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지방을 얻고 사교성을 잃었습니다.
이번엔 내가 겪은 부정적인 변화들이다. 혹시 앞의 글을 읽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아래 글을 읽고 오시면 됩니다.
1. 체중이 증가하고 자존감이 떨어짐
가장 명확하고 슬프고 안타까운 변화였다. 물론 자기 관리에 진심인 사람들은 나와 같은 변화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평소 살이 크게 찌지도 크게 빠지지도 않는 사람이었어서 제대로 방심했고 그렇게 확찐자가 되어버렸다.
침실에서 일을 하는 서재까지 10걸음이면 차고도 남았고 어쩌다 나간다고 하더라도 가볍게 산책을 하는 것이 움직임의 전부였다. 3일, 4일 이상 나가지 않은 주도 많았고, 코로나는 핑계로 다니던 필라테스와 헬스장도 발걸음을 끊어버렸다.
결과적으로 기초대사량도 많이 감소했고 체지방은 그에 반비례하여 증가했다. 문득 편하게 입었던 청바지가 매우 불편하게 느껴지길래 기분 탓인가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체중계에 처음 보는 몸무게가 찍혀 있었다. 현실을 직시하고 나니 자존감이 크게 타격을 받았다. 평소 화장을 하거나 옷 사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 외모를 포함한 자기 관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충격이 컸다.
자기 관리에 실패한 나 자신이 너무 실망스럽고 싫었다. 3번에서 언급될 예정이지만 살이 찌면서 사람 만나는 것을 더 꺼리게 된 것도 있다. 곧 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식단과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지금은 증가한 몸무게의 50% 정도는 복구를 한 상태이고 올해 내로 100% 복구 및 목표 몸무게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 가족들이랑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남
앞서 쓴 브런치 글에서는 이를 긍정적인 변화라고 언급했지만 한편으로 이것은 분명히 단점이기도 하다. 가족이란 원래 좀 적당한 거리감이 존재할 때 가장 화목하기 때문이다.
나는 K-장녀이다. 나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 중에 이 K-장녀에 속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가만 보면 이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가정의 화목을 위해 기꺼이 중재자가 되고자 한다는 점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디서 기인한 의무감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가정의 평화를 깨트리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절대적인 신념과 가정에 불화가 찾아왔을 때 그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본의 아니게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에서 '새우'역할을 맡게 되면서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 듣기 싫은 소리를 들을 때도 많고 하기 싫은 소리를 해야 될 때도 많다. 그렇게 해서라도 갈등이 해결되면 참 좋을 텐데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때도 많다. 양쪽의 사정을 다 들어주다가 오히려 양쪽에게 원망을 받게 된다거나,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다가 내 속은 너덜너덜해지고 당사자들은 나도 모르는 새에 화해를 해버린 황당한 상황이라든가.
특히 나는 아빠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의 기분에 따라 나의 행동도 조심하고 혹시나 내가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는 않는지 하루 종일 긴장한다. 아빠가 나에게 화풀이를 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 때문에 더 기분이 안 좋아지는 상황은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우리 가족은 그래도 꽤 사이가 좋은 편이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그러나 당연히 365일 중 매일이 평화롭지는 않다. 한 번씩 새우 등이 터지는 상황이 돌아올 때면 매번 '에휴, 내가 나가야지..(+직방으로 방 찾기)' 하다가 전세 금액을 보고 '그래, 1년만 더 참자'를 N 년째 반복하고 있다.
3. 사교성이 떨어짐
혼자가 편한 것은 그 자체로는 문제가 아니지만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혼자만 생각하면 되는 삶에 익숙해지다 보니 사교성이 떨어졌고 단체 생활에 취약해졌다. 여기서 '단체'라고 하는 것은 대략 5명 이상의 사람 모임을 의미한다. 단체라고 하기엔 너무 소소한 숫자일 수도 있지만 5명이 넘어가는 모임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든다.
어쩌다 그런 모임에 나가게 되더라도 1시간 정도 지나면 귀소 본능이 발동한다. 다수의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면 기분이 확 나빠지고 바로 자리를 뜨고 싶어 진다. 인간관계에서의 역치가 낮아진 것이다.
사람 좀 안 만나고 다니는 게 뭐가 문제야?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정말 친했던 친구들과의 모임도 어쭙잖은 핑계를 대가며 피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 이건 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그래서 의식적으로 무슨 숙제라도 하듯이 5인 이상의 모임에 참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전히 힘들고 에너지 소모가 심하지만 이렇게라도 안 하면 친구도 잃고 인성도 잃고 완전히 외톨이가 되어버릴 것 같다.
여기까지 재택근무로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 어떠한 변화들이 있었는지 살펴보았다. 요약하자면, 재택을 시작한 이후로 돈과 시간과 반려동물의 관심을 얻었고 대신 건강과 사회성을 잃었다. 뭐 그럭저럭 괜찮은 밸런스이지 않았나 싶다. 잃은 것들은 이제서라도 복구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니 곧 장점들만 남을 것이다(?)
다음 글부터는 공적인 영역 즉,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다뤄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