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을 책은 아침에 정했습니다. 저번주에는 독서모임 가는 도중에 부랴부랴 정했지만 오늘은 침대에서 느긋하게 정했으니 조금은 발전한 스스로에게 만족합니다. 밀리의 서재에 들어가서 스크롤을 조금 내려보면 ‘오늘 읽어야 할 단 한 권’이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지만 오늘은 책을 골라야 하기에 눈길이 조금 더 갔습니다. 오늘의 도서는 낯선 이름의 ‘플뢰레’입니다. 낯설지만 펜싱 용어라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검색해보니 펜싱에서 사용되는 무기(?)들 중 하나라고 하더라구요. 단어 자체만으로도 알 수 없는 멋있음을 뿜어내는 이 책은 마침 올림픽이 열리고 있었기에 바로 픽!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스포츠 선수들은 대단합니다. 대회를 위해, 실력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훈련을 수행해요. 훈련하는 모습을 직접 봐온 건 아니지만 메달을 딴 선수가 끝끝내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면 고된 시간을 버텨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꾸준한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운동이란 건 아주 힘든 활동입니다. 체육인이 아닌 일반인으로서 한 달에 한 번, 또는 일주일에 한번 1~2시간만 운동을 해도 금방 지쳐버려요. 그런데 스포츠 선수들은 똑같은 훈련을 매일 몇 시간씩 반복합니다. 힘들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할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훈련을 견뎌내 메달까지 따는 사람인 선수들이 저에게는 너무나도 궁금한 부분입니다. 사실 이런 질문은 기자들이 선수들을 인터뷰할 때, 단골 질문이기도 해요.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훈련에 임할 수 있는지를 묻는 기자가 많거든요.
기억에 남는 답변이 있습니다. 같은 질문을 어떤 기자가 김연아 선수에게 물었었죠. 돌아온 답은 굉장히 허무했어요. “그냥 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명쾌한 답변이고 어떻게 보면 의문이 해결되지 않는 답변입니다. 전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방법을 따질 시간에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후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냥이 안 돼서 방법을 찾기 위해 물었는데 그냥 해야 한다니’하며 절망할 수 있어요. 저는 비교적 후자의 입장이었습니다. 저도 꾸준히 노력하는 게 참 어려운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오늘 고른 플뢰레라는 책이 더 읽고 싶었습니다. ‘그냥’을 실천하는 운동선수의 에세이라면 ‘그냥 꾸준히 하는 방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게 됐거든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와는 다르게 이 책의 작가님은 무언가를 그냥 하시는 분은 아니었습니다. 의미를 찾아내고 확인하고 정리하는 사람이었어요. 어쩌면 책을 통해서 ‘그냥’ 이란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한 저의 질문이 잘못된 건가 싶습니다. 무언가를 그냥 하는 사람이 수많은 의미가 담긴 책을 쓰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잘못된 기대를 알아차릴 쯤에는 작가님의 매력적인 이야기에 빠져서 그냥(?) 읽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이 책의 저자이신 김민성 작가님을 대신 소개하자면 음.. 엄청난 사람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펜싱을 배워 선수 생활을 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대학교 동아리에서 펜싱을 시작하여 각종 국제 대회를 휩쓸고 국가대표 선발 예선전까지 통과한 선수입니다. 한편으로는 어렸을 때부터 펜싱을 배워온 선수보다 더 대단하게 보입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운동을 시작하여 국가대표 예선전까지 갔다는 사실은 처음 들어보니까요.
이게 끝이 아닙니다. 이 분은 무려 쓰리잡을 가지고 계세요. 펜싱 선수지만 펜싱 용품을 파는 사업도 시작했고, 시를 쓰기도 합니다. 철학과 국문학을 전공하셨더라구요. 펜싱과 사업과 시라니, 좀처럼 연결되지 않는 단어들의 연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독자들에게 3가지 분야의 연결이 낯선 만큼 작가님에게도 고충이 있었습니다. 서로 관련이 없는 일인 만큼 각 분야를 오가는 일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분야를 바꿀 때마다 스위치를 껐다 켜야하는 기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어요. 각 분야들을 오갈 때에 발생하는 이질감은 결국 세 가지 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 셋 중 부족한 부분을 남기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작가님은 세 분야의 유기적인 관계를 만들고 싶어 고민을 했는데 그 고민이 독자로서 아주 인상깊습니다.
