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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Jun 29. 2020

친정엄마의 유산이  남편에게 미치는 영향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유산을 받았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손에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친정 아빠"를 말할 것이다. 지금은 아프셔서 많은 일들을 하지 못하시지만 내 기억 속에 아빠는 존경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분이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믿음이라고 여기며 나는 성장해 왔다.

그 당연한 생각이 절대 당연하지 않음을 나는 결혼 후 한참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내가 고등학교 진학할 무렵 아빠의 세상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절친한 친구에게 보증을 서고 집에 빨간딱지들이 붙여지던 날, 아빠의 마음은 칼에 찔려 중상을 입었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더는 일도 하지 못하고 방에서만 시간을 보내셨다.


그런 아빠를 바라보는 가족들 역시 상처 받기는 마찬가지. 수입이 끊기면서 어찌해야 될지 난감했다. 집에 고등학생과 중학생 두 아이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고 해도 집에 입이 4개였다. 엄마가 건강을 회복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직장생활을 하고 계셨지만 혼자 가족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 아빠를 집어삼켰다. 내가 아내의 입장이었다면 어떠했을까? 부부싸움은 아니더라도 남편에게 원망 어린 목소리를 냈을 수도 있었다. 아니 엄마는 청소년기였던 동생과 나에게 푸념을 늘어놓을 수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엄마는 묵묵히 그 8개월의 시간을 아내와 엄마 역할에 충실하셨다. 차라리 내가 어릴 때처럼 싸움을 하시지 라는 마음도 잠깐 들었지만 주말에도 일을 나가시면서

"엄마가 없으면 집에 여자가 너뿐이니까 아빠 식사 꼭 챙겨 드리고~ 아빠 우울하니까 너 힘들어도 좀 웃고 그래. 무슨 말인지 알지? 아빠가 배신감이 커서 그래. 엄마는 아빠가 다시 털고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봐. 아빠 금방 괜찮아지실 거야." 엄마는 내게 그렇게 말씀하셨었다.


어린 맘에 이해하기가 힘들어서 내가 오히려 발끈했다. 내 꿈을 포기하면서까지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게 싫어서 생애 첫 반항을 꿈꿔볼까 했지만 엄마는 그러지 말라며 힘든 엄마보다 "아빠 편에서~" 나를 이해시켰다.

'너는 아빠 같은 사람 만나지 마라. 내 팔자야... 휴~~' 드라마에서 보는 친정엄마들이 딸들에게 하는 대사처럼 말했더라면 나는 아마 아빠를 존경하기는커녕 원망하며 자랐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그 현명한 태도 덕분에 아빠는 8개월 만에 털고 일어나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시간 동안 엄마는 끊임없이 우울한 아빠의 영혼에 약을 발라 주셨다. 괜찮다고 당신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말이다. 결국 아빠는 깜깜한 터널을 빠져나와 우정과 돈을 잃었던 상처를 극복해 내셨다.


이 일로 나는 엄마에게 살면서 가장 큰 유산을 물려받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남편의 입장을 먼저 고려할 것, 그리고 아이는 아빠를 존경심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키울 것. 이 두 가지 말이다.

몇 달 전 남편이 회사에 사표를 내겠노라고 아침에 연락이 왔다... 자세한 건 집에서 이야기 하자며 윗 상사가 몇 달 동안 자신을 함부로 대했다는 말이 전부였다. 순간 막막함에 눈앞이 깜깜했지만 10년 동안 다닌 직장을 단번에 그만둘 정도면 보통 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일단 이 남자의 말을 들어보고 싶었기에 퇴근까지 기다렸고 우리는 아이가 잠들었을 때에야 술 한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내가 그만둬도 괜찮겠어? 진짜 못 버티겠네요."


"하루 종일 생각해 봤는데... 자기가 이렇게 말할 때는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예전에 아빠도 그러셨을 때가 있었어요. 그때 엄마가 8개월 동안 많이 참으셨지. 나도 그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어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결정이 섰으면 사표 내고 와요.^^"


남편은 친정엄마가 준 "유산"에 무척 감사해했다. 그리고 한번 더 참을성을 나타내 지금까지 그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 아마 그때 내가 "자기가 회사 안 다니면 아이랑 나는 어쩔 건데?"라고 이야기했다면 상황이 더 나빠졌을지도 모르겠다.


늘 퇴근하는 문소리에 내가 집안일을 하건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건 현관문으로 가 남편을 맞이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아빠는 집안의 가장이자 마땅히 존경해야 할 존재로 아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였을까? 남편이 피곤해서 잠들어 있는 시간에도 아이는 투정부리지 않고 아빠를 배려한다.

"우리를 위해 고생하셨으니까... 조용히 해드려야지." 아이가 이런 말을 하면 고맙고 한편으로는 남편이 친정엄마가 준 유산을 잘 받고 있다는 생각 동시에 든다.  


친정엄마가 내게 남겨준 유산은 돈보다 값진 것이었다. 이 유산은 내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 사라지거나 퇴색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내가 아빠를 가장 존경하고 사랑했던 것처럼 아이도 그렇게 아빠를 존경하고 사랑하며 성장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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