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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그냥 Sep 06. 2024

당신이 독서모임에 간다면

프롤로그

 시영은 평소와 다르게 주말 아침부터 일어나 샤워를 했다. 고단했던 평일의 피로를 풀기 위해 주말에는 늦잠을 잤던 시영은 오늘 특별한 경험을 마주하기 위해 의도한 변화를 실천 중이다. 늦잠은 달콤했지만 늦잠과 함께 빠르게 흘러간 시간은 많이 떫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점심을 먹고 뒹굴뒹굴 대다 맞이하는 저녁은 '너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며 보채는 스톱워치 같았다. 시영은 고민 끝에 주말 아침에 할만한 것들을 찾아봤다. 며칠 전 친구가 집순이 좀 탈출해 보라며 추천해 준 소모임을 둘러보던 시영은 생각보다 많은 모임들이 있어서 당황했다.


 지금까지 영만 이런 모임을 모르고 있었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테니스, 수영, 자기계발, 러닝, 경제, 등산 등 취미란 취미는 다 모였다. 훈남훈녀를 찾는 사교 모임도 있었지만 그런 정글 속에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내향적인 성격 탓에 기가 빨릴 수도 있고 여자에 미친 이상한 남자를 마주치는 것도 걱정됐다. 이성을 만나는 게 목적인 모임만은 피하고 싶었다. 적어도 좋아하는 취미가 기반이 되는 모임 이어야 했다. 좋아하는 취미에 집중해서 재미를 느끼고 유익한 경험을 해야 지금의 삶보다 낫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거 같았다. 그 와중에 눈에 들어온 건 독서모임이었다.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종종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독서모임도 종류가 여러 개가 있었다. 그중에서 고른 건 꽤나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한 모임이다. 가장 필수적인 조건은 주말 아침에 모임이 열려야 했다. 일찍 일어나는 건 쉽지 않겠지만 주말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짧아진 하루가 그나마 길어질 것 같았다. 또, 지정된 독서를 미리 읽어오는 모임은 걸렀다. 직장을 다니면서 몇 번 집에서 책을 읽으려 했지만 마음만 먹고 정말 한 번도 책을 읽지 않은 자신을 잘 아는 시영이었다. 마침 가까운 여의도에서 주말 9시에 각자 원하는 책을 읽는 모임을 찾아 가입했다.


 샤워를 마치고 아침을 맞이한 시영은 꽤나 고양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가 끝나려면 아직도 15시간이나 남았다는 생각에 조급함을 내다 버리고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요즘 다들 갓생갓생한다던데 본인도 이제 그 대열에 들어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잔잔한 클래식도 틀어보고 평소에 의식하지 못한 디퓨저의 향도 흠뻑 취해봤다. 벌써 고풍스럽게 독서하는 교양인이 된 것만 같은 시영이다. 체할 정도로 들이킨 김칫국이지만 때로는 대단한 역사가 이렇게 시작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시영은 그저 만했다. 시작이라도 한 게 어디인가.


 그러나 카페에 다다른 시영은 겁이 나기 시작했다. 직장에 들어선 후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는 환경에 익숙해져 버린 탓이다. '어색하면 어떡하지?', '괜히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어떡하지?', '사이비 종교 있는 거 아니야?' 별별 생각이 떠오른 시영은 어깨에 가방을 움켜쥐며 돌아가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발길을 돌릴 수는 없었다. 친구의 권유와 까다로운 조건을 뚫고 나온 필연을 놓쳐버렸다간 불만족스러운 주말을 며칠이나 더 보내야 할지 모른다. 또다시 그런 필연을 만날 수 있다는 확신도 없었다. 이번에 돌아서면 다음 필연은 더욱더 강한 동기 부여와 더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해야 할지 모른다.


 그렇게 힘차게 문을 연 시영은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아침이라 그런지 한 테이블에만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그 테이블에는 책이 놓여있었다. 이제는 피할 수 없는 만남에 두려움이 일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걸어가니 고민을 이어갈 새도 없이 그가 아는 체를 했다.

"안녕하세요? 독서모임 오셨죠? 여기 앉으세요."

꽤나 위협적이지 않은(?) 외모에 자리에 앉자마자 안심이 되는 미소로 처음 보는 사람의 안부를 묻는 그를 보며 시영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가볍고 산뜻한 느낌의 팝송이 카페를 잔잔하게 채우고 있었다. 시영은 모임의 진행 방식을 들으며 다른 생각을 떨쳐버리고 자연스레 모임에 집중할 수 있었다.  단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1시간 정도 을 읽고 리뷰하는 시간이 되었다. 먼저 아까 그 위협적이지 않은 운영진이 먼저 리뷰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영은 책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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