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로 서기 위해서
회사원 100%가 아닌 회사원 50%쯤인 상태에서 다시 회사원이 되니 관찰자 입장이 되어 회사생활이 한결 편해졌다. 내 삷이 회사원 100%로 구성되었을 때는 미처 우산을 준비할 틈도 없이 비가 오면 비를 맞고 허리케인의 중심에서 벌어지는 각종 재난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 여러가지의 인생중 그저 열세번째, -없으면 아쉽지만 있어도 내 행복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정도-에 회사가 랭킹되니 아주 높은 곳에서 변화 무쌍한 날씨를 관망하는 기분이 들었다. 글쓰기 내게 준 선물이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을 하면 오히려 독이 된다. 일과 회사가 내 전부가 될 때 특히 두드러졌던 현상이다. 회사라는 그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소한 일을 나와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되고, 그 속에서 나의 쓰임과 성과를 계속해서 찾아낸다. 기어이 내자신을 부품으로 만들어간다. 그리고 끊임없이 질문한다. 나는 일을 잘 하고 동료에게 도움이 되는, ‘쓸모 있는’ 사람인가? 라고 말이다.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나 쓰임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끝도 없이 나를 태웠던 과거의 나는 이미 재가 되어 어디로든 뿌려졌다. 바람에 날려 어딘지 모를 차가운 땅위에 앉아 생각했다. ‘태워진 길에 쉬어갈 때도 있는거 아닌가’ 나를 태워 재로 만든 후에야 알게 된건, 타인에게 욕먹지 않도록, 쓰임이 좋도록 애써봐야 나의 쓰임새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과 적정량의 욕은 먹고야 만다는 것이었다.
관찰자 입장에서 회사와 사람들을 보니 내 눈앞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나는 이 증오들을, 미움들을 글로 쓰면 되는 사람이니까, 하는 생각에 나에게 닥친 불행과 증오마저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벌어지는 일마다 자신의 일인양 스트레스를 받는 조대리 에게서도 내가 보였고, 의욕이 앞서 잘 해보이겠다는 신입 직원에게서 그시절의 내가 보였다. 그렇게 거리를 두고 여러 모습의 나를 발견하며 글을 썼다.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와, 나와 같은 과정을 겪어나가는 수많은 나들을 보며, 틈 날 때마다 옥상으로 올라가 글을 썼다. 옥상은 항상 사람들의 위에 있지만 그곳에 가끔 올라가 바람을 쐴 수 있다는걸 잊고 사는 사람들처럼 나도 그랬다. 나를 도닥일 줄 몰랐고 바람 한점 쐬러 나갈 줄을 몰랐지만 이젠 아니다. 이해관계와 전후사정을 따지기 보다 제일 먼저 내마음을 살피고 내가 해야 할 것을 1순위에 둔다. 옥상에 올라가 글을 쓰는 행위는 나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나를 살피고, 내마음을 반추하여 쓰지 않으면 지나가버릴 것들을 글로 쓰다보면 내가 보이고 상대가 보이고 무엇보다 현상에서 멀어질 수 있어 좋다. 글쓰기를 핑계로 현상에서 벗어나고, 바람을 쐬고, 나를 알게 되고 글까지 남다니 일석 사조가 아닐까.
쓰는 아도르
사진, 글 ad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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