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유난입니다. 주말 아침 카페에서 책을 읽다 문득 바라본 풍경이 유난히도 아름다워 글로 남기지 않을 수가 없네요. 살랑살랑 흔들리는 나뭇잎의 그림자. 그림자와 발을 맞춰 춤을 추는 은은한 햇빛. 마치 육지에서 펼쳐지는 윤슬 같았습니다. 아침이라 주변은 조용했고 카페에서 울리는 잔잔한 음악만 귀를 맴돌았습니다. 이어폰은 꼈지만 노래는 듣지 않고 있었는데요. 그럼 주변 음악보다 숨소리가 더 크게 들립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과정에 집중하는 건 고단한 평일을 잊고 차분한 주말을 맞이하는데 도움이 되더라구요.
그렇게 읽게 된 오늘의 책은 '혼자와 함께 사이'라는 책입니다. 제목처럼 이혼 전문 변호사인 최유나 작가님이 쓴 에세이인데요. 나중에 알고 보니 굿파트너라는 드라마의 극본도 쓰셨더라구요. 어떻게 보면 사람을 갈라놓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데 관계에 대한 에세이를 쓰신다니 아이러니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작가님은 이혼 전문 변호사가 이혼을 돕는 일 못지않게 이혼을 막는 일도 많이 한다고 하십니다. 직접 경험해보진 않았지만 말만 듣고도 얼추 이해가 됩니다. 수많은 부부들을 보셨을 테니 문제의 원인과 나름의 해결책도 알게 되셨을 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는 관계에 대한 통찰과 꿀팁들이 정말 많이 들어있습니다.
통찰과 꿀팁 전에 재밌는 사건도 소개하고 싶은데요. 어이가 없어서 웃긴 에피소드입니다. 부부 모두 바람을 펴서 이혼 문의가 온 상황인데요. 변호사님은 둘 다 바람을 폈으니 위자료 문제나 합의가 비교적 쉬울 거라 예상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분이 법정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저는 바람이 어쩌다 우연히 난 것이지만 남편은 바람을 의도적으로 피웠으니 이 사람이 제게 위자료를 주어야합니다."
?
이 부분을 읽고 머릿속에 정말 물음표가 띠용하고 나타났는데요. 다시 생각하니 너무 웃겨서 혼자 카페에서 책 읽다 말고 킥킥 대면서 웃었던 것 같습니다. 그 엄숙한 법정에서도 웃음이 빵 터졌대요. 하하하. 정말 세상은 넓고 창의적인 사람은 많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재밌는 내용과 함께 다양한 에피소드와 꿀팁들이 나오는데요. 다양한 챕터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권태와 돌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누구나 연애를 하다 보면 권태기가 찾아오잖아요. 저에게도 참 궁금한 부분이었습니다. 권태라는 감정은 참 괴로운 감정인데요.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감정이 식어버려서 극복하기가 참 어렵기 때문입니다. 특히 오랜 세월을 함께했다 보니 상대방에 대한 미안한 감정과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본인의 확신조차 어려우니 그저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고민이 마주 맴돌 거예요.
작가님이 이 권태에 대한 엄청나고도 과학적인 해결책을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고의 전환을 통해 누군가에게는 탁월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 생각을 제시해 줘요. 권태라는 감정이 그냥 뿅 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라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끝에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익숙해지다 보니 나타나는 결과물이라고요. 권태가 서로의 관계를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하니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동시에 관계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라고 말해줘요. 마치 시즌제 드라마 같습니다. 시즌 1에는 뜨겁게 타오른 사랑, 시즌 2에는 권태를 마주하는 갈등. '시즌 3는 안 보실 거예요?'라는 작가님의 물음에 '봐야죠!'라고 저도 모르게 답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이 이야기에 감동을 먹어서 들뜬 마음으로 독서모임원들에게 자랑을 했는데, 충격을 먹고 말았습니다. 모임원 왈. '시즌 3보다 다른 시리즈가 더 재밌을 수 있는데..' 또 웃음이 터지고 말았어요. 이것 또한 맞는 말입니다. 하하하. 각자의 상황은 다르니 각자의 기준에 맞는 선택을 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돌변에 대한 내용입니다. 돌변까지는 아니더라도 처음과 다른 모습은 연애를 하면 정말 누구나 다 겪는 경험인 것 같아요. 이런 내용을 읽으면 과거의 상대를 떠올리며 '그래, 그때 그 인간이 그랬지' 하며 공감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다른 경우입니다. 처음을 유지하며 돌변하고 싶지 않은데 조금씩 변하는 저를 보며 괴로워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특이하죠. (다 그런가?) 다행히 지금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저는 작가님의 얘기로부터 위로를 받았습니다. 과거의 저에게 당연한 돌변도 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얘기해 주는 것 같았거든요.
부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변호사님은 이혼 소송을 진행하면서 수많은 돌변 사례(?) 들을 보았고 자신도 결혼하고 겪었다고 하시는데요. 본인은 돌변으로 보이는 것이 대부분은 오해라고 결론을 내리셨다고 합니다. 정말로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있다가 때가 돼서 본색을 드러냈다기보다는 그저 다른 상황을 겪게 되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숨겨진 모습이나 입장 차이라고 말이에요. 완벽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공감이 되는 거 같습니다. 꼭 결혼이 아니더라도 이직, 이사, 취업 등의 상황에서 사람이 갑자기 변한 것 같다면 새로운 상황을 마주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대화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또 심금을 울리는 한마디가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상대가 잘못했다고 해도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인과관계를 확정 지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이전과 다른 상대를 보면 본인도 모르게 이제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부정적 인과관계를 만들 수도 있는데요. 정말 이것만큼 불필요한 갈등을 만드는 생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는 솔직하게 본인의 느낌을 표현하고 상대방과 대화를 하는 태도가 필요한 게 확실해 보입니다.
사실 지금 얘기한 권태와 돌변 얘기는 이 책에서 주변에 해당합니다. 주된 내용 중 하나에는 자존감, 나에게 관심 갖고 챙기기와 같은 내용이 있는데요. 자존감 관련은 이전에 다른 책에서 많이 읽다 보니 이번에는 관심이 덜 갔어요. 다른 분들에게는 이 내용도 너무 좋다 보니 추천하는 바입니다.
그렇게 책 리뷰를 하고 질문을 하려고 보니 다른 책과 다르게 질문할 게 너무 많았습니다. 권태나 돌변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나의 경우인지, 상대의 경우인지. 연인과의 갈등, 해결할 방법 등 무궁무진하죠. 그런데 아무래도 사적인 얘기다 보니 답변이 쉽게 나오진 않더라고요. 나오긴 했는데 또 프라이버시라 공유하기도 그렇구요.
그래서 오늘은 느낀 점 하나를 더 말하고 끝내려고 합니다. 이런 관계에 대한 책을 보면 우리는 자연스레 해결책을 기대하게 됩니다. 다행히도 이 책에서는 다양한 해결책들을 제시해주고 있어요. 그럼 우리는 '이것만 알면 되겠구나'하고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되는데요. 작가님은 그런 기대를 무너뜨려버립니다. 하하. 작가님은 끊임없이 맞춰가야 한다고 말씀하세요. 그런데 그게 맞는 것 같아요. 복잡한 사람 간의 관계를 대충 이렇게만, 저렇게만 하면 해결될 거라고 기대했던 것부터가 안일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 간의 관계는 참 어려워요. 하지만 이렇게 책을 읽고, 사람들과 대화하고, 자신에 대해 알아가다 보면 언젠가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