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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Aug 02. 2020

5만 원 주고 가야지...

시할머니를 추억하며...

2012년 가을이었다. 시댁에 처음 가는 날~ 손발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입술은 바짝바짝 말랐다. 전날 마음 가볍게 오라며 예비 시어머니와 통화를 한 후였지만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는 없었다. 13남매의 막내인 시아버지께서 30년간 모셨다는 말씀만 듣고 처음 뵈었던 시할머니.


검버섯 하나 없는 밝은 피부에 깔끔하게 비녀로 꼽은 흰머리~ 분홍 카디건을 입으신 모습이셨다. '100세 가까이 되신 분께서 어떻게 이렇게 곱게 나이를 드셨을까?' 시할머니께서는 덥석 내 손을 잡으시더니~~“손지 며느리 왔구나~ 곱네~”하셨었는데...인사를 마치고 나가려는 남편과 내게 딱 그 말씀을 하셨다.


“할머니 용돈 안주냐? 5만 원만 주고 가라” ^^~~ 


가장 큰 외손녀로 사랑을 듬뿍 받았던 나는 늘 할머니께서 챙겨주신 용돈으로 학용품을 사고 군것질을 했었다. 부모님께 용돈을 받지 못하는 형편인 걸 너무 잘 아셨던 외할머니!! 생각해보니 나는 월급날 할머니 선물은 사드렸지만 용돈은 드린 적 없었기에 시할머니께서 ‘용돈 주라’라는 말이 어색하게만 들렸다.


남편은 후다닥 지갑에서 10만 원을 꺼내 할머니 손에 쥐여주며 

“우리 할머니 맛있는 거 사드세요. 동네 할아버지 주면 안 돼 알았지요?”라며 발걸음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늘 할머니께서 용돈 이야기를 하냐고 했더니 집에 오는 모든 식구들에게 그렇게 ‘용돈을 달라’말을 하셨단다. 그 돈으로 어머님 안 계실 때 자장면도 시켜 드시고, 경비 아저씨 용돈도 주신다며... 할머니의 반전 매력에 나는 "쿡"하고 웃음이 나왔다. 몇 년 후 기억을 잊는 병이 할머니의 뇌를 서서히 잠들게 했을 때에도 두 가지는 잊지 않으셨으니 바로 용돈과 식사!!


효부였던 시어머니는 하루에도 여러 번 시할머니의 식사를 챙기다 결국은 지칠 대로 지쳐버리셨다. 그도 그럴 것이 시할머니께서 넘어지셔서 고관절이 부러지고 거동도 어려워지셨는데 계속 밥상만 차리라고 하니~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가끔씩 내려가 시할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시어머니의 고충이 이랬구나. 체험학습을 했던 때가 있었다. 결국 가족들의 상의 끝에 시할머니는 요양원으로 모실 수밖에 없었다. 시할머니를 유독 따랐던 남편은 시간이 날 때마다 요양원으로 그분을 뵈러 갔다. 가족들을 다 몰라봐도 남편과 나는 꼭 알아보셨던 시할머니...


“우리 손자며느리 왔구나. 할머니 용돈 주고 가라^^”

“저 알아보시겠어요?? ^-^ 할머니는 누워계셔도 예쁘시네요.^^ 네~~ 많이 드릴게요. 대신 빨리 일어나셔야죠!!”


그렇게 요양원에서 몇 개월 후 잘 드시던 식사를 거를 때. 마음이 쓰였던 시부모님은 다시 집으로 할머니를 모시고 왔다. 매끈했던 피부 위로 마른 뼈가 만져질 무렵 얼마 남지 않았음을 모든 식구들이 자각할 때쯤 할머니께서는 집에서 편히 눈을 감으셨다.


생애 처음 누군가 숨을 거두는 장면을 바로 옆에서 목격하게 된 것이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남편 옆에서 시할머니 손을 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만 보면 배시시 웃으시던 모습 때문에, 창피할까 봐 기저귀 갈면서 괜찮다고 말하는 나에게 “미안하다. 고맙다”라고 말씀하셨던 그 모습 때문에~ "우리 증손은 아들이겠네" 볼록한 내 배를 쓰다듬으며 하신 말씀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또 아팠다.


그렇게 돌아가신 지 올해로 4년!! 가족들 꿈에는 할머니가 아니 온다는데 내 꿈엔 자주 오신다. 어제도 같은 꿈을 꿨다. 오셔서 하시는 말씀  ‘할머니 5만 원!! 용돈 주라~~’ 


나는  꿈속에서 시할머니를 뵐 때면 다음날 아침 꼭 사후세계를 다녀온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살아계실 때 남편을 유난히 아끼시던 시할머니~ 

“남편은 제가 잘 챙기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그리고 제가 꼭 꿈에서라도 용돈 많이 챙겨드릴게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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