작가님의 고민을 보면서 정리를 아주 좋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사실 이 책의 큰 목차가 펜싱하는 마음, 펜싱하는 태도, 펜싱하는 방법 3개로 구분되어있는 것만 봐도 일관성을 추구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은 사람이 하는 일을 먹고사는 데 유용한 일과 무용한 일로 나눴습니다. 펜싱 사업은 유용한 일입니다. 돈을 벌어다주니까요. 생존을 위해서 돈이 전부인 것은 아니지만 돈이 필요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반면 시와 펜싱은 무용한 일입니다. 돈을 벌어다 주진 않으니까요. 그럼에도 시와 펜싱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를 작가님은 실존을 통해서 얘기합니다.
스포츠 에세이를 읽으면서 철학에서나 나오는 실존을 마주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실존은 20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철학 사상으로 대표적인 철학자로는 하이데거가 있습니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이라는 책을 통해서 존재와 존재자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설파한 사람입니다. 이 책은 하이데거가 자신의 생각을 기존의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어 새로운 용어를 만들기까지 하며 쓴 책이라 굉장히 어렵고 난해하다고 정평이 나있는데요. 물론 저도 읽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책을 해설해주는 여러 책에서 관련 내용을 접한 터라 대충은 알고 있어요.
작가님은 책에서 이런 표현을 사용합니다.
‘실존을 고민해야 인간이 존재자로 존재할 수 있다.’
존재자는 쉽게 말해 존재하는 사물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사물이나 대상이 되죠. 존재는 말 그대로 무언가가 ‘있다’입니다. ‘컵이 있다’는 말을 하이데거식으로 표현하면 ‘존재자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어요. 물론 이러한 설명은 너무나도 단순해서 본래의 설명을 만 분의 일도 담지 못하지만 위 문장에서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위 문장에서 중요한 부분은 인간입니다. 다른 어떤 존재도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묻지 않습니다. 아프리카에 사는 사자가 ‘나는 왜 존재하지’라는 고민을 할 순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유할 수 있어요. 하이데거는 이러한 인간을 현존재라고 명명했습니다. 기존에 있던 인간이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하면 될 텐데 왜 굳이 어렵게 현존재라는 단어를 만들었을까요? 다른 설명서에 의하면 하이데거는 ‘인간’이라는 단어의 너무 많은 의미가 담겨 오염되었기 때문에 존재를 설명하는데 오해가 생길 수 있다고 했어요.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인간이지만 존재의 이유를 묻지 않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존재의 이유를 묻는 사람과 묻지 않는 사람을 구분하고 싶은 마음에 현존재라는 단어를 만들지는 않았을까요? 가벼운 추측입니다. 현존재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는 존재자인 인간이라고 했죠. 이렇게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묻는 태도를 ‘실존’이라고 합니다.
그럼 이제 작가님이 얘기한 문장에서 주요한 단어들에 대한 설명이 다 나왔어요. 실존, 인간, 존재자, 존재. 작가님의 문장을 다르게 풀어서 적어보면 ‘자신의 존재를 물을 수 있는 인간으로서 존재의 이유를 고민해야 혼돈이 가득한 삶 속에서 거뜬히 존재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건 저의 주관적 해석이므로 작가님의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하하하. 그저 원래의 문장이 독자에게 어려울 수 있어 나름의 노력을 해본 것이니 도움이 되는 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입니다.
