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이 온 여름
1.
전국적으로 비가 많이 온 한 주였다. 역대 최고, 폭우, 피해, 대피같은 말들은 뉴스를 뒤덮었다. 하늘이 뚫린듯 비가 쏟아져 내렸다. 원래 비 오는걸 좋아하는 나는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지만,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는 걱정되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곳은 괜찮았지만 다른 지역은 무서울만큼 많은 토사가 쏟아져 내리고 하천이 넘쳐 흘렀다. 장마가 끝났다더니 왜 갑자기 비가 오는 건지... 산사태가 걱정이다. 폭염도 걱정인데 폭우도 걱정이고 날씨가 너무 극단적이고 과격해지고 있다. 기후변화 때문인가보다.
2.
그 와중에 여름의 맛은 나를 찾아온다. 회사에서 돌린 자두를 한입 베어 무니 새콤하면서도 달짝지근한 자두의 과육이 혀로 스며들었다. 살짝 말캉해진 자두가 더 달았다. 표면의 하얀 분이 수확한지 얼마 안된 신선함을 보장해주었다. 물에 대충 슥슥 씻고 닦으면 얼른 먹고 싶어져 마음이 조급해진다. 제주 살때는 주로 만감류나 귤을 받았지만 이곳으로 오니 더 다양한 과일을 먹을 수 있다.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
3.
비가 그친 공원을 걷다가, 편의점 앞에서 어떤 남자가 얼굴 근육이 확 풀린채로 무언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았다. 평소에 그런 얼굴을 안할것 같은 이미지의 남자는 자신의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살짝 떼서 던져주었다. 처음엔 왜 저러나 생각하다가, 곧 테이블 아래 고양이가 있다는걸 깨달았다. 중성화를 마친 길고양이임이 확실한 이 녀석은 잠깐 나를 봐주었지만 곧 고개를 돌렸다. 이 동네는 고양이가 많은건 아닌데 보이는 고양이들마다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다. 귀엽다. 다들 뚱뚱하고 길고양이지만 건강해보인다. 의외로 캣맘 캣대디가 많은 지역.
4.
지난주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루틴을 무너뜨렸다. 루틴을 시작하는건 그렇게 어렵더니, 망가뜨릴때는 왜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지. 루틴이 무너졌을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하루종일 유튜브를 보는 것, 방을 더럽히는는 것, 그리고 배달음식을 부쩍 많이 시키게 되는 것이다. 소시지와 감자튀김이 몸에 나쁘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모든걸 내려놓으면 금지된 법칙들은 쉽게쉽게 선을 넘는다.
그렇다고 자책하면 더 상태가 나빠진다고, 건강 유튜브에서 말하길래 자책하진 않기로 했다. 맛있게 먹었으면 됐지 뭐. 감자튀김과 소시지가 잔뜩 든 나쁜 음식을 주문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덜고자 닭가슴살 샐러드도 함께 시켰다. 저녁으로 먹겠다고 결심했지만 결국 저 샐러드만으로 저녁이 되지 않아 작은 컵라면을 하나더 먹었다. 저 브런치 세트가 의외로 맛이 있었던 터라, 결국 토요일에 한번 더 주문해 먹고 열심히 걸었다. 그래도 몸에 좋은걸 먹고 걷는게 좋겠지. 에잇, 할 수 있는 만큼 하자. 할 수 있는 만큼. 너무 기대가 크면 포기하게 되니까.
5.
어쩌면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줄 수 도 있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하고 싶었던, 좋은 일이지만 막상 내가 한다니 격려하기는 커녕 오히려 가족과 지인들이 말리는 일을 신청했다. 우편접수를 하며 마음이 싱숭생숭했지만 이미 보냈으니 할 수 없다. 어찌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우리 사회는 그 일을 한 사람을 칭송하고 칭찬하면서도 막상 누군가 한다고 하면 편견가득한 시선으로 만류한다. 외국에선 그러지 않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인식이 따라가지 못하는 걸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버리면 더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6.
사실 회사에서 할일이 그닥 많지 않은 한주였다. 일이 없으면 마냥 기쁘고 좋을것 같은데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면 왜인지 피로가 더 쌓인단 말이지. 뭐든 적당히 하는게 좋다. 일도 적당히 있는게 좋아.
아, 그리고 기대하지 않았던 공공임대주택에 당첨돼서 아마 가을 즈음에 입주하게 될 듯 하다.
7.
자주 흔들리는 나의 마음을, 남편이 조곤조곤 잡아준다. 그래도 또 금세 날뛰지만 그러면 또 남편이 잡아주면 되니까. 역시, 나와 비슷한 듯 하지만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도움이 된다. 이번주에는 다시 루틴을 잡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