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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은 운이었다.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서 발견한 나만의 치유 방법.

by fragancia

* 이 매거진은 Eli 작가님과 공동으로 하는 글쓰기입니다.


잊어야 할 일은 빨리 잊어라. 망각하라. 이것은 기술이라기보다 운의 문제에 가깝다. 우리는 잊어야 할 것을 가장 잘 기억하고, 기억해야 할 것은 잘 잊는다. 기억이란 제멋대로여서 가장 필요할 때는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기억은 어리석어서 원하지 않는 곳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고통스러운 일을 떠올릴 때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만, 즐거운 일을 당했을 때 필요한 치료제는 그 사건을 잊는 것이다.

좋은 기억을 떠올리는 습관도 꼭 필요하다. 기억은 사람을 천국으로도, 지옥으로도 데려다 주기 때문이다. 단, 단순한 일에도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은 굳이 망각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아주 세속적인 지혜. (발타자르 그라시안)


Q.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릴 때, 그 기억 속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려 하는가?




한일 월드컵의 열기가 거리를 뒤덮던 여름, 서류철을 잔뜩 든 채 퇴근하면 나는 일부러 공원을 빙 돌아 집으로 향했다. 화단 가득 흩날리던 조팝나무 꽃, 붉은 옷을 입고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 그 순간마다 예전의 내가 불쑥 나타나는 것 같아, 고개를 돌리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세상이 환희로 들끓었지만, 내 마음은 깊은 그림자 속에 머물러 있었다. 풀리지 않는 실타래가 여전히 손에 쥐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실타래의 시작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평범한 아침,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기분 좋게 등교해 자리에 앉았다. 친했던 세 친구에게 건넨 인사는 공허한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벌레 씹은 표정으로 나를 휙 지나쳐 교실 밖을 나갔던 그녀들은 1교시 종이 울리고서야 들어왔다.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었나?' 곧 수업 중에 구겨진 쪽지가 도착했다. '너는 우리와 달라. 이제부터 아는 척하지 마.' 일방적인 통보이자 경고장은 내 세상을 무너뜨렸다.


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편지를 쓰고, 메일을 보내고, 학원 앞에서 밤마다 기다렸다. 타당한 설명을 들을 때까지 끈질기게 그들의 그림자를 쫓았다. 동성에게 매달렸던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말을 해줘야 사과라도 할 거 아냐. 이렇게 빌게. 왜 내가 다른 건데? 왜 설명을 안 해주는 건데..."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불과 한 달 만에 나는 반 전체에서 투명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때 알았다. 세상에서 미움보다 더 무서운 것은 외면과 무관심이라는 것을.


'견디다'라는 동사의 무게를 배운 시기였다. 하교하는 길에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수련회와 수학여행을 포기하면서도 부모님께 이유를 털어놓을 수 없었다. 매일 밤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새벽녘이면 긴장과 두려움이 몸을 잠식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어린아이에게나 있을 법한 야뇨증이 고등학생인 내게 찾아온 것이다. 부끄러움과 수치심은 따돌림보다 더 날카로운 칼날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내가 겪는 스트레스가 단순한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온몸으로 새겨지는 현실임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했다. 매일 밤 아침이 오지 않기를 기도했지만, 시간은 잔인하게 흘렀고 결국 졸업장을 손에 쥐게 되었다. 나는 그 기억을 암흑의 상자에 넣어 바다 깊숙이 던졌다. 보이지 않으면 상처도 사라질 거라고 믿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고통스러운 기억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그들의 환영은 내게 하나의 메시지를 각인시켰다. ‘너는 누구와도 친해질 수 없다.’ 파괴된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이는 결국 나 자신 뿐이었다. 풀리지 않는 실타래의 앞에 앉았다. 실끝을 잡고 덮어두었던 일기장을 다시 폈다. 억눌렸던 감정이 펜을 따라 미끄러질 때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 속삭였다. 소용돌이 같던 마음은 조금씩 고요해졌다.


어느 날,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차가운 눈빛 속에서 그나마 나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던 c였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과거를 설명했다.


"...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걸 매우 유감으로 생각해. 그 일이 있기 전날, 우리는 너희 부모님과 저녁식사를 했지.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리 셋은 말이 없었어. 각자 네가 우리와 다르다고 느꼈지. a의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고, b는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고, 난 아버지가 안 계셔. 지금도 소아 당뇨병에 걸린 동생과 무기력한 엄마 밑에서 가장처럼 지내고 있거든.


너는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했어. 그땐 서러 어울려 다녔지만, 너와는 한 번도 가족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 각자 자신의 결함을 내보이기 싫었던 거야. a가 네가 싫다고 말했을 때, 우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어. 사실 지금 어떤 감정으로 너에게 메일을 쓰고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언젠가 말해야 할 것 같았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스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다자키는 자신의 신체의 일부처럼 여겼던 네 명의 친구들에게 철저히 거부당했다. 누구도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았기에 그 사건은 그를 죽음의 문턱까지 끌고 갔다. 16년이 지나서야 그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순례를 떠났고, 결국 그로 인해 역사적 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통의 메일 덕분에 나는 다자키처럼 순례길에 오르지 않았으므로 c에게 감사를 표해야 했을까? 나는 답메일을 쓰지 않았다. 망설임 없이 삭제 버튼을 눌렀다. 실타래 끝에 매달려 있던 단단한 매듭은 풀렸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기억은 불쑥 고개를 든다. 누군가에게 외면당하면 심장이 죄어 오는 느낌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사람을 사랑한다. 강아지처럼 따라다니며 마음을 내어주는 성향은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쁠 이유는 없다. 기억은 우리를 조금씩 완성해 가는 재료이자, 스스로를 이해하고 성장하게 만드는 거울이기도 하다. 우리는 기억을 다루는 법을 배우며, 때로는 용서하고, 때로는 잊는 연습을 통해 마음의 균형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상처를 마주하며, 인간관계와 삶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잊어야 할 일은 빨리 잊어라. 망각하라." 망각이 운에 맡기는 일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운을 기다리기보다는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서 작은 의미를 찾아내고 싶다. 그 기억이 내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나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게 하는지 천천히 되새기며, 삶 속에서 조금씩 받아들인다. 글을 쓰며 내 마음속 상처와 고통을 마주하고, 그것을 글로 풀어낼 때마다 조금씩 이해하고 치유되는 것을 느낀다. 글쓰기는 나에게 상처를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 도구였고, 그 과정 자체가 나만의 치유이자 나만의 방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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