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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Jul 05. 2020

낯선 아이의 울음소리.

아파트 계단에서 만난 인연.

겨울이 봄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못한 3월 중순. 낮이 조금씩 길어지고 있기는 했지만 찬 기운에 앞 뒤 베란다 문을 꼭 닫아두었다. 아이를 씻기고 거실에서 노는 동안 주방에서 바삐 물소리를 내며 저녁 준비를 했던 나. 잘 놀고 있던 아이가 나를 향해 뛰어왔다.


"엄마엄마 이상한 소리가 나요." 처음에 나는 아이가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엄마엄마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니까요!!" 앞치마를 잡아끄는 아이를 보며 개수대에 물을 끄고 아이의 얼굴에 눈을 마주했다. 호기심이 가득 찬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더니만 현관 쪽으로 내 손 이끌었다. -흐엉...... 아아아... 엄마 ㅠㅠ- 앞부분만 들었을 때는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분명히 들려왔다. '엄마' 그 또렷한 음성에 나는 아이의 손을 놓고 현관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더 또렷하게 들리는 울음소리...


아파트 통로 사이. 16층까지 있는 그 공간 전체가 눈물로 진동하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아이는 울고 있었던 걸까... 왜 우는 거지? 혹시 아동학대?'

"여기 있을래? 누가 우는지 엄마 다녀올게."

"싫어요. 혼자 있으면 무서워요. 무서워..ㅠㅠ"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졌다. 짧은 순간 별 생각이 다 들어 일단 아들에게 옷을 입히고 슬리퍼를 끌며 계단으로 향했다. 아래서 우는 소리는 아닌데... 한걸음 한걸음... 나를 따르는 아들도 걱정이 되었는지 점점 크게 들려오는 낯선 울음에 손끝이 파르르 떨려왔다. 한층을 올라가도 울음소리의 주인공은 만날 수 없었다. 또 한층을 올라가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더 크게 들리기만 할 뿐...

집에서 3층 정도 올라갔을 때에야 계단에 앉아서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8살 정도? 얇은 겉옷을 입어서 인지 더 왜소해 보이는 남자아이. 내가 가까이 가도 아이는 고개를 무릎 사이에 깊숙이 박고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엄마... 엄마... 무서워요... 엄마..ㅠㅠ"

"애야. 잠깐만 나 좀 볼래?" 

내가 살짝 어깨를 흔드니 그제야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무슨 일이야? 말해줄 수 있을까?"

"엄마가ㅠㅠ 엄마가 집에 있겠다고 했는데... 없어요.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없어요." 

아이는 한참을 더듬으며 한 문장을 겨우 완성했다.  

"그래? 일단 몸이 너무 차다. 여기 있으면 감기 걸리니까 이모집으로 가자. 3층만 내려가면 되거든." 

뒤에서 빼꼼히 우는 형을 바라보던 아들이 손을 내밀자 경계심을 보이던 아이의 눈에서 조금씩 눈물이 말라갔다. 아파트 안이었지만 이렇게 있다간 감기 걸릴게 분명했다. 3층을 다시 내려와 불을 켠 거실에서 울던 아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혹시 부모님 연락처 알고 있을까?" 돌아오는 건 고개를 도리도리.

"엄마 아빠는 계시지?" 끄덕끄덕~

눈이 벌겋게 충혈되고 부어 있는 모습을 보니 짧게 울었던 건 아니었나 보다. 그렇게 아이가 우는데도 누구 하나 문을 열어 확인해보지 않았다는 것에 나도 모르게 속이 아릿했다. 아무래도 아들을 키우는 입장이라 감정이입이 된 모양이었다.


우유 한잔을 따뜻하게 데워 아이의 손에 쥐어주고 관리실에 연락을 했다. 엄마의 연락처를 받아 전화를 했지만 몇 번을 해도 받지 않았다. 낯선 번호가 액정에 떠서였을까? 결국 5번 정도 걸다가 포기하고 짧은 문자를 남겼다. - 아드님께서 울고 있어서 저희 집으로 잠깐 대려왔어요 문자 확인하시면 연락 주시겠어요.-




1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던 아이는 어느 순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우리 집을 관찰했다. "부모님 일하시니? 혹시 형제간은 없고? 몇 살이야?"

울고 있을 때는 말을 잘하던 아이는 고개만 이리저리 흔들며 개미 같은 목소리로 "8살"이라고 대답했다. 이제 막 초등학교를 입학 한 아이. '대체 부모는 어디를 간 것일까?' 내년이면 우리 아이도 똑같은 1학년이 될 텐데... 나라면 절대 학기초에 아이를 덜렁 두고 어디를 가지 않았으련만~ 나도 모르게 내 상황과 빚대어 생각하기 시작했다.


