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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루스트 Jan 27. 2021

만남 01. FREITAG 프라이탁

1호 - 2호 - 3호

TASTE | 프루스트의 입맛 저장소
Issue No. 1  Green



1호 프라이탁

주인의 시선 : 야무진 초록을 입은 1호는 가방의 원초적 형태를 기교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투박해 보이지만 내용물을 야무지게 지켜내는 나의 첫 프라이탁 1호는 10년이 지난 지금 신랑의 최애 가방이 되었다.


프라이탁은 잘 알려져 있듯 업사이클링 브랜드이다.


업사이클링이란? 재활용품에 디자인 또는 활용도를 더해 그 가치를 높인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


이 '마이애미 바이스 쇼퍼백’은 내가 구매한 첫 업사이클링 제품이자, 나의 1호 프라이탁이다. 대학생 때 처음 사촌언니 덕분에 프라이탁이라는 브랜드에 대해 알게 되었고, 지금처럼 프라이탁이 흔하지 않았던 그 시절 나는 고작 이 가방 하나 덕분에 환경을 위한 소비를 했다는 무언의 뿌듯함이 있었다.


1호는 그동안 대학교 엠티, 성당 수련회 등 1박 2일의 가벼운 여행에 자주 동행되었다. 10년이 넘도록 꾸준히 잘 들고 다닌 데에는 디자인과 질긴 내구성도 한몫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이 브랜드를 통해 드러내고 싶고 닮아가고 싶은 가치관이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은 본인이 사용하는 물건과 가는 곳, 취미 활동 등을 통해 자신을 은연중에 브랜딩한다. 나도 아마 그런 브랜드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유행의 껍질에 끌려 다니기보다 자신의 알맹이 철학에 꾸준히 집중하는 브랜드.


“Don’t buy this jacket” 광고로 유명한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다소 파격적인 광고 문구를 통해 하나의 물건을 만들기까지 수많은 자원이 소모된다는 것을 소비자에게 인식시켰다. 이들은 매출의 1%를 지구세로 내며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을 다해오고 있다. 그리고 늘 말한다. 무엇을 사기 전에 이게 나에게 꼭 필요한지, 깊게 생각하고 소비해야 한다고.


이윤 창출 이전에 사회적 가치를 우선하는 기업들은 그 과정에 분명 이루 말할 수 없이 수많은 타협과 유혹이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함몰되지 않고 살아남아 버텨온 브랜드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 많다.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한 브랜드 철학을 우선으로 긴 세월 함께 버티며 성장해온 브랜드들의 꾸준한 외침은 가랑비 옷 젖듯 나의 삶에 깊숙이 스며 들어왔다.



2호 프라이탁

주인의 시선 : 2호 프라이탁이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서는 주인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주인이 뒷덜미를 당겨줘야 보호 중인 물건을 드러낸다. 엉덩이를 살짝 눌러주면 폴짝 뛰는 개구리 장난감 같기도.


아이폰 5 케이스로 데려왔던 2호 프라이탁(슬리브)은 휴대폰을 바꾸면서 한동안 저 깊은 서랍 속에 잠들어있었다. 그러다 작년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면서, 소액의 현금만 넣고 다닐 작은 지갑이 필요했고 불현듯 잠자고 있는 2호 프라이탁이 떠올랐다. 그렇게 2호는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났다.


다시금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2호 덕분에 여행의 무게는 가벼워졌다. 자고로 여행 가방은 가벼워야 한다. 경계의 무게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크로스백은 지갑 외 여권, 휴대폰, 보조배터리, 기타 중요서류 외에도 낯선 곳에서 가방을 감싸며 얹는 두 손, 경계의 무게가 더해진다.


2호 프라이탁은 아날로그를 추구한다. 마트에서는 직원분이 계산 완료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금전함이 열리지만, 2호는 주인이 뒷덜미에 달린 스트랩을 당겨줘야 금전이 올라온다.



작은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고른다. 계산대로 이동한다. 2호를 꺼낸다. 2호 뒷덜미에 달린 스트랩을 당긴다. 마치 소리 나는 인형을 선물 받고선 버튼을 처음 눌러보는 아이마냥 가게 주인 할아버지의 반응을 기다린다. 할아버지가 웃는다. 나도 웃는다. 이방인의 경계가 무너진다. 이토록 쉽게.



3호 프라이탁

주인의 시선 : 거칠었던 삶을 여실히 증명하듯 3호 프라이탁은 유독 영광의 상처가 많다. 상처를 덧입어 가며 무엇을 지켜왔던 걸까? 폐방수천으로서 거친 비바람과 추운 새벽을 무던히 견디며, 무언가를 우직하게 보호해왔을 3호. 나에게 3호가 믿음직스러운 보호의 아이템이듯, 3호에게 나도 그런 주인이고 싶다.


친구의 생일파티에서 자선 경매를 한 적이 있다. 더 이상 자신에게 무용해진 물건을 가져와 새로운 주인을 만나도록 이어주며, 판매 수익금은 불우이웃을 위해 기부하는 좋은 취지의 이벤트였다.


방식은 간단했다.


물건의 본 주인은 자신의 차례가 되면 해당 물건의 가치를 직접 설명한다. 물건의 몸값은 주인의 입담과 스토리텔링에 달려있다. 보통의 경매는 주인이 아끼거나 가치 있는 물건을 내놓아 그 가치를 어필하며 몸값을 키운다. 하지만 이 경매는 주인을 잘못 만난 물건에게 애도와 반성을 표하며 새 생명을 불어넣어줄 현인을 찾는 느낌으로 진행되었다.


시작가부터 촘촘히 주거니 받거니 경매가가 올라가는 물건이 있는가 하면, 시작가 이후 정적만이 감도는 물건도 있었다. 이때 실상 가질 마음은 없지만, 누군가가 안타까운 마음에 동정의 호가를 올린다면 그 가격은 그대로 낙찰가가 되기 십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자영업자 친구가 가져온 본인의 가게 앞 배너는 누군가가 가볍게 호가한 가격에 그대로 낙찰되어버렸다. 섣부른 동정이 부른 화의 단적인 예이다.


지금 그 배너는 잘 쓰이고 있을까?


우리 부부는 아마도 이 경매의 최대 수혜자였던걸로 기억한다. 신랑은 책을 읽으면서 필요했던 이케아 책 받침대를 거저 주는 값으로 얻었고, 나는 이 새뜻한 초록의 클러치를 얻었다.


그렇게 나의 3호 프라이탁이 된 친구의 클러치는 나에게 와 아이패드와 키보드를 넣는 파우치로, 때로는 노트북 파우치로 변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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