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지만 어쨌든 마감
매일밤 나는 원고를 마감한다. 훌륭한 글을 쓰겠다거나 한 편 한편 완벽한 글을 쓰겠다는 의도가 빠진, 그저 가볍게 오늘 나의 하루를 마감하는 글쓰기를 말한다. ‘매일 쓰기’에 대해 결심만 하고 대단한 걸 써내려 했던 과거엔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작년 여러가지 이유로 오래 글을 쓰지 못했던 기간이 있었다. 나에게는 분명 글쓰기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좋아한다거나 잘해야 한다는 의식 없이 그냥 일단 하고 봤던 글쓰기가 어려워지니, 쓰는 사람으로 계속 살자고 마음 먹었던 내가 낯설었다. ‘나는 왜 글을 쓰지 못하는가’에 대해 오래 생각하던 어느날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이 추상적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까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잘 쓰려고 하면 잘 안써지던데요. 그때 그때 가장 하고 싶은 말들을 글로 대신 한다는 생각으로 썼던 글들이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으면 좋기도 하고요. 그냥 써요 그냥. 잘 쓰려고 하면 한자도 못써요. 저는 그래요.”
내 입으로 나오는 대답을 듣고 생각했다. ‘아 매일 쓰기는 “그냥” 하는거였지. 잘 쓰려고 하지 말고 그냥’ 그날 저녁부터 나는 매일 글쓰기를 시작했다. “매일 글을 써야지”하는 결심보다 앞선 것은 일단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앉아 무작정 아무 글자나 타이핑하는 것이다. 어떤 주제를 가져야 한다거나, 소재를 생각한다거나 하는 단계를 건너뛰고 순간의 내가 쓸 수 있는 것을 무작정 쓰는 것이 매일 쓰기의 (나만의) 원칙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마무리 지을 것’이 두번째 원칙이다. 그 큰 두개의 원칙 외에는 되도록 유연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어떤 일을 매일 함에 있어서 너무 완벽하게 하려 하거나 많은 것들을 지키려 하면 스트레스가 발생해 작심 이틀로 끝났던 숱한 경험들 덕분에 무슨 일이든 ‘스트레스 받지 않는 선에서’의 법칙을 지키려고 했다. 덕분에 성실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도 매일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매일밤 나의 원고를 마감하는 일은 글을 쓰려고 노트북에 손을 댈 때마다 한숨부터 나올만큼 어려운 일이다. 한편으론 오늘 내가 마무리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안정감을 준다. 퇴근 후나 주말, 뭘 해야 할지 몰라 게임으로 시간을 때우기만 했을땐 느끼지 못했던 느낌, 공허를 매워주는 느낌 말이다. 비록 나 혼자 정한 나만의 원고지만 뭐 어떤가, 나의 하루를 마감하며 쓰는 글은 오직 나여서 쓸 수 있는 나만의 기록이 아닌가. “Create 하지 말고 Document 하라”는 유명 유튜버의 말처럼 대단한 것을 창조하려 하지 말고 뭐든 지속적으로 기록하다 보면 그게 바로 오직 나만의 브랜딩이 되는게 아닐까.
오늘도 기다리는 마감이 있다. 내가 해야 할 은밀한 나만의 마감, 나만의 글쓰기가 있다. 이렇게 매일 유연하게 마감을 지속하다 보면 축적된 나만의 인사이트로 인해 나만의 작품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나만의 것이 될 것이다. 오늘 마감을 하지 않고 자버리면 희망이 없어지지만 오늘의 마감만 하루하루 해나간다면 나의 하루에 마음을 쏟을 수 있다. 오늘 하루에 마음을 쏟는 일, 그것이 내가 매일 마감을 하는 이유다.
아 오늘은 뭐 쓰지?
쓰는 아도르
사진, 글 ad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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