1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아이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리고 아이와 통화를 시켜주는데 너무 크게 통화음을 설정해 놔서 인지 통화 내용을 그대로 들을 수 있었다.

'집 앞에서 기다리면 어련히 알아서 들어갈 텐데! 왜 남에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어? 응? 기다려 빨리 갈 테니...'

차가운 말투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아이는 자신의 대답도 듣지 않고 끊어버린 폰을 내게 내밀었다.


"엄마가 많이 바쁘셨나 보네. 아마 혼자 울고 있다고 하니까 속이 상하셨을 거야. 이모 아들이 혼자 울고 있었다면 나도 맘이 아파서 달려오고 싶었을걸. 혹시 엄마가 뭐라고 하시면 이모가 잘 이야기할게 겁먹지 마."

이번에도 아이는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뭔가 다른 말을 걸고 싶었다.

"있지 이모도 아들 하나거든. 혹시 학교 다녀와서 엄마 안 계시고 또 이런 일 있으면 언제든지 내려와서 벨 누르도록해. 거의 이 시간엔 있으니까... 엘리베이터에서 보면 우리 인사하자.^^"


2시간이 지나 새까만 밤이 돼서야 우락부락한 아주머니 한분이 벨을 누르셨다. 나는 서둘러 아이의 입장을 대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고개만 살짝 숙일 뿐이었다. 엄마의 차가운 눈빛을 알아챈 아이는 채 신발을 신기도 전에 한쪽 팔이 잡혀 질질 계단을 끌려 올라갔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혹시 집에 가서 많이 혼나는 건 아닐까? 그냥 뒀어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마지막 집을 나서던 아이가 눈에 밟혀 그날 저녁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이 닥친 들 나는 주저 없이 아이를 데려와 집에 머물게 했을 것이다.


한동안 아이의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을 때, 우연처럼 엘리베이터에서 아이를 만났다.

"그날 엄마에게 많이 혼났어? 학교 끝나고 이모집에 놀러 와도 돼^^" 나는 안심하라는 뜻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네~~"


그 후 아이는 가끔 내려와 아들과 놀아주곤 했다. 형제간이 없는 둘은 금방 친해졌다. 주눅이 들어 있긴 했지만 아들에게 장난감을 양보하는 모습에서 착한 심성을 가진 따뜻한 아이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이 엄마와 친분을 쌓고 싶었지만 내 욕심이었는지 밝게 인사를 해도 돌아오는 건 냉소적이고 싸늘한 반응이었다. 아무래도 대인관계에서 상처가 많은 사람인 듯 보여 나는 가끔 오는 아이에게만 신경을 썼다. 


몇 달이 지난 후

"이모 있지요. 저 이사 가요. ㅠㅠ"

"아 그래? 어디로?"

"멀리요. 엄마가 그러는데 멀리 간데요."

"그렇구나. 아쉬워서 어쩌지? 이모는 너랑 정이 많이 들었는데..."

"저도요... 혹시 전화번호 적어주실 수 있어요?"

"그럼..^^ 주소도 적어줄 테니 나중에 편지도 보내줘 이모가 답장 꼭 할게. 약속할 수 있어."

"네~^^;;" 


8살 남자아이는 이사를 가는 아쉬움보다 내 전화번호와 주소를 적은 종이를 꼭 안고 밝은 미소를 보였다. 귀엽고 순수한 아이~ 아들과 잘 놀아줘서 참 고마웠는데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릴 때의 기억. 그것은 4살 무렵 아빠가 삼촌과 함께 논에서 모내기를 하시던 날의 기억이다. 그날 논둑에 혼자 앉아 멀리서 일하시는 아빠와 삼촌을 보며 기다리고 기다리다 눈물을 뚝뚝 흘렸었다. 그늘 하나 없는 땡볕에 덩그러니 앉아 울어도 나를 돌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뿌옇게 보이는 두 분과 털털털 무서운 기계 소음뿐... 누군가 나를 안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어린날에 말이다.


나는 계단에서 우는 아이를 보며 어린날 나를 떠올렸다. 엄마의 따뜻한 품을 기다렸을 아이가 마냥 안쓰럽기만 했다. 아이는 "인연"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을까? 훗날 어른이 되어 겁에 질려 울던 자신을 떠올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아픈 기억이 스칠 때 잠시나마 따뜻한 손길이 있었음을 생각해 준다면 좋겠다고 마음으로 빌어보았다.

세상엔 어둡고 힘든 만남도 있지만 그 반대로 밝고 따뜻한 만남도 있다는 걸. 그런 만남을 나는 "인연"이라고 부른다는 걸 8살 아이에게 설명해 줄 수는 없었다. 단지 "잘 가. 고마웠어"라고 말하며 잠시 안아주었다. 계단을 몇 칸 오르다 뒤를 돌아보던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뭐라 말을 던졌지만 나는 끝내 알아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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