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리 Sep 21. 2022

재택근무 이후에 일어난 사적인 변화 : 기쁨편

좋았던 거 먼저 풀어보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재택근무가 나의 삶에 끼친 영향에 대해 정리하기 전에 내가 경험하고 있는 '재택근무' 환경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회사마다 재택근무 정책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집이 아니더라도 업무 환경이 갖춰진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근무가 가능한 Remote work(리모트 워크) 제도 하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보안상의 이유로 일부 제약 사항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원하는 장소에서 근무가 가능하다. 기간의 제약은 없으며 반드시 사무실로 출근해야 하는 날은 거의 없는 Full 재택 환경이다.


회사원이 회사에 물리적으로 출근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많은 사적인 그리고 공적인 변화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변화는 개인의 성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긍정적이기도 부정적이기도 하다. 이 브런치 글은 나의 삶과 가치관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다른 재택근무자들의 삶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우선 재택근무가 나의 사적인 삶에 가져온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겠다.






1. 지출이 줄어들었다.


가장 명확한 변화이다. (나는 현재 부모님 집에 얹혀살고 있는 캥거루족이다. a.k.a 불효녀) 사무실로 출퇴근을 하지 않으니 당연히 이동에 쓰이는 교통비가 줄어들었다. 


1,450원 X 2 X 5일 = 14,500원


또한 나가서 점심 사 먹고 커피 사마시는 데에 쓰는 지출도 감소했다. 요즘 물가가 정말 많이 올라서 기본 카레에 돈가스 하나만 추가해도 10,000원이 훌쩍 넘는다. 밥 먹고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 일 하다가 탄산수 한 캔 뽑아 먹으면 하루에 식비로 15,000원 쓰는 것은 순식간이다. (더 절약할 수 있었던 금액이라는 점은 인지하고 있지만 당시의 나는 출근해서 내가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먹으면 무슨 재미로 돈을 버나..라고 생각했었다.)


약 15,000원 X 5일 = 75,000원


정리하자면 재택근무 이전에 나는 사무실로 이동하고 밥을 먹기 위해 일주일 기준 약 9만 원, 한 달로 따지면 약 38만 원을 길바닥에 뿌리고 있었다. 재택근무를 할 때는 대체로 집밥을 먹고 있기 때문에 사무실에 출근을 하지 않음으로써 저 금액의 80% 이상을 아낄 수 있게 되었다. 나의 기호나 판단에 의해 쓰이는 돈이 아니라 써야 해서 쓰는 고정 지출이 줄어든 것은 재택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교통비와 식비 같이 명확하게 계산이 가능한 소비 외에도 출퇴근을 명분 삼아 구매하던 옷, 화장품 등의 꾸밈비 용도 확실히 줄어들었다. 


재택근무를 시작했던 해에 연말정산을 하며 그전 해에 사용했던 카드 값과 당해 카드 값을 비교해보니 1,0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덜 쓴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코로나로 인해 외식과 여행에 쓰이는 비용도 함께 줄었지만 1,000만 원이라는 금액은 꽤나 파격적이었다. 




2. 개인 시간이 증가했다.


사무실로 출퇴근했을 때는 약 3시간 30분 정도를 외출 준비와 왕복 이동 시간에 소요했다. 하지만 이제 내가 출퇴근을 위해 쓰는 시간은 씻고 머리 말리는 시간을 포함하여 단 20분이다. (어.. 사실 진짜 세수만 하고 출근하면 5분 컷도 가능하다.)


재택을 하고 나서부터는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운동을 하고 드라마까지 봤는데도 시간이 자정을 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아껴진 3시간 10분이라는 시간을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했던 것들에 투자했다. 


가장 첫 번째로 시도했던 것은 가죽 공예였다. 가죽 공예는 시간과 돈이 정말 많이 드는 작업이다. 시간이 남아도니 평일에 공방 숙제도 열심히 할 수 있었고 공방 수업과 재료 비용도 부담 없이 지출할 수 있었다. 차분하게 혼자 가죽 바느질을 하는 과정은 N명의 사람들과 협업해야 하는 직업적 특성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해주었다. 


두 번째로 블로그와 브런치를 시작했다. 퇴근 이후 진득하게 자리에 앉아서 글을 쓸 심리적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그동안 미루었던 '글쓰기 욕구 해소'를 실천할 수 있었다. 지금은 약 주 4회 블로그를 업데이트하고 있다. (브런치는.. 조금 더 열심히 해야 되는데..)


그 외에도 필라테스, 아이패드로 그림 그리기, 피아노 연주, 영어회화 공부, 프로그래밍 공부 등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왔고 언급한 것들 중 몇 가지는 이제 내 생활에 완전히 녹아든 필수 루틴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재미있는 것을 하는 시간이 증가한 것 이상으로 나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 우선 깨어있는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추가함으로써 보다 주체적인 삶을 사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또한 몰랐던 나의 취향과 적성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하였으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의 세계가 넓어지고 내 삶의 목표와 방향을 돌아볼 수 있었다.




3. 가족들과의 시간이 증가했다.


취미와 여가 활동에 쓰이는 시간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도 증가했다. 가족에는 당연히 반려견도 포함이다. (아니 사실 반려견과 보내는 시간이 증가한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주로 7시 정도에 사무실을 나와 집에 도착하면 8시 정도였다. 저녁을 먹기에는 조금 늦은 시간이다 보니 나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나보다 먼저 저녁 식사를 마친 상태였고 나는 주로 혼자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나는 혼자 밥 먹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재택근무 이후 삼시 세 끼를 한 명 이상의 가족 구성원과 함께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반려견과 부쩍 친해질 수 있었다. 재택 이전에는 강아지가 나를 그냥 저녁에 들어와서 같은 집에서 잠자는 동거인 정도로 취급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누나로 인정해준 것 같다. 내가 어디 여행이라도 가면 내 방에 가서 나를 찾고 불쑥 맥락 없이 나를 찾아와 안아달라고 애교를 피우기도 한다.


피곤한 회의를 끝마치고 거실로 나가서 강아지 털에 얼굴을 묻으며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고, 집에 나 밖에 없을 때는 강아지를 무릎 위에 올려두고 복슬복슬한 털을 쓰다듬으면서 일을 하기도 한다. (집에 엄마가 있으면 무조건 엄마 옆에 있기 때문에 내 무릎에 얌전히 붙어있지 않는다.) 이보다 더 완벽한 근무 환경은 없다.








소소하게 늘어놓자면 사실 더 많다. 점심시간에 내 침대에 누워서 쉴 수 있고, 저녁 약속도 좀 더 편하게 잡을 수 있게 되기도 했다. 화장하는 날이 줄면서 피부 컨디션이 좋아졌고 지옥철을 타고 출퇴근하지 않아도 되어서 일상 스트레스가 줄어들었다. 재택을 하면서 아낀 돈으로 차를 샀고 기동력이 좋아지면서 나의 생활 반경은 더 넓어졌다. 


모두 집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됨으로써 시간과 돈이라는 자원을 절약하고 절약한 것을 더 의미 있는 것에 투자한 결과이다. 다른 말로 여유 시간과 돈을 확보하는 것이 개인 삶의 만족도 향상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직접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결론이 다소 속물적이지만 여하튼 재택근무는 나의 사적인 삶에 매우 긍정적이고 효과적인 변화들을 가져다주었다. 물론 좋았던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