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돌파만이 방법은 아닌걸
‘뭐야, 왜 이렇게 두근거리지’ 마음속으로 한 말이다. 빠르게 뛰는 심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손바닥으로 왼쪽 가슴을 지긋이 눌러본다. 글을 쓴다는 건 나에게 여전히 두근거리는 일이구나.
경기도로 이사한지 두 달째쯤 됐을때, 서울로 출근하는 날이면 하루중 꽤 긴 시간을 지하철 안에서 보내게 됐다. 적어도 4시간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완벽한 핑계가 생긴 셈이다. 서울에 직장을 둔 경기도민의 삶,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삶이란 계획하지 못했거나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니까. 삶의 공공연한 비밀을 알게 된 후 더이상 미래를 예측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 이순간 나에게 닥치는 일들에 진심을 다하니 가끔 나의 아무 것도 아닌 일상이 경이롭게 느껴지는 날도 더러 생긴다. 예측하지 못한 덕분에 갑자기 생긴 길고긴 출퇴근 시간을 '잘 사용'하게 되었다. 끊어 쓰지 않고 통으로 사용하면 잘사용하기 보다 그냥 흘러보내는게 시간이다. 더불어 시간의 소중함도 잘 모르게 되던 차, 가끔이나마 시간을 끊어쓸 수 있게 되어 길고 긴 출퇴근이 과거에 비해 마냥 불행하지만은 않다.
오늘의 퇴근여행 '잘 사용'은 브런치다. 한 해의 말미, 오랫동안 뜸했던 브런치의 서랍을 방문했다. 쓰다가 실패한 글들, 끈기가 없었던 이야기들이 서랍속에 이리저리 널부러져 있음에도 눈으로 확인하니 왠지 모르게 울컥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아, 나 글쓰는 사람이었지"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툭 튀어나온 뜨거운 말이다. 차가운 현실에 아등바등 적응하다 보면 그래, 우리는 충분히 차가워질 수 있다. 냉소할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하다. 각자의 뜨거움을 부활시켜주는 최종병기, 내안의 뜨끈한 것을 꺼내보는 일.
나에게 글쓰기란, 브런치와 작가의 서랍이란 그런 것이었다. 눈치 보지 않고 과거와 현재의 나를 글로 쓰는 것, 누가 알아주든 말든 오직 나만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시간. 내안에 아직도 남은 뜨거운 것을 꺼내보는 시간. 퇴근을 할 때, 누구를 기다릴 때, 사람이 많아 더부룩한 지하철을 보낼 때, 휴대폰으로 곧잘 글을 쓰곤 했다. 뭐가 되겠다는 목표나 욕심도 없이 글을 쓰는 행동을 반복하다 보니 글 쓰는 자아가 하나 더 생겨났다. 글을 쓰게 되면서 국어사전을 자주 찾아봤고, 한글의 아름다움과 유용함, 실용성에 대해 감탄하게 됐다. 언젠가 글쓰기 수업의 수강생이 글을 쓰는 자기 자신이 '있어 보여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 적이 있다. 재밌게 말했지만 좋은 동기다. 꾸준히 글을 쓰는 내자신이, 글을 쓰는 내 자아가 대견하고 점점 마음에 들었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먼 곳에서 엄한 이론들만 찾아 헤맸었는데 글을 쓰며 자연스레 알게 됐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위하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자주 해보는 것이란걸.
가끔 내가 글을 계속해서 쓸 수 있을까, 나의 글은 형편없나, 하고 책 판매부수에 견주어 하염 없이 가라앉을 때도 많다. 다행히도, 그런 걱정들은 다시 글을 쓰고 펜을 계속해서 움직이다 보면 자연스레 관심사 100위권 밖으로 물러난다. 사실 글을 쓰는게, 글을 쓰는 내가 너무 좋으면 그순간 나오는 음악이나 주변 환경은 부차적인 것이 된다. 이건 비단 글쓰기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한가지에 포커스를 맞추면 다른 것들은 아웃포커싱이 되고, 더 아픈 곳이 생기면 기존의 통증은 조금 덜해지는 것, 어떻게 보면 삶을 사용하는 유용한 기술이 아닐까.
사랑하는 측면돌파, 글쓰기는 나의 측면돌파다. 컴퓨터 화면을 전환하듯 여러가지의 나를 전환하며 살면 되는줄 글쓰기를 통해 알게 됐다. 정면돌파만이 정답인줄 알았던 단일한 나는 자주 불행했고 그 불행조차 건건이 정면으로 마주했다. 측면돌파를 해도 되며 때로는 멍때리며 쉬어도 된다는 걸 알게 된 지금은 불행을 정면으로 대하지 않는다. 파도를 정면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피하거나 올라타야 하는 것처럼 불행도 그랬다. 물론 노력해야 하지만 글쓰기에는 불행이든 행복이든 그주체를 객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물론 글쓰기 그자체만으로 대단한 변화가 생기진 않는다. 수 백만원을 들인 1회의 해외여행이 당장 나에게 돈의 값만큼 변화를 가져다주지 않듯 "계속"이라는 단어가 부사로 쓰여야 한다. 어떤 것을 '계속' 하다 보면 그것에 대한 나만의 인사이트가 생기게 마련이니까.
바쁜 일상에 잊고 지낼지라도 모든 사람들에게 각자의 "작가의 서랍"이 있었으면 한다. 출간을 해야 작가고 구독자 몇만이 돼야, 인기가 있어야 작가냐 하는 것조차 넣어둘 나만의 서랍 말이다. 내인생이라는 소설의 작가는 오직 한명, 나다.
쓰는 아도르
사진, 글 ad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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