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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Jul 27. 2020

친정 아빠와 걷는 길.

인생에 단 한 번의 기적이 허락된다면...

내가 사는 아파트에 이른 아침과 늦은 오후! 하루 두 번 손을 꼭 잡고 걷는 분들이 계신다. 둘 다 야위었지만 가까이서 보면 똑 닮은 어머니와 딸. 오른쪽 손과 다리가 불편한 딸을 어머니는 부축하며 걷는다. 비나 눈이 오면 지하 주차장을 걷는데  딸은 늘 무표정~ 그런 딸에게 어머니는 연신 도란도란 말을 건넨다. 무슨 이야기일까? 몇 번 스치듯 지나갔었다. 그러다 한 번은 두 분의 대화가 궁금해 내 앞을 걸어가는 두 분의 곁으로 조금 더 가까이 가볼 수 있었다.

"장조림은 말이야. 좋은 고기와 달걀을 사야 해. 육수가 좋아야 맛있거든... 소고기를 종종종 썰고잉~ 그다음에....."

아아 장조림 만드는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구나. 딸은 여전히 무표정. 가슴 한편이 따끔거리고 아린다. 엄마는 얼마나 딸과 대화를 하고 싶으실까?? 추운 날 무리해서 나온 딸의 손을 잡고 건네는 말들은 사소해 보였지만 따뜻했고 좀 더 나아지길 바라는 엄마의 사랑이 간절해 보여 내 느린 걸음이 더 느려졌다. 


내게 인생의 단 한 번 기적이 허락된다면~ 

연예인처럼 예뻐지는 것도 로또 1등 당첨도 그렇다고 결혼 전으로 돌아가고픈 그런 것이 아니다. 딱 지난해 5월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다. 좀 더 일찍 아빠가 단어 두 개를 반복해 이야기하며 더듬거리고 있다는 걸 캐치하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럽다. 머리가 아프다고 하셨던걸 아무렇지 않게 진통제 먹으면 암시 낭도 안 해라고 말했던 엄마. 그때 대학병원으로 갔어야 했는데...ㅠㅠ

아빠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고 편마비가 오면서 1년 동안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아빠 손길이 다 배어있는 집은 이제 엄마 혼자 해야 하는 숙제가 늘었고 그 때문에 사랑으로 키웠던 강아지 두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가 다른 집으로 가게 되었다. 

누구보다 활기찼던 우리 아빠.. 어린 시절 이소룡보다 더 쌍절곤을 잘 돌리셨던 공익 10단 우리 아빠...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뇌 색남 우리 아빠... 쓰러지기 전까지도 영어 단어를 깜지에 쓰며 외우셨던 우리 아빠~~

너는 왜 엄마 닮지 아빠 닮아서 짜리 몽땅 이냐고 날 놀리던 우리 아빠... 성우보다 더 목소리가 좋아 강연만 하시면 다들 놀랐던 우리 아빠.... 아빠..... ㅠㅠ

지금 아빠는 조금만 움직여도 머리가 아프시단다. 책을 못 보는 게 서럽다 하신다. 발음은 현저히 느려졌으며 펴지지 않는 왼손은 45도 각도로 기울어져 있다. 내가 아빠 대신 아플 수 있다면 1초도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장기하나 도려내어 예전 아빠로 돌아올 수 있다면 기꺼이 그러겠노라고~ 그런데 그럴 수 없는 뇌의 이상은 참으로 모질고 서럽다. 죽은 뇌세포는 그대로 까맣고 파랗게 아빠 머릿속에 평생 있을 테니 말이다. 

아파트 단지를 왔다 갔다 도는 엄마와 딸처럼~ 아빠의 걸음이 느려서 이제는 내가 그 발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어야 한다.  "장조림은 말이죠..."라며 말을 건네면서 말이다. 작년 5월로 돌아가는 불가능한 기적보다 지금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꿈꾸는~ 조금만 더 좋아진다면 함께 걷자고 아빠에게 데이트 신청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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