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 한정 좋았던 점일 수도..?
앞선 두 글에서는 재택근무가 개인의 삶에 어떤 긍정적인,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에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제는 공적인 영역 즉, 업무적인 측면에서의 변화들에 대해 다뤄보려고 한다.
"재택 하면 일이 잘 돼?"
재택을 시작하면서 부모님, 친구들 그리고 지인들에게 수도 없이 들은 질문인데 이번 글과 다음 글이 그에 대한 답변이 될 것 같다. 일단 먼저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서 먼저 정리해보았다.
1. 회의실이 필요 없다.
다른 회사도 이렀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의 기획팀은 회의가 정말 정말 많다. 특히 리드 역할을 하는 분들은 직무에 관계없이 회의가 2배로 많다. 각종 주간회의, 월간회의, 스크럼 등의 시간을 피해 모두가 가능한 시간대의 미팅 일정을 잡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 수준보다도 어렵다. 그 와중에 제한된 회의실까지 잡으려고 하면 그 난이도는 급격하게 증가한다.
비대면 근무 상태에서는 100% zoom과 같은 화상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를 활용하여 회의를 진행한다. 여전히 멤버들의 비어있는 시간을 찾는 것은 어렵지만 적어도 회의실을 잡지 못해서 회의 시간을 옮겨야 하거나 좋은 회의실을 차지하기 위해 눈치 싸움을 하는 소모적인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
회의실을 잡는 것은 어떻게 보면 업무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잡무인데 이런 일을 위해 들이는 시간이 줄어든 것은 업무 생산성과 효율성 측면에서도 매우 긍정적인 변화이다.
2. 대면회의에서의 압박감이 감소했다.
두 번째도 회의 진행과 관련된 장점이다. 대면 회의 시에는 안건의 성격에 따라 굉장한 압박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회의에서는 종종 날카로운 피드백이 오갈 때도 있고 서로 불편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도 있다. 나 같이 소심한 회피형 인간은 그러한 상황이 매우 불편했고 회사 생활 중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 중 하나였다.
비대면 회의에서는 뾰족한 피드백과 불편한 대화들이 모니터라는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되니 그 타격감이 훨씬 덜하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모니터에서 보이는 '영상'이 나에게 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
듣는 것이 편해지기도 했지만 말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감소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기획자는 종종 PM으로서 협업하는 동료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도 있다. (거절하거나 반대하거나 재촉하거나) 난 차라리 안 좋은 소리를 내가 듣는 게 더 편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이런 종류의 커뮤니케이션을 어려워한다. 하지만 이 또한 비대면으로 회의가 진행되면서 모니터를 한 번 거쳐서 나의 말을 전달할 수 있으니 자신감 있고 부담 없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일을 하다 보면 종종 자리로 직접 찾아가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어지는 순간이 많다. 그런 경우에도 굳이 자리로 찾아가는 수고로움과 낯가림을 무릅쓸 필요 없이 1:1로 콜을 걸어서 물어보면 되어서 훨씬 편해졌다. 결과적으로 나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협업하는 개발자와 디자이너들과 1:1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었다. 궁금한 것도 훨씬 빨리 해소되고 더 긴밀하게 협업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낯을 많이 가리고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말하는 것에 대한 긴장도가 높은 나의 성격상, 비대면 회의로 모두 전화됨에 따라 업무 스트레스가 많이 줄어들었다.
3. 가장 편한 상태로 일할 수 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재택근무를 하면 남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업무를 하기 위해 가장 편한 옷을 입고 가장 편한 자세로 일을 할 수 있다. 무얼 입고 일을 하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스피커로 좋아하는 노동요를 틀어두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극단적인 상태만 아니라면...)
물론 여기서 '편하다'라고 하는 것이 잔뜩 풀어진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옷을 잘 갖춰 입은 상태로 업무를 시작해야 집중이 잘 될 수도 있고, 주변의 시선이 느껴지는 환경에서 더 효율이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업무 하기 편한 상태에 대한 기준과 조건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게 무엇이 됐든지 간에 재택근무자에게는 그것을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선택권이 존재한다.
나의 경우 혼자 집중해서 문서를 작성해야 할 때는 가사가 없는 노래를 듣는 것을 좋아해서 항상 스피커로 노래를 깔아 두는 편이다. 또 세상에서 제일 편한 애착 잠옷 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근무한다. (외출 불가한 수준의 패션이다.) 거북목 방지를 위해 올곧게 앉아있을 수 있도록 신경을 쓰는 편이지만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한숨을 쉬고 머리를 쥐어뜯는다 (?)
이처럼 업무 외적인 부분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훨씬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마지막 장점이다.
이렇게만 보면 모든 재택근무자들은 세계 최강의 효율을 내는 노동자들이어야 할 것 같은데 또 그렇지도 않다. (일단 나부터..) 좋아지고 개선된 만큼 아쉬운 부분들도 많다. 다음 글에서는 재택근무가 업무에 끼치는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 소개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