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지 말고 자살로 만들어라
“안녕하십니까. 극중TV 구독자 여러분. 세타의 경고 일곱 번 째 시간입니다. 오늘도 토끼탈 님과 김조영 성우님 모셨습니다. 토끼탈 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지난 세타의 경고 여섯 번째 시간은 뭔가 답답한 게 뚫리는 느낌이면서도, 혼란스럽고 또 한없이 슬퍼지는 시간이었습니다. 희생한 304명에 대한 애도의 마음이 한층 더 깊어지기도 했습니다.”
이성한이 <세타의 경고> 일곱 번 째 시간을 여는 멘트를 이어갔다.
“네, 이성한 PD님. 저는 잘 지냈습니다. PD님은 혼란스러운 느낌도 있었다고 하시는데, 어떤 점이 PD님을 혼란하게 했나요?”
“과연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런 잔인한 일을 벌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상대방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304명을 학살할 수 있는 일이란 말입니까. 그것도 밀레니엄에서 14년이나 지난 시기에 말입니다.”
이성한이 하소연 하듯이 반론을 내뱉었다.
“말씀은 이해하지만 PD님이 너무 순진하신 거예요. 미국 911 테러는 밀레니엄 다음해에 일어났죠. 세월호 학살13년 전입니다. 당시 3천 명이 죽고 2만5천 명이 다쳤습니다. 당장 최근의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와 레바논 침공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정치적 생존을 위한 대규모 학살이잖아요. 아주 멀리 가지 않고 한국에만 국한해도 1983년 아웅산 묘지 폭파 사건, 1986년 김포공항 폭탄테러사건, 1987년 KAL기 폭발 추락 실종 사건이 있지요. 모두 전두환 정권 시대에 일어났어요. 아웅산 묘지 폭파 사건은 범인이 북한공작원이라고 인정해도 전두환과 동갑내기 육사 동기 이기백 합참의장과 전두환의 오른팔 장세동 안기부장은 무사했다는 점에서 강한 기획의 의심이 있구요, 86년 김포공항 폭탄테러는 86아시안게임을 5일 앞두고 김포공항 출입구 쓰레기통에 설치된 C4 크레모아 폭탄이 터져서 다섯 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어요. 몸통이 잘리는 끔찍한 사건이었죠. 당시에 한국군은 막 C4 폭약을 개발했고, 다음 해 87년 KAL기 폭발사고에 C4가 사용돼요. 83년 아웅산묘소에서는 C4가 사용됐지만 한국군은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87년 대통령 선거를 2주 앞두고 115명이 희생된 KAL858편 폭탄테러 사건은 아직도 전모가 밝혀지지 않은 사건이구요. 좀 다른 성격이지만 80년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의 군부에 의한 학살은 이미 쿠데타 성공을 위한 자국민 대규모 학살로 밝혀졌지요. 82년 의령군의 순경이 총기로 62명을 죽이고 33명을 다치게 한 사건도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말해줍니다. 저는 의령군 우 순경 총기 살해 사건이나 최근의 순천 여고생 묻지마 살해사건이나 본질적으로 같다고 봐요. 개인적인 삐뚤어짐이든 정치적 공작이든 인간은 얼마든지 짐승 그 이상이 될 수 있어요. 덧붙이자면 1974년 박정희 부인 육영수의 관자놀이 관통 즉사나 1979년 김재규 안기부장에 의한 박정희 살해도 있네요. 김재규 안기부장이 박정희 얼굴에 권총 여러 발을 쏴서 대통령 주치의도 누군지 몰라봤다고 하잖아요. 인간은 누구나 권력의 불꽃 앞에 미친 불나방이 될 수 있어요. 거짓말로 범죄혐의를 빠져나가려는 건 인간 본성이라고 봐야 할 거예요. 하지만 반드시 주범과 종범을 처벌해야지요. 세월호 참사의 정부 공식 입장은 <지금으로서는 왜 침몰했는지 모른다>예요. 이게 말이 돼요?”
토끼탈의 목소리가 크레센도 표시가 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점점 커졌다. 커지는 것만 아니라 점차적으로 떨리는 소리였다.
“말씀을 들으니까 이해가 갑니다. 이미 <세타의 경고> 4화에서 말씀하신 1987년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도 떠오릅니다. 32명의 사망원인은 목 졸라 죽인 타살이라는 걸 떠올리면 소름이 돋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의 80년대는 5.17 쿠데타로 시작해서 87년 11월 KAL858 폭발테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끔찍한 시대였습니다. 전두환 권력 시기가 이처럼 암울한 세월이었음을 새삼 확인합니다. 작가님은 세월호 기획 학살도 권력 다툼에 의해 파생한 비극으로 보신다는 말씀입니까?”
이성한이 더욱 힘 빠진 목소리로 토끼탈에게 확인했다.
“유감을 넘어 분노가 치밀지만 그렇게 볼 수밖에 없어요. 정황증거도 차고 넘쳐요. 80년대가 죽음의 시대인 건 전두환의 광주학살 때문이에요. 광주학살의 목적은 총을 든 군부가 미치면 얼마나 잔인무도할 수 있는지 일부러 드러내기 위함이지요. 학살을 일부러 드러내놓고 보여주는 거예요. 정적을 몰래 암살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누구든 내 권력욕을 막아선다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는 걸 보여주고 시위하는 거죠. 그래서 최대한 잔인성을 드러내려고 기획한 거죠. 정작 광주 시민은 전두환의 권력 야욕을 정면으로 막아서지 않았는데도 말이에요. 말 그대로 묻지마 살인이잖아요. 서울의 봄에 억울한 광주 시민만 희생됐어요. 그러면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확산하게 돼요. 묻지마 살인사건이 급속하게 늘고,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취급되는 거죠. 노태우 정부는 워낙 냉전체제의 급속한 몰락이 광풍처럼 몰아쳤으니까 공산권 국가와 수교하고 북한 핵을 무마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명색이 문민정부인 김영삼이 집권한 후 김일성 사망과 미군의 북한에 대한 대대적 폭격이 일촉즉발 상태를 거쳤고, 경제적으로 폭망하면서 권력이든 국민이든 허덕이면서 지나갔어요. 물론 IMF 시기에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쌓은 놈들은 따로 있었지만.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지나면서 제도적 민주화는 진전을 보였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권력의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어요. 권력을 쥔 꼴통들이 꿀을 빠느라 다른 일을 벌일 경황이 없었죠. 그러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오르면서 권좌는 사실상 텅 비어버린 거고 그 틈을 놓칠 리가 없는 권력의 불나방들이 미쳐 날뛰면서 세월호의 304명이 희생된 일이에요. 마치 80년 광주시민들처럼. 70년대 유신부터 악마였던 김기춘이 2013년 청와대 비서실장에 취임한 일은 거의 화석이 된 빌런이 깨어나 한국 사회를 분탕하는 격이지요. 그리고 세월호 8년 후 검사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것을 보면 빌런의 회전문 놀이로 보여요.”
토끼탈이 아까와 달리 차분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다시 소설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김조영 성우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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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여러분. 양해를 구합니다.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요. 이번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고 다음 주에 이어갈게요. 많이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