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30살이 되기 전까지 만난, 소위 필자보다 당시 20살 이상 많았던 어른들 중 대부분은, 조금 진지하게 이야기하다보면 대부분은 학문의 가치를 폄하했었다. 잘 몰라서 가만히 있으면 상관없는데, 그들 중 일부는 학계를 비난하며 레퍼토리로 사용하는 말들이 1. '교수가 책상머리에 갇혀 학문한다고 논문 쪼가리만 들추니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른다.' 2. '학문은 학문이고 실무가 돌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런 말들이었다.
필자는 지금도 연구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간혹 이런 이야기들을 듣는다. 그런데 그때와는 필자 스스로 확연히 다른 것은 이제 이런 학문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 매우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속으로는 그들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명확히 인지한다.
우선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필자는 몇 주전 아침에 한 업계에서 꽤 유명하신 변호사님에게 연락을 받았는데, 내가 출판한 어떤 논문의 PDF파일을 보내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Open access 논문이 아니므로 구독료를 내거나 혹은 구독료를 내는 대학 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이에 접근하기가 어려워 필자에게 직접 부탁한 것이다. 그 변호사님이 최근 재판을 하나 진행하고 있는데, 재판부가 필자의 논문을 언급하면서 이를 참고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재판부는 학술논문도 직접 읽는가 봅니다.' 하며 건네주었다.
학문은 어떤 진리를 나타낸다. 이는 판단의 준거가 되며, 지식의 근간이 된다. 이 지식 하나를 생산하기 위해 학자, 교수들은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사회는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다. 이 지식이 신성한 법원에서조차 판단의 근거가 된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그 사안에 관한 한 진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학문과 지식은 그 자체로 효용이 매우 크다. 아니 크다고 이야기할 정도가 아니라 그냥 진리 (금은보화 같은 단어로도 그 효용을 다 표현 못하겠다.) 그 자체이다. 수학 같은 경우는 우리가 잘 몰라서 파악하지 못할 뿐이지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게 물어보면 어떤 수학의 심화 개념이 어떤 식으로 산업에 응용되는지 무수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학문이 실생활과 멀리 떨어져있고, 그들만의 리그라는 개념 자체가 틀렸다는 것이다. 학문적 지식은 막대한 에너지의 집약체이자 결정체로서, 그 자체가 생산하기 매우 힘들고, 우리 삶과 현실에서 지극히 정상에 위치한 판단의 준거가 된다. 따라서 학문을 진짜 연구해 본 사람들은 학문에 대해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의사와 의학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 일반인들에게는 똑같아 보이는 임상의사도, 학문적 개념을 최소한 이해하고 있느냐 그렇지조차 못하느냐에 따라 설명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고 정묘한 판단이 달라진다. 즉 어떤 의학적 사안에서 학문적 기준과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은 환자를 앞에두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확률이 더 높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해보면, 주로 무언가 프로시져를 하거나 수술을 하는 의사들의 경우에는 연구에서 사용되는 데이터가 '너가 만든 데이터냐'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는 그 의사의 학문적 무지를 드러낸다. 데이터가 누구의 것이냐는 저자관계를 주장할 때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중요할 수 있으나 (사실 이 조차도 국제적인 기준을 따르는 학계에서는 데이터의 생성에 관여한 사람이 그 credit으로 기여없이 저자로 올라가는 것은 금지한다고 한다.), 사실 학문이란 것은 어떠한 관찰을 기록한 데이터를 사용하여 어떤 견해를 타당하게 뒷받침하여 주장하는 것 그 자체이다. 즉 데이터가 누가 만들었냐 누구 데이터냐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주로 임상 수술이나 프로시져 베이스의 의사이지 연구자가 아닐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진짜 연구자라면, 저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야기가 약간 다른 쪽으로 새었는데, 학문의 효용과 가치를 일반인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학문은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우리 문명이, 나와 당신이, 이 우주에서 현실을 딛고 존립하는 그 기반 자체가 된다. 그것을 우리는 진리라 부른다. 사용하기에 따라 무수히 많은 효용을 창출해 낼 수 있는 것이 학문적 지식이다. 가장 유용한 정보이자, 지극히 높은 기준의 진리 그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