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가 되었을때 더 소중해지는 자아
컴퓨터엔 화면을 전환하는 기능이 있다. 나는 주로 1번 화면에서는 업무와 관련된 것들을 켜놓고 두번째 화면에서는 글쓰기 관련 프로그램과 폴더를 열어 놓는다.
컴퓨터 화면 전환하듯 내 삶도 전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든다. 전환할 수 있는 자아가 많을수록 자신감과 자존감은 높아진다. 타인에게 나를 설명할 때에도 상황에 따라 내게 유리하게 말할 수 있다. 말보다, 책보다 경험이다. 화면을 전환하듯 자아를 전환하며 사는 것을 체득한 나는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자신의 색다른 면면들에 자주 집중하다 보면 타인의 행동따윈 관심이 없어진다. 불행한 사람들은 타인의 삶에 관심이 많아진다는 어느 영화의 마지막 대사처럼, 타인의 감정이나 말에 상처를 점점 덜 받게 된다. 내 여러가지의 자아들을 돌볼 시간도 없는데 타인의 삶이 무슨 상관이람.
일이 하기 싫은 날은 글을 쓰면 되고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날은 일에 집중했다. 사람들은 회사 하나 다니기에도 피곤한데 여러가지를 어떻게 하냐고 말하지만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회사원 100%의 삶은 자주 고단하고, 주눅들고, 자신이 없어지고 불안했지만, 회사원이라는 자아가 나의 30%쯤 되면 글쎄, 퇴근하고 다른 나로 전환되기에 피곤할 여력이 없다. 오늘 낮 속상한 일이 많았던 회사원 허물은 벗어서 방 한켠에 던져버리고 작가라는 근사한 옷을 입는다. 작가인 나에 몰두하다가 다음날 아침 다시 회사원 옷을 입었을 때 어제의 속상함들은 이미 휘발되고 없거나 보일듯 말듯 작아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월급은 또 어떤가. 회사원 100% 였을땐 월급이 내 삶의 전부였기에 소중함과 동시에 증오의 대상이어서 알량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여러 자아의 생계를 책임지는 내월급은 나의 샘물이며 삶의 원천이다. 회사원으로서 오직 일이 나의 전부였을 땐 그렇게 하기 싫던 일이 취미처럼 여겨질 때도 많으니 얼마나 즐거운가!
예전의 나는 월급을 말할때 늘 ‘알량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알량하고 치사한 월급에 끌려다니는 내가 싫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작가인 나의 자아가 늘 “너의 품격은 내가 담당하고 있으니 기죽지마”하고 말하며 나의 자존감을 받쳐주고 있으니 월급이 더이상 알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소중한 월급, 작가인 나에게 전폭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는 내 ‘소중한’ 월급이 되었다.
쓰는 아도르
사진, 글 ad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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