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7시 30분. 잔잔하지만 난폭하게 울려 퍼지는 알람 소리에 시영은 오늘도 후회를 했다. 독서모임을 시작한 지 어언 1년이 지난 시영은 오늘부터 운영진의 역할을 맡기로 했다. 9시까지 가야 하는 독서모임에 가려면 지금 가야만 하는데 도무지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번 주는 모임 등록 하지 말걸!!"
회원일 때는 양해를 구하고 당일이지만 참석 취소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운영진은 모임을 이끌어야 하기에 한번 등록을 해놓으면 취소할 수도 없다. 어쩌겠나. 업보인걸. 침대를 벗어나 준비를 할 수밖에 없다.
사실 토요일 아침은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토요일에 참석하고 이번주도 토요일 아침에 모임 등록을 한 이유가 있다. 토요일 아침을 독서모임으로 시작하느냐 마냐에 따라 주말의 밀도가 심각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토요일 아침을 늦잠으로 시작하면 스노볼이 굴러가 뒹굴뒹굴 거리다 허망하게 주말을 보내버린다. 독서모임으로 시작하면 억지로 몸을 깨워 괴롭지만 이후의 시간들이 알차게 된다.
그렇게 부랴부랴 도착한 오늘의 독서모임. 오늘은 모임에 처음으로 오는 분이 있어 모임에 대한 안내를 해야 했다. 출석 도장을 찍어드리고 도장을 모으면 받게 되는 상품도 말씀드리고, 약 세 시간 동안 모임이 어떻게 흘러갈지도 안내한다. 가볍게 어떤 동기로 모임에 들어오게 됐는지 물어보며 운을 띄운다. 1년 전에 쫄리는 마음으로 첫 모임에 참석한 게 아직도 새록새록한데 이렇게 안내를 하는 운영진의 입장이 되니 감회가 새롭기도 하다. 약간은 방어적이지만 또 약간은 설렘과 함께 관심을 가지는 신입 회원의 눈빛. 1년 전에 시영을 보는 것만 같아 반갑기까지 하다.
집 문을 나설 때까지는 힘들었지만, 막상 모임에 도착해서 책을 읽는 시간이 되면 잘 나왔다는 생각과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을 즐긴다. 카페에서 울려 퍼지는 아침을 여는 부드러운 음악, 코를 간지럽히는 고소한 커피 향, 인생마저 달콤하고 따뜻하게 해줄거같은 빵냄새, 깊게 들어오는 햇빛. 그곳에서 책을 읽는 건 참으로 편안하고 상쾌한 일이다. 오늘 읽은 내용은 근대 철학자 칸트에 대한 이야기. 내용이 간단하지만은 않았지만 정리가 잘되어있던 탓에 유익하게 읽었다. 책 리뷰할 때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지 정리를 하고 어떤 질문을 할지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얘기할 시간이다.
운영진이 되면서 크게 바뀐 것이 있다. 바로 대화의 흐름을 리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 회원일 때는 그저 흐름에 따라가기만 하면 됐었는데, 리드를 하려 하니 부담감이 꽤나 적지 않다. 그래도... 하면 된다. 회원들이 잘 말할 수 있도록 잘 들어주고, 많이 고민할 수 있도록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1년 동안 보며 배운 게 있으니 그렇게 떨 거 없다. 오늘이 운영진 처음이라는 말과 함께 밑밥을 깔면 완벽!
얘기를 하다 보니 이끌 것도 없이 회원들끼리 서로의 얘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회원들끼리 코드가 맞으면 이렇게 운영진이 나서지 않아도 잘 흘러가는데 다행히 오늘이 그런 날인가 보다. 이렇게 된 거 운영진의 본분을 던져두고 시영도 흐름에 올라타기로 했다. 본인의 차례 때는 칸트의 관념론을 얘기하며 우리는 같은 세상에 사는 거 같지만 사실은 각자의 생각이라는 다른 세상에 사는 것이다라고 언급한다. 이러한 생각이 혐오가 만연한 한국 사회를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을지 얘기한다. 회원들도 한 마디씩 거드며 자신의 사례를 얘기한다.
그렇게 마무리한 운영진으로서의 첫 독서모임. 뿌듯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고, 의욕이 불타오른다. 1년 동안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사람과 얘기했다. 아마 모든 MBTI를 만나보지 않았나 싶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느낀 건 전부 장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외향적인 사람의 친화력, 내향적인 사람의 고찰, 현실적인 사람의 수완, 추상적인 사람의 창의력, 감정적인 사람의 배려, 논리적인 사람의 해결, 계획적인 사람의 미래, 실천적인 사람의 현재. 어느 하나 모든 상황에서 옳은 것은 없다. 그저 상황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세계를 접한 시영이 무엇이 필요한 상황인지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영의 주말은 오늘도 평온하며 설레고 즐거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