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손가락 재수술을 받았다. 교통사고로 손가락 인대가 끊어져 첫 수술을 받은 지 꼬박 1년 2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성실하게 재활을 받으면 사고 전으로 돌아갈 거라 믿었다. 내 바람은 처참히 어긋났다. 손가락은 점점 굳어 마치 제 고집을 자랑하는 듯했다. 평소 악력이 좋던 나는 오른손에 든 물건을 자주 떨어뜨렸다. 핸드폰, 볼펜, 지갑, 화장품이 손을 빠져나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성격이 급한 탓도 있었을까. 튀어나온 새끼손가락은 여기저기 부딪혀 멍이 들거나 피가 맺혔다. 재수술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유착된 곳이 손바닥 쪽이면 다행인데 못 찾으면 손등 부분도 절개해야 할 겁니다."
"수술 시간은 오래 걸리나요?"
"3~4시간 일단 열어봐야겠지만 첫 수술보다는 더 걸릴 것 같네요. 조금이라도 굽혀지는 게 생활에 지장을 덜 줄 테니 일단 해보죠."
언제나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담당 선생님은 수술 전 마지막 검사에서도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본 하늘은 진한 회색빛이었다. '이번이 마지막 일 거야. 괜찮아. 괜찮아.'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워 두 눈을 감았을 때, 작은 눈송이들이 흩날리는 풍경을 떠올렸다. 1년 전보다 한층 더 깊어진 두려움 속에서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마취가 깨면서 첫 수술 때와는 차원이 다른 통증에 전신이 뒤틀렸다. 과호흡으로 산소통이 곁에 놓였고 마약성 진통제를 맞고서야 붕대가 감겨 뭉툭해진 오른손을 마주했다.
다음 날, 소독을 위해 손에 거즈를 떼어냈다. 새끼손가락 앞뒤로 마치 보라색 지네 두 마리가 자리를 잡은 듯 보였다. 63 바늘. 경우의 수를 말해준 선생님께 감사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는 수술 자국을 보자마자 기절했을 것이 분명했으므로.
나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수술 전 맘에 드는 주황색 숟가락과 포크를 구입했다. 퇴원 후에도 어딜 가든 수저통을 먼저 챙겼다. 식당을 갈 때마다 포크를 요청하는 불편함에 비하면 가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참을만했다. 첫 수술 후 재활을 다녔던 때보다 더 열심히 운동에 박차를 가했다. 아프다고 방치하면 다시 유착될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경고는 평소 무의식 중에도 손가락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3개월이 흐를 무렵 마침내 포크와 이별을 준비할 수 있었다.
"엄마, 이제 젓가락질 다시 할 수 있어요?"
"떨어뜨려도 이제 손에 힘을 길러야지. 괜찮아."
"다시 유치원생이네."
사실 올바른 젓가락질에서 새끼손가락은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네 개의 손가락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문제는 현저히 약해진 악력이었다. 중지와 약지 사이로 꼭 젓가락 하나만 떨어졌다. 수술 전에도 100% 올바른 젓가락질이 아니었기에 마흔에 새로 배우는 젓가락질은 낯설고 서툴다. 1년 넘게 흉터로 미워진 오른손을 미워했다. 교만했던 녀석이 비로소 30도 고개를 숙였다. 아홉 손가락의 응원을 받는 새끼손가락에게 재활이 끝난 후 핸드크림을 듬뿍 발라줬다. 사라지지 않은 쓰임에 고마움을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