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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관념론

철학

by 서그냥


오늘 읽을 책은 저의 도둑놈 같은 심보를 충족시켜 주는 아주 달콤한 책입니다. 적은 노력으로 교양을 쌓고 싶은 욕심이 생기곤 하는데요. 이 책이 아주 제격입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였기에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텐데요. 1권은 이미 읽었고 오늘은 2권을 읽을 차례입니다. 1권에서는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를 다룹니다. 상당히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는데요. 그 광범위한 영역을 하나의 기준으로 엮어서 설명하는 저자의 능력이 정말 탁월하게 느껴집니다. 정말 하나의 기준으로 5개의 영역을 꼬치처럼 관통해 버리죠. 태생이 J라 정리를 좋아하던 저는 단번에 이 책을 인생책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1권에 취해 자연스레 2권도 집어 들게 되었습니다. 2권에서는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를 다루는데요. 저는 오늘 철학을 읽었습니다. 철학책은 보통 어려워서 웬만하면 손이 잘 가지 않는데요. 이 작가는 1권에서 엄청난 정리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2권에서도 같은 정리력이 발휘된다면 부담이 덜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예상은 맞았습니다. 이 작가는 2권에서도 엄청난 정리력으로 어렵디 어려운 철학을 몇 개의 기준으로 분류했습니다.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수많은 철학자들과 다양하고 복잡한 사상들이 나와서 머리가 터질 거 같은데요. 이 책에서 정리한 내용을 보고 큰 틀을 이해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철학을 구분하는 기준은 크게 3가지로 나뉩니다. 저는 2개만 얘기해 볼 예정이에요. 절대주의, 상대주의. 두 개만 봐도 대부분을 커버할 수 있습니다. 이 2가지 기준은 진리를 바라보는 태도에 따라 구분됩니다. 먼저 절대주의는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진리가 존재한다는 입장입니다. ‘우리가 오직 믿어야 할 것은 이성이야!’라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절대주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상대주의는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다양한 진리가 존재한다는 입장입니다. 상대주의 입장을 가진 사람은 ‘때로는 이렇게도 행동하고, 때로는 저렇게도 행동할 때가 있는 거야.’라는 말을 할 수 있겠네요.



저는 이걸 보고 MBTI에서 J와 P가 생각났어요. 대부분 J와 P를 계획적인 사람과 충동적인 사람으로 구분하지만 사실은 조금 다릅니다. J는 Judgement 판단이고 P는 Perceivement 인식이에요. J는 미래에 해야 할 행동을 진리이자 하나의 정답으로 생각해 판단하다 보니 계획을 합니다. 반면에 P는 현재에 인식되는 환경을 토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충동적으로 행동합니다. 충동이라니 너무 P에게만 안 좋은 표현을 사용했나요. 하하하. 다르게 말하면 현재의 상황에서 최적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과거에 강한 J였지만 점점 더 P가 되고 있는 사람이니 오해 안 하셨으면 해요.


이야기가 딴 데로 샜습니다. 다시 철학으로 돌아와서 위 2개의 기준을 가지고 철학을 다뤄볼 거예요. 먼저 고대에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있죠. 이 둘은 절대주의 입장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질문을 통해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에 다다를 거라고 믿고 있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질문을 하고 다녔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답하다 보면 사람들은 자신의 모순을 발견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했어요. 이러한 문답법을 산파가 산모로부터 출산을 유도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여 산파법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렇게 나온 명언이 '너 자신을 알라'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플라톤은 세계를 두 가지로 구분했어요. 진짜 세상인 '이데아 세계'와 이데아의 모방인 현실세계로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가 가짜라니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워요.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 이해가 됩니다. 삼각형을 그려볼까요. 얼핏 보면 삼각형은 당연히 삼각형처럼 보이고 그렇게 생각됩니다. 하지만 아주아주 잘 보이는 돋보기로 들여다볼까요? 우리가 그은 선은 일직선이 아니고 울퉁불퉁한 선일 겁니다. 그럼 그 도형은 삼각형이 아니라 백각형(?) 정도가 될 수 있어요. 여기서 우리가 생각한 완벽한 형태의 삼각형은 이데아고 실제로 그려진 삼각형은 가짜 삼각형이 됩니다. 플라톤은 그래서 감각 세계의 불완전함을 벗어나 완전한 이데아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나의 이상만을 얘기하니 완벽한 절대주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절대주의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플라톤과 다른 점이 있어요. 고정 불변하는 이데아 세계가 아니라 현실 세계를 탐구하고자 했다는 점이에요. 운동하고 변화하는 현실 세계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찾은 답은 '중용'입니다. 많이들 들어보셨을 거예요. 중용은 과도함과 부족함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을 말합니다. 단순히 평균이나 타협이 아니라 상황과 맥락에 따라 옳은 행동과 상태를 결정하는 것이죠. 확실히 플라톤에 비하면 상대주의적인 입장입니다.


