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며 배웁니다
미국 심리치료사 버지니아 사티어의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를 흥미롭게 읽고 있다.
아이를 더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읽게 된 책이지만 묘하게 직장 내 여러 문제들을 떠올리게 한다.
책에 이런 문장이 있다
세 살짜리 아이가 꽃다발을 만들어 어머니에게 주었다고 하자. 어머니는 "아유, 정말 예쁘네. 고마워"라고 말하면서 꽃다발을 건네받았다. 그런데 이어서 다그치는 목소리로 "이 꽃, 저 가게 앞 화단에서 꺾은 거야?"라고 덧붙임으로써 꽃을 훔친 것이 잘못이었음을 은연중에 내비쳤다고 치자. 이 메시지를 들은 세 살배기 아이는 자신을 못되고 쓸모없는 존재로 생각할 것이다.
개인의 차이점을 존중하고, 공개적으로 애정을 표현할 수 있으며, 실수를 학습의 기회로 활용하면서 솔직하게 의사소통을 하는 양육적인 가정의 분위기에서만 내가 존중받고 있다는 감정이 활짝 꽃필 수 있다. (...)
반대로 문제가 있는 가정의 아이들은 왜곡된 의사소통과 융통성 없는 규칙 속에서 자라면서 차이점을 비판받고 실수를 처벌받으며 책임감을 배우는 경험을 전혀 하지 못한 탓에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런 아이들은 자기 자신 또는 타인에 대해 파괴적인 행동을 강화할 위험이 있다.
회사 생활 중 팀장이 팀원을 대할 때 이런 모습을 종종 접한다. 실수를 한 팀원을 몰아세우며 그 결과에 책임을 지도록 압박하는 모습이다. 쩔쩔매는 모습에 '죄송합니다'를 연거푸 하고서야 팀장은 그를 놓아준다. 솔직하고 강도 높은 피드백을 했으니 그가 많은 것을 배웠을 거라 생각하며 팀장은 내심 흐뭇해한다.
정말 그럴까?
나 역시 그런 팀장을 만나 일을 함께한 적이 있다. 막상 당사자가 되어보니 자존감의 하락밖에 느낀 것이 없었다. 실수로부터의 배움은 온 데 간데 사라지고 팀장의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밖에 남지 않았다.
책에서 말하듯 실수를 처벌받기만 해서는 책임감을 배울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평소의 분위기다. 솔직한 피드백도 엄격한 애정이 있어야 받아들일 수 있다. 어머니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아야 잔소리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낮은 자존감은 학습된 것이다. 배운 것은 잊을 수 있으며 새로운 것으로 그 자리를 채울 수 도 있다. 인간의 학습 능력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유지되므로 너무 늦은 시기란 없다. 나는 이것이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언제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인생은 변화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언제든 희망이 있다'는 사실 말이다. 사람은 평생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약간 더 어려워지고, 때론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한다. 그럴지라도 배우고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모든 건 각자의 방식을 얼마나 고집하느냐에 달렸다
책의 메시지를 읽고, 얼마 전 백상 연예대상의 이순재 배우님의 말이 생각났다
"90살이 되어도 계속 배울 겁니다. 저의 생명력은 곧 연기력입니다."
그는 노쇠한 나이였지만 총명한 눈빛을 보여줬고, TV에서 봤던 어느 때보다 젊어 보였다.
자존감 역시 높아 보였다.
배우와 회사원 모두 마찬가지 아닐까?
직장에서 우리는 문제를 풀기 위해 팀으로 모여 머리를 모아 해결책을 고민한다. 모두 이 분야에서의 전문가들이다. 그러니 계속 배우며 더 나은 설루션을 연구한다. 매일 성장하는 사람은 한 뼘씩 성장한다. 존경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그러니 조직 내 직책에 따라 잠시 팀장이라는 옷을 입더라도 자신의 팀원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 그 팀원 역시 매일 배우는 중이다. 존중해야 하며 그의 자존감을 위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동료들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일은 내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미 치열하게 공부하는 아이에게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을 충분하게 주는 일이다.
가끔 응원의 메시지가 담긴 과일 접시를 내어주는 것 외에 어떤 존중이 더 필요할까?
자신만의 시험이 끝나고 나서 아이는 (동료는) 배려해 준 당신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것이다.
이런 엄격한 애정에 기반한 가정(팀)의 분위기가 잘 잡혀있을 때 건강하게 성장한다. 자존감이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