 진정될 때까지 자리를 피하는 것!!


둘. 결혼을 하면 부모님의 보살핌에서 뚝 떨어져 나온 남자와 여자다. 상대방의 부모님께서 어떤 요청이나 부탁을 하셨을 때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꼭 상의하라 했다. 둘만의 문제로 싸움이 되는 경우는 극히 일부이며 보통 양쪽 집안 문제가 다툼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때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말투에서 나오니 말을 뱉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라는 조언은 긴장감 속에 결혼식이 었으나 내 머릿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신혼 초만 해도 서로에게 편하게 반말했지만 내가 바뀌고 싶었다. "어색해. 왜 그래. 그냥 편하게 말하자."라는 남편의 말에도 애교 섞인 말투로 존댓말을 더 늘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에 손발 오글거린다며 어색해하던 남편은 존댓말을 듣는 게 익숙해진 건지 자기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남편에게 나는 장난할 때 하는 말 외엔 대부분 존댓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남편 역시 둘이 있을 때는 가끔 반말을 하긴 하지만 아이와 있거나, 밖에 있을 때는 거의 존대를 하는 편이다.


부부가 서로 존댓말을 쓰면 좋은 점이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1. 존댓말을 어렵고 무거운 말이 아니다. 그 바닥에는 "존중과 배려"가 고요하게 깔려있다.  

부부가 좋은 모습만 보고 산다?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설령 부부가 고맙고 감사한 것만 매일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요인들로 인해서 서운하고 때로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왜 이 사람은 나를 몰라주는 거지? 왜 이렇게 밖에 못하는 건데... 나라면 이랬을 거야.'라는 생각에 "야, 너, 니가..."라는 말은 미운 감정의 속도만 시속 200km로 올린다. 존댓말을 하게 되면 감정에 잠시 브레이크를 잡는 역할을 한다.


직설적인 말이 존중과 배려로 희석되면서 상대방에 귀에는 이해라는 씨앗이 자라난다. 내 입장에서만 보던 시각의 범위가 조금 더 넓혀지는 것이다. 


2. 아이는 늘 부모의 태도와 말을 보고 듣고 있다. 

가정환경에서 흐르는 평온한 기온을 아이는 예민하게 반응한다. 아들이 커갈수록 만나는 사람들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8살인 아인 한 번도 자기가 갖고 싶은걸 사달라거나 보채거나 떼쓰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배려하는 말을 사용했다. "엄마 이거 제가 사도 될까요?" "내가 이렇게 하면 엄마 마음이 아파요? 내가 좋아도 엄마 마음이 아프면 나는 싫어요." 이런 말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감동하게 했다.




우리 부부의 대화를 밖에서 처음 듣는 사람은 신기한 듯 쳐다볼 때가 있다. 남편 직장 동료들은 우리를 "조선시대 부부"로 보기도 한다. 존댓말을 한다고 다 싸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도움이 된다라고는 이야기하고 싶다. 나보다 어린 남편이지만 남편으로 아버지로 존중심을 갖게 해 준 내게는 참 고마운 "존댓말"


장난 삼아 "누나에게 존댓말 들으니 좋니?"라고 묻는 내게 남편은 "그럼요~"라고 대답한다. 기다렸다는 듯 옆에서 듣 아들이 한마디 거든다. "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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