고대를 넘어 중세로 가볼까요? 중세에는 비교적 생소한 교부철학과 스콜라철학을 다룰 거예요. 교부철학에서 교부는 기독교의 아버지를 뜻합니다. 교부철학자들이 기독교의 이론을 정립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어요. 이들은 플라톤의 사상을 이어받았습니다. 기독교에서 천국은 플라톤의 이데아를 닮았습니다. 지상은 플라톤의 현실세계죠. 그래서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천국에 가기 위해 기독교를 믿고 기도를 해야 했습니다.


스콜라철학에서 스콜라는 학문을 의미해요. 중세유럽의 수도원, 성당학교, 대학 등 학문적 기관에서 발전한 철학이거든요. 이들의 특징은 비교적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신학적 문제를 탐구했다는 거예요. 이러한 점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닮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에서는 삼단논법을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제시하거든요. 이들은 다양한 관점을 토론하고 논증했습니다. 산파법이 떠오르는 부분이죠.


교부철학과 스콜라철학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보편 논쟁'이죠. 이 논쟁은 자그마치 500년이나 지속되었는데요. 말 그대로 '보편적 개념이 실제로 존재하느냐'를 두고 두 입장이 대립했던 논쟁입니다. 보편적 개념은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어요. 그리고 지훈, 동수, 지혜, 민지와 같은 이름을 가진 개별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인간이라는 개념이 바로 보편적 개념입니다.


교부철학은 보편적 개념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보는 입장이었는데요. 이러한 주장을 실재론이라고 합니다. 스콜라 철학은 보편적 개념이란 건 개별적 대상을 포괄하여 설명하기 위한 수단일 뿐 독립적으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명목론이라고 합니다. 참 쓸데없는 걸로 500년이나 싸웠다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당시에는 기독교에서 삼위일체론이나 원죄, 구원 등 신학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 중요하게 다뤄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500년이나 싸워서 어떻게 됐냐고요? 두 의견을 비판하며 절충하는 개념론이 등장했습니다. 우리는 보편적 개념을 통해 분명히 사람들과 의사소통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 하지만 물질적인 실체를 가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개념으로서 존재한다. 어... 저는 이걸 처음 보고 '문제가 해결이 된 건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결론 낼 거면 '애초에 싸우지 않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요. 하지만 얕은 지식을 탐독하고 있기에 겸손하게 받아들였습니다. 하하하.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다 보면 생각에 매몰되다 생각이 산으로 가버리는데,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시선을 고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고대, 중세에는 '이데아가 존재하는가? 보편이 존재하는가? 진리가 존재하는가?'와 같은 존재를 탐구하는 질문이 철학을 이끌어왔습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서면서 기조가 바뀌었어요. 이제는 '어떻게 진리에 도달하는가?'와 같은 방법론적 질문이 주가 되었습니다. 인식론이라고 합니다.


중세에도 두 가지 입장이 존재해요. 먼저 합리론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은 르네 데카르트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언을 남겼죠.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인 이성을 사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논리의 연결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연역법을 선택합니다. 이와 반대되는 입장은 경험론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프랜시스 베이컨이 있어요. 이 분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이 분은 모든 지식은 경험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는 입장을 가집니다. 그래서 개별적 실험과 관찰을 종합해 정답을 찾는 귀납법을 주장했어요. 한쪽은 일반적인 개념에서 시작하여 구체적인 사실을 도출하고, 다른 한쪽은 개별적인 경험에서 일반적인 개념을 도출하네요. 사고의 방향에서 차이가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두 의견이 대립하면 종합하는 인물이 나와야겠죠. 바로 임마누엘 칸트의 관념론입니다. 사실 칸트는 제가 이 시리즈를 내겠다고 마음을 먹게 한 인물인데요. 왜 그랬는지 조금씩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합리론의 연역법과 경험론의 귀납법 모두 한계가 있습니다. 연역법은 전제를 기반으로 결론을 도출하기 때문에 전제로부터 새로운 사실을 추가하지는 못합니다. 삼단논법은 전제에서 이미 내포된 결론을 드러낼 뿐,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지는 않는 거죠. 또한 경험이 없는 추론은 의미 없는 탁상공론이 될 수 있습니다. 귀납법은 개별 사례에서 일반적 결론을 도출하기 때문에 항상 확률적이고 잠정적입니다. 새로운 사례가 등장하면 기존의 일반화가 무효화 돼버립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례를 관찰하는 것도 무리가 있어요.