다시 돌아가보면 유용한 펜싱 사업은 작가님을 생존하게 해 줍니다. 무용한 시와 펜싱은 작가님을 실존하게 해주고요. 쓸데가 없더라도, 생존에 도움이 안되더라도 자꾸 마음이 가는 시와 펜싱이 삶의 이유가 되어주기 때문에 그만둘 수가 없는 겁니다. 그렇게 작가님은 생존과 실존을 구분해 삶의 균형을 찾으려했습니다. 유용한 것과 무용한 것, 생존과 실존으로 삶을 관통하는 기준을 잡는 작가님의 통찰은 간단하면서도 핵심적이기에 뇌리에 깊이 박힙니다. 그냥 실천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집었던 이 책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독서모임에 와서 책만 읽고 가면 모임을 한 이유가 없겠죠? 그래서 질문을 하고 책과 관련된 생각을 서로 나눕니다. 질문으로 '여러분들을 실존하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무언가가 있나요?'라고 남겼으면 참 자연스러웠을 텐데요. 아쉽게도 제가 이날 꽂혀있었던 건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책은 재밌게 읽었지만 제 머릿속에 있었던 건 이 책을 고르게 된 이유였던 '그냥 노력하는 법'이었거든요. 그래서 참석한 회원 분들에게 여러분은 무언가를 할 때 의미를 찾아서 하는지, 아니면 그냥 하는지 물었습니다. 질문이 모호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범위를 한정해서 물었어요. 공부할 때 이해를 좋아했는지, 암기를 좋아했는지.
이해를 좋아하는 사람은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이에요. 납득이 되어야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게 됩니다.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적지만 과목마다의 선호는 있어요. 이러한 사람들은 수학, 과학처럼 원리를 파악하고 이해를 해야 하는 과목을 좋아해요. 수학에서 공식을 만나더라도 그냥 외우지 않고 증명을 파악하려 합니다. 비교적 역사는 싫어할 거예요. 그냥 외워야 할 게 많으니까요. (물론 역사를 깊게 공부하면 그냥 외우는 게 아니지만 학창 시절에 역사 과목은 암기과목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반면 암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효율을 추구합니다. 어차피 시험 점수만 높게 나오면 되는 공부, 모든 내용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골치 아프게 원리를 고민할 필요 없이 냅다 외우고 문제를 푸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답을 맞히며 올라가는 성적을 확인하면 거기서 즐거움을 느낍니다. 수학과 과학처럼 이해가 필요한 학문에서는 어려움을 느낄 겁니다.
당연히 사람을 이해파, 암기파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는 없어요. 다만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겁니다. 여러 사람들이 있겠지만 오늘 독서모임에 나온 분들은 대부분 이해파에 해당했어요. 아무래도 책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독서모임에 들어온 분들이라 그럴까요? 특이한 경향도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다른 한 분도 원래는 이해파였지만 점점 암기파와 같은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는 점이에요.
둘 다 의미를 추구하는 행위에 무의미함을 느껴서 그런 생각을 한다고 했어요. 애써 고민했던 나만의 의미가 뒤돌아보니 아무 의미도 없었던 경험을 쌓다 보니 그런 것도 같습니다. 공부할 때 원리를 고민하며 기를 쓰고 이해했지만 사회에 나와보면 아무 쓸모가 없기도 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맞는지 고민해서 결정을 내려도 시간이 지나 보면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고민만 하며 시간을 때울 것이 아니라 그냥 눈앞에 있는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그것이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조금 지난 노래지만 ‘GRAY(그레이) - 하기나 해(Feat. Loco)’라는 노래가 떠오르네요.
의미를 추구하는 것과 그냥 실천하는 것 둘 다 필요합니다. 중요한 건 본인이 지금 어디에 치우쳐져 있는지를 알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책 플뢰레에서는 실존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반면 저는 책을 리뷰할 때 의미보다 그냥 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얘기했어요. 많은 책에서 의미를 중요시하는 내용을 봐왔기에 다른 얘기를 하고 싶은 청개구리 특성이 나왔던 것도 같네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이해파인가요, 암기파인가요? 의미파 인가요, 그냥파인가요? 지금 고민이 있다면 이런 질문이 여러분에게 하나의 해답이 되어주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