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님과 작가님 모두 누군가의 님
성실하고 규칙적인 사람을 동경할만큼 규칙적인 것에 갑갑함을 느끼는 편이다. 그런 나를 최초로 규칙적이게 만들어준게 글쓰기다. 1년전 '매일 글쓰기'를 365일 동안 해냈다. 약속이 있어도, 화장을 지우지 않더라도 무조건 하루 한편의 글을 마감한다는 규칙을 1년이나 해낸건 내인생을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무엇도 나를 매일 하게 만들지 못했다. 글쓰는 자아를 하나 더 가진다는건 생각보다 좋은 점이 많았다. 오직 한가지의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만 알고 살았던 때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됐다. '회사원'의 자아 하나만으로 살았을때의 나에게는 밝게 그려볼 미래가 없었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그리고 조용히 보내는게 목표였다. 타인은 모두 적이었고, 외로웠고, 오직 한가지 돌파구를 찾으려 발버둥 쳤지만 그런게 있을 리가 없었다. 회사 안은 전쟁터고 그 바깥은 지옥이라는 말처럼, 그저 납작 엎드려 누군가를 위한 삶을 연명할 뿐이었다.
“쓰는 사람”이 내 일상에 추가된 후로 타인으로부터 생기는 흔들림이 조금씩 덜해져갔다. 글을 쓴다는 생산적인 활동을 매일 하고 있는 내자신을 사랑하게 됐다. 수많은 책과 명사들의 조언에서나 보고 듣는 '자신을 사랑하라'라는 명제가 '불가능한 개소리' 인줄만 알았던 나였다. 자기자신을 가장 먼저 사랑해야만 '사랑'이라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걸, 내자신을 아끼고 소중히 여겨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어떤 날의 나에 대해, 나의 기분과 감정에 대해 조목조목 써내고 보면, 또 그것을 반복하다 보면 애틋해진다. 내삶의 최전방에서 나를 위해 가장 물심양면으로 애쓰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 그것만 잊지 않아도 쉽게 말랑해져 휘어지는 내감정을 잘 토닥일 수 있었다.
글을 쓰는 자아가 생기고 책도 출간하게 되면서 작가라는 호칭을 얻었다. 그러나 더러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가 무슨 작가냐고도 했다. 그럴땐 '작가는 무엇인가'라는 정의를 찾느라 글을 쓰는 내가 나에게서 잊혀져갔다. 타인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나조차 나를 인정해주지 않으니 나는 작가도 뭣도 아닌 사람이 되어갔다. 그렇게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던 시절을 보내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메모를 하고 글을 썼다. 매끄럽지 않아도, 작가라는 호칭을 듣지 못해도, 나는 쓰는 순간이 즐겁다는걸 깨달았다. 나는 이미 글쓰는 자아를 획득했고, 내가 그 자아를 놓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내자아를 평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려고 누운 어느날, 나는 출간한 책의 판매부수나 인기와는 상관없이, 글쓰는 내자아를 "작가"라고 인정해주었다.
나는 나에게 말했다.
"그래, 나는 작가야.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어"
"누가 나를 정의하건 나는 이미 글을 쓰는 사람이고, 나의 꿈은 60살이 되어서도 나에 대해, 나의 세상에 대해 글을 쓰는거야"
작가가 되고 출근을 했던 어느날 누군가가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의학박사 김박사 입니다"
나는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오직 회사원 100퍼센트로 살았던 때에는 박사든 아니든 타인에게 마음껏 휘둘리며 매일 생각했다.
"너무 불행해"
작가가 된 나는 회사에 출근해도 더이상 불행하지 않았다. 나를 작가라고 소개하는 것만으로, 세상이라는 전쟁속에서 무기 하나를 얻은것처럼 조금은 즐거워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100%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무기를 하나씩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모두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으면 더 좋겠다.
"당신이 박사라면 나는 작가지"
쓰는 아도르
사진, 글 adore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dore_writing
인스타그램 : http://www.instagram.com/adore_wri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