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로서의 삶을 예로 들어 본다.
오랜만에 지도교수님에게 박사과정 시절 시작했던 휴대폰 전자파의 뇌암 발병 위험 연구가 꽤 괜찮은 학술저널에 출판되었다고 연락을 드렸다. 그랬더니 해외 연구기관에 한 번 나갔다 오는 게 어떠냐고 하신다. 이 이야기를 하면 굉장히 긴데, 필자는 세상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어젯밤에 국제환경역학회 (International Society for Environmental Epidemiology, ISEE) 멤버십 커미티 회의가 줌으로 있었는데 (전 세계에 흩어진 연구자가 모여야 하므로 북미 서부시간 새벽 6시로 맞춘다.) UCLA 환경보건 Beate 교수도 (신경과 전문의) 아카데미아에 남는 학자들이 미국도 많이 없다고 한다. 대부분 인더스트리로 간다는 것이다. 이는 의료계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런 경향은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전 세계적 트렌드이다. 자본보다 중요한 건 자본주의 사회에 적어도 표면적으론 없다. (물론 필자는 개인의 삶의 측면에선 돈으로 살 수 없는 걸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그 사람의 풍요로움을 결정짓는다고 본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폭발적 인구증가와 경제성장에 따라 당시에는 가능했던 삶의 양태가, 만성적 저성장 사회로 접어들고 베이비부머가 은퇴하고 사망에 접어들면서 바뀐다는 것이다. 필자는 당장 삼성전자 주가가 한국의 미래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근데 한국만이 아니라 지금 전 세계가 그렇다. 대부분이 비슷한 경제, 사회, 문화적 흐름 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각 개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스로의 존립을 우뚝 세우고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의 존재 근거를 이 체제하에서 확실히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연구기관에서 연구하며 이리저리 정치하는 식으로 자리를 확고히 하는 방식으로는 모자라다. 스스로 시장에서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시장을 직접 상대해야 한다. 앞으로의 가속화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정말로 확고히 시장을 상대로 직접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된다.
나는 연구자로서의 필자는 이대로가 좋다고 생각한다. 이대로 스스로 수익을 내고 돈을 벌면서도 지금처럼 충분히 학술 연구를 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한다. 연구기관 등에서 쓸데없이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보고, 쓸데없는데 신경 쓰는 것보다 깔끔하게 돈 버는 것과 연구하는 것을 분리하는 게 낫다. 그리고 그게 오히려 정신적 에너지를 덜 갉아먹고 덜 피곤하다. 가족들에게도 연구한다고 상대적으로 적은 수입을 집에 가져가는 것이 못할 짓이다. 아내도 회사에서 힘들어하는데, 집안의 경제적 기둥은 필자다. 필자가 이 가정의 최후의 재정 책임자다.
요약하자면 연구자로서 살아가는 길이 많이 후기 자본주의, 21세기 중반을 넘어가면 많이 바뀔 것이라는 것이다. 베이비부머와 586이 주도했던 사회에서 통용되던 룰이 많이 바뀌었고, 계속 바뀌어 나갈 것이다. 한 번도 우리 젊은 세대가 사회 담론에서 주인공인 적이 없었다. 나는 이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본다. 많은 기준이 바뀌고, 많은 삶의 형태가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펼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