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TE | 프루스트의 입맛 저장소
Issue No. 1 Green
2ndia 두번째인도 | 여름 목화솜 이불
주인의 시선 : 그려진 새 무늬 때문일까? 이 생동감 넘치는 초록을 보고 있으면 사람 손을 타지 않아 나무와 풀로 무성한, 조금은 거친 자연 속에서 찾은 나만의 안식처 같다.
집에 돌아오면 나를 가장 먼저 품어주는 공간. 수동의 삶을 퇴근하고 드디어 주어지는 달콤한 능동의 삶이 시작되는 공간. 무거운 눈꺼풀에 매일 지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부여잡고 싶은 의지와 욕심을 마음껏 부리는 공간.
우리 집 거실 소파.
그리고 그 소파 위에는 쿠션 외에도 얇은 ‘목화솜 이불’이 사시사철 함께한다.
어릴 적 할머니 방에 가서 목화솜 이불을 덮으면 이대로 무게에 눌려 질식하는 건 아닌 가 싶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그 짓누르는 무게 덕분에 안정감을 느꼈다. 하지만 세탁도 힘들고 때가 되면 한 번씩 솜을 틀어 줘야 하는 목화솜 이불은 여러모로 나에게 할머니만 다룰 수 있는 어려운 소재였다.
하루를 충전받는 침실에 들어가기 전에 거치는 자의적 관문 같은 이 공간에서 나에게 필요한 이불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이불이었다.
너무 시원하고 가벼운 소재는 몸을 감겨주는 맛이 없고, 또 너무 무거우면 보기에도 덮기에도 답답하다.
친구 같은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이불이 필요했다. 에어컨에 시린 어깨를 감싸주기도, 쫄깃한 스릴러를 볼 때 쥐어 잡을 수 있는 손 같은 그런 존재.
크기도 중요했다. 무릎 이불처럼 간편한 느낌을 주되, 긴 몸을 덮어줄 정도의 길이. 싱글 크기가 제격이었다.
세탁의 용이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는데, 울코스로 물세탁도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하니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무엇보다 마음을 움직인 건 이 이불의 생산방식이었다.
나는 복잡하고 더디고 어렵더라도 추구하는 가치를 지켜내고 천천히 이어나가는 장인문화를 사랑한다.
이 이불은 인도의 전통 핸드 블럭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제작되는데, 나무 블럭에 무늬를 새기고 그 위에 천연염료를 묻힌 후 직물에 직접 도장처럼 찍어내는 방식이다. 그렇게 여러 도장의 조합을 반복해서 고르게 찍어내면 패턴이 완성된다. 삐뚤어진 모양을 발견한다면, 그때가 바로 이 이불의 규칙적인 듯 불규칙적인 매력을 발견하는 타이밍이다.
이젠 없으면 허전해진 이 이불은 사용하면서 더 좋아졌다. 더 좋아진다는 건 계속 봐도 질리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나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는 의미일테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함께 지내는 데 어색하지 않았고 늘 오픈되어있는 거실에서 매일 보아도 거슬리지 않는다. 잘 개어서 쿠션 사이에 끼워두면 진한 단색의 모던한 집 분위기에 적당히 포인트를 주는 역할까지 해낸다.
싱그럽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초록을 입은 이 이불이 미래의 내 꼬마도 좋아할 이불이길 바라본다.
더불어 꼬마가 안전히 본인에게 꼭 알맞은 때에 찾아오길.
너무 애타게 기다리진 않을게.
너의 속도에 맞추어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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