이러한 두 입장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통합한 개념이 칸트의 관념론입니다. 이 이론에 '관념'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우리가 느끼는 세계가 관념적으로 인식한 세계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를 인식한 게 아니라요.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요? 우리가 느낀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니.


예를 들어볼까요. 책상 위에 빨간 사과를 올려두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과를 늘 그래왔던 것처럼 당연히 빨갛다고 인식합니다. 눈으로 받아들인 정보를 뇌가 처리해서 궁극적으로 보고 있는 사과가 빨갛다는 결론을 내놓을 겁니다. 하지만 사물을 빛이 아닌 초음파로 인지하는 박쥐를 예로 들면 어떨까요? 박쥐는 빨갛다는 개념을 모를 겁니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사과가 빨갛다고 생각하는 건 실제로 빨개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인식 주체가 그렇게 정보처리를 해서 그런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사과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 구성물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감각기관에 따라 정보를 재구성해서 이미지화할뿐 실체를 볼 수는 없습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진실을 모르는 약을 선택한 사람이 된 것만 같군요.


칸트는 뇌를 가지고 있는 인간의 인식 특성에 따라 경험과 이성을 통합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감각기관을 통해 실제로 경험하고 감각한 정보를 종합해 이성적으로 처리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거죠. 이렇게 하면 비교적 탁상공론을 하지 않고 보편적인 지식을 설명해 합리론과 귀납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쉬운 설명을 위해 거칠게 규정하고 주관적 해석을 하다 보니 부족한 부분이 보이네요. 모든 걸 얘기하면 이 책을 보지 않겠죠? 구체적인 부분은 직접 책을 읽어보시는 걸 추천한답니다. 하하하.


저는 이 아이디어가 너무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마치 다른 세상을 사는 것처럼 다른 생각을 하고 살거든요. 정말로 각자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생각에 살고 있다는 생각에 '저놈은 왜 저럴까?' 하며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생각의 극단적 차이는 혐오를 만들기도 하죠. 애초에 각자의 관념이라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는 전제를 하게 되면 서로를 좀 더 받아들이고 존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시리즈는 그런 의도에서 쓰였습니다. 책을 읽으면 다양한 저자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책은 각자의 세계가 형상화된 공간이에요. 책을 읽으면 다양한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거죠. 독서는 다른 세계를 접하며 같은 생각을 만나면 반가워하고 다른 점을 보면 어떻게, 왜 다른지 얘기하는 여행이에요. 저는 즐거웠습니다. 다른 세계를 접하고 여행하다 보면 나의 세계도 확장되었거든요. 그럼 저는 더 많은 세계를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더 많은 즐거움도 공감할 수 있었고요.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즐거움이 찾아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독서뿐만 아니라 독서 '모임'에서의 경험을 다루고 있어요. 경험해 보니 혼자 읽는 것과 다 같이 읽고 얘기하는 것의 차이가 많이 뚜렷했습니다. 혼자 읽으면 때때로 허망했습니다. 책을 읽을 때의 기억이 허무하게 휘발되어 버린 느낌이었어요. 독서가 유익한 건 알지만 허망한 기분은 독서를 습관으로 만드는 데 방해가 되었어요. 어느 날 독서 모임에 나가보니 다르더라고요. 책을 읽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얘기할지 고민하고 정리하고, 나의 얘기를 전달하고 상대방의 얘기를 듣다 보면 책에서의 내용이 살아있는 지식이 되어 삶에 적용됐습니다. 상대방이 읽은 책의 내용을 듣다 보면 그들의 인생도 비치기에 자연스레 서로의 세계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온라인으로 쓰인 글이다 보니 아무래도 모임을 할 때처럼 살아있는 느낌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양한 장르와 주제를 선정해 다채로운 세계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제가 느꼈던 즐거운 마음을 여러분에게도 전하고 싶었어요. 펜싱에서 실존을 고민하는 신기한 사람을 알아보고 가까운 사람에게 화를 내는 이상한 현상에 대해서도 알아봤죠. 뉴진스가 왜 고전문학을 선택하게 됐는지, 과학은 왜 필요한지. 서로 다른 성향의 작가가 편지를 쓰는 글. 명상의 뇌과학적 근거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고 이혼전문 변호사가 말해주는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알아봤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통해 철학과 관념론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제는 9개밖에 안 돼요. 이 세상에는 수백만 권의 책, 수천만의 주제, 수억의 세계가 존재합니다. 자신만의 세계가 지루하지는 않나요? 다양한 세상을 보며 새로운 즐거움을 얻어갈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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