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글만 써도 배불러
2020년 처음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한참 암울한 미래를 추측하던 여름, BTS의 싱글 앨범 “Dynamite”가 발매됐다. 그 한 해에 발매된 앨범이 비단 그 곡만은 아닐테지만 유독 그 한곡만이 기억에 남는 이유가 있다. 유래 없는 지속적 바이러스 사태에 왠지 모를 우울감이 드는 시기였다. 마치 모든 것이 멈춰버린듯 했던 그때 BTS의 Dynamite를 들으며 처음으로 ‘재생’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사처럼 고민들 모두 누군가에게 맡기고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보고 싶어졌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작업을 꾸준히 해나가는 그들처럼 나도 무언가 ‘계속’ 해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며 기운이 났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세상이 멈추든 상관하지 않고 오직 내가 즐거운 것을 지속적으로 해보고 싶다고.
글쓰는 자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든든했던 나도 그시기엔 기운이 빠져있었다. 생기 발랄한 그들의 뮤직비디오를 보자, 글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이 세상속에 나를 남기는 기분이 들어 좋았던 1년전의 내가 떠올랐다. 낮동안의 폭염으로 뜨거워진 마음을 식힐 수 있었던 나의 글쓰기. 예상치 못한 노래 한곡으로 다시 힘을 내어 매일 글쓰기를 ‘또다시’ 시작했다. 다시금 시작된 밥보다 든든한 쓰기생활 한달차가 지날때쯤, 새로이 업데이트한 글들로 세번째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출판사의 제의를 받았다.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하였습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게 이런걸까. 나의 글로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메일 한통에 든든해졌다. 그순간의 기분이라면, 그정도 높이의 자존감이라면 그누구든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으리라.
좋아하는 일을 하며, 크고 작은 성취를 이뤄간다는 건 자존감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확신한다. 그러기 위해선 자의식이 여러개여야만 한다. 완벽한 하나의 자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언제든 하나의 자아가 실패해 볼 수 있도록, 그래서 웬만한 실패에는 쉬이 좌절하지 않도록 또다른 나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실패를 맛보고 그 실패가 반복되는 일은 분명 지치는 일이지만, 한편으론 원동력이 되며 자잘한 실패들을 통한 슬픔이 없다면 기쁨의 맛이 줄어든다. 실패를 원동력 삼으려면 여러 실패를 해봐야만 하는데, 단 하나의 자아로는 실패가 두렵기만 하다. 시원하게 실패하고 가뿐하게 시작하고 또다시 실패하는 여러개의 자아들이 서로 기쁨과 슬픔을 교차해 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풍성한 감정들을 경험하며 점점 단단해질 수 있다.
그러니 글을 쓰자. 그림을 그리고, 놀고, 맛있는 것을 먹고,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배우고 실패하고,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하자. 한 번에 복권에 당첨되는 천운의 사람이 되길 바라기보다, 오늘도 내일도 계속 복권을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복권 한 장만을 쥐고 내가 천운을 타고난 사람이 되길 바라는건 삶을 사는거라기 보다 버티는 일이다. 복권이 당첨되길 바란다면 일단 사야 한다. 내 여러 자아중 어떤 자아가 복권 1등이 되길 바란다면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복권을 사듯 무언가를 계속해서 해야만 하는 것이다.
완벽한 하나의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면 나는 늘 한 글자도 쓰지 못할 것이다. 나의 글쓰기가 든든한건, 실패해도 된다는, 잘 쓰지 못해도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밥을 먹듯 고유한 나의 글을 쓰다보면 언젠가 글이 밥보다 든든해지지 않을까?
쓰는 아도르
사진, 글 ad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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