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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Jul 03. 2020

외할머니의 술빵을 생각하며...

이렇게 쉬운 보리 술빵을 봤나?

촉촉한 단비가 내리는 오후.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걷고 있을 때 어디선가 술빵 냄새가 코끝에 맴돈다. 1톤 트럭 위 산처럼 쌓여있는 건포도가 박힌 빵들이 보였다.


"엄마 저거 저거 큰 노란 거 뭐예요?"

"아~~ 술빵이네^^"

"저거 먹으면 취해요?"

"아니~ 취하진 않아. 엄마가 만들어줄까?"


술빵에 대한 행복한 기억이 스쳤다.

내가 한창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1년에 한두 번 외할머니 댁에 갔다. 여수에서 광주까지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늘 바쁘신 부모님은 추석, 설날 둘 중 하루만 선택해 우리를 대리고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오는 손주들이 무척 반가웠을 외할머니.

그때 당시 작은 분식집을 하시며 치킨을 튀기시던 할머니의 음식 솜씨는 그야말로 일품이셨다. 커다란 상 한가득 갈비, 잡채, 해물탕, 각종 전 등 더 먹지도 못할 음식이 차려놓고 빤히 우리 가족의 입만 바라보셨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말이 뭔지 어린 나는 몰랐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할머니의 눈길은 딱 그 마음'이었구나 생각하게된다.


저녁상을 거하게 받은 다음날 남동생과 부모님은 친할머니 댁으로 가고 나는 외할머니와 더 있고 싶은 맘에 남았던 날. 어차피 저녁이면 돌아오신다기에 외할머니와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이 좋았다.


"우리 향기 할머니가 신발 사줄까?"

"할머니 저 신발 있어요."

"아니 할머니가 신발 사주고 싶어서 그래."


마다하는 내 손을 잡고 아파트 건너편 시장 중앙 쪽에 신발가게로 향했다. 장화, 털신, 고무신, 구두, 운동화 온갖 신발들이 가게 앞에 쫘악 펼쳐져 있는 곳에서 과연 내가 신을 신발도 있을까 싶었다.


"여기 꼬맹이 신발도 파요?"

"이리로 들어오세요." 주인 아저씨의 손짓에 좁디 좁은 가게를 안쪽으로 들어갔다.

새것의 냄새~ 고무와 가죽 향으로 얼굴을 찌푸린 나는 할머니의 얼굴만 올려다볼 뿐이었다.


"요즘 애들이 편하고 예쁘게 신는 게 뭐 있소?"


아저씨는 주저하지 않고 핑크색 구두를 내 발 앞에 딱 놓아주셨다. 할머니는 말 대신 내 작은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편한 운동화가 좋은데... 나는 실밥이 이곳저곳 나온 흰 운동화에서 발을 살포시 빼내었다. 엄마는 늘 실용적인 신발을 사주셨기에 구두를 신어볼 기회가 없었던 나. 어색했다. 톡톡 탁탁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도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었나 보다.


"이거 얼마요? 아따 좀 싸게 주쇼"


다른 신발을 신어보기도 전에 이거라고 찜하신 할머니는 오른쪽 주머니에서 푸른 지폐를 꺼내셨다. '운동화 안사고 구두 샀다고 엄마에게 혼나면 어쩌나...' 나는 내심 걱정했지만 내 발에서 빛나는 구두를 보는 할머니의 눈빛은 참으로 따뜻했다. 왠지 엄마의 야단에 나를 지켜줄 것만 같은 커다란 방패처럼 할머니는 내게 그런 존재셨다.  


구두방을 나와 장을 보는 할머니 곁에서 술빵 냄새를 처음 맡았다.


"할머니 저 큰 빵 뭐예요?"

"아... 저거 술빵. 먹고 싶냐?? 할미가 집에 가서 해주마."


잠시 방앗간에서 옥수수가루와 막걸리를 산 할머니는 뚝딱 집에서 술빵을 만들어주셨다. 할머니께서 낳은 7남매 중 맏이인 엄마가 낳은 첫 손주. 첫 손녀였기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나는 사랑을 받았다. 그 날 할머니와 둘만의 데이트를 즐기며 새 구두도 처음 맛보는 술빵도 너무 맛있고 행복했던 순간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어른이 되어 외할머니가 생각날 때면 나는 술빵을 만든다.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해주신 할머니지만 새 신발 때문이었을까? 유난히 기억에 남는 술빵~ 어릴 땐 복잡해 보였는데 의외로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그때 처음 맛보았던 술빵의 맛을 100% 흉내 낼 수 없지만 나는 아들에게 사랑을 넣어 보리 술빵을 만든다.


보리가루 250g

우유 100g

생막걸리 부침개 농도.

계란 1개

선택: 콩배기, 팥배기, 견과류


1. 용량에 보리가루를 넣고 계란을 풀어준다.

2. 1에 우유를 부어 섞는다.

3. 2에 생막걸리를 섞는다.

4. 머핀 틀에 위 반죽을 3분의 2 정도 넣어준다. (머핀 틀이 없다면 종이컵에 넣어도 된다.)

5. 머핀 위에 콩배기나 견과류를 올려준다.

6. 찜기에 35분 가열한다.

7. 완성되면 식힘망에 꺼내어 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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