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로 부자가 되었다면서요?
“돈 벌려고 책을 출간하시는거예요?”
책을 팔아먹으러 온 사람을 대하듯 나를 쳐다본 사람이 있었다. 책 몇권 출간 했답시고 작가인척 허세를 부린다는 눈빛. “요즘은 아무나 다 작가라더라”는 말부터 시작된 대화는 예상치 못한 질문으로 끝났다. 뭐라고 대답할지 한참을 생각했지만 질문자를 이해시키기 위한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일련의 과정과 이유를 간결하게 대답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는 맥락을 완벽하게 이해한 순간이었다. 그런 순간이 점점 늘어남에 따라 말수가 적은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인간은 언어로 표현해야만 생각과 마음의 정당성이 생긴다는 견고한 내 가치관을 무너뜨리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생각했다. 말은, 하는 것보다 언제 해야 할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단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라면 출간보다 훨씬 효율적인 것들이 많다. 주식이라든가.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쓸 필요는 없다. 굳이 설명하자면, 내가 쓴 글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 나누고 싶다. 그러려면 책이 많이 팔려야 하고 내 글로 인해 나와 출판사가 잘먹고 잘살게 되면 여러 사람이 행복해진다. 나는 또 다음 책을 준비할 수 있는 넓고 다양한 기회를 가지게 된다. 여기까지는 내가 글을 쓰는 이유중 껍떼기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내가 계속해서 글을 쓰고 기회만 되면 출간을 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나의 슬픔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생산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며 소비지향적 삶을 사는 자신을 생각하면 부럽다고 하지만 모르는 소리다. 책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에서 박연준 작가가 쓴 ‘창작하는 사람’에 대한 대목은 내가 글을 쓰는 대부분의 이유를 완벽하게 설명한다.
“기쁜 사람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 그저 사람들을 만나 웃으며 제 기쁨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란다. 그러나 절망하는 사람, 우울한 사람, 슬픔에 빠져 견디기 어려운 사람은 혼자인 사람이지. 혼자 수렁에 빠진 채로, 혹은 수렁에 걸터앉은 채로 자기 재능을 찍어 무언가 창작하려는 사람. 프리다 칼로의 창작 원동력은 결핍과 고통, 슬픔이었을 거야. 건강한 몸을 가지지 못한 것과 사랑의 부재. 인생은 그런 면에서 공평하지. 신이 가혹하게 굴면 굴수록, 영리하고 지독한 인간은 재주를 부리거든.”
사람들은 나에게 생산적인 삶을 산다고 하지만 그 말이 마냥 기쁘지 않았다. 책속 말처럼 나는 분명 내 슬픔을 원동력으로 많은 것들을 창작해내려 애쓰고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일어나는 절망을 최대한 이용하여 글을 쓰고, 견디지 못하는 슬픔을 견뎌내기 위해 일상의 모든 빈틈을 촘촘이 채우려는 사람이기 때문에. 프리다 칼로처럼 대단한 작품을 쓰고 있는 중이 아닐지라도, 나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자주 슬픈 사람임엔 틀림없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의 나는 나의 우울과 절망을 다스리려 공허한 만남에 사활을 걸었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후로는 영혼 없는 대화가 공허하게 느껴졌고, 자연스레 공허한 만남들을 내 일상에서 제외시켰다. 오늘 한낮의 절망을, 비난을, 글로 쓰면 되니까, 그 글을 내가 읽고나면 슬픔이 조금쯤은 객관화가 되니까. 그래서 나는 글을 쓰고 출간을 한다. 지금 쓰는 글과 책이 잘 팔리지 않을지라도 나의 슬픔과 외로움을 양분 삼아 계속 쓸 것이고, (그럴리 없겠지만) 100만부가 팔려도 계속 글을 쓸 것이다. 슬픈 순간, 외로운 순간, 절망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 슬픔과 절망, 외로움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 대기만 하면 결국 가라 앉겠지만, 정신을 차리고 헤엄쳐 뭍으로 나와 바다에 빠진 경험을 복기해 본다면, 또 그것이 반복된다면, 슬픔과 외로움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되지 않을까. 글을 쓰는 일은 이제 내가 슬픔의 바다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고 헤엄쳐 나오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렇게 내 모든 우울과 슬픔을 걸고 글을 쓰니,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출간하냐는 공허한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리가.
지금은 회사원인 자아가 생계를 유지하며 글쓰는 나를 후원해주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도 온전히 작가로 살아보고 싶은 꿈이 있다. 꿈을 실현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이왕이면 내가 쓰는 글이 밥을 먹여주고,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나의 외로움과 슬픔을 자양분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된 이상 내 글을 팔아 돈을 많이 벌고 싶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단순히 돈벌이를 ‘목적’으로 출간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쓴 글로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말하기를 부끄러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을 벌지 않으면 계속해서 글을 쓸수도 없을테니. 그러니 글을 쓰는 사람들의 가난함을 정당화 시키거나, 글을 써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말하는 작가를 ‘장사꾼’ 취급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을 쓰든 쓰지 않든 슬픔과 절망 그리고 외로움을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임에는 우리 모두 동일한 조건으로 태어나 살아가고 있으니까.
쓰는 아도르
사진, 글 adore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dore_writing
인스타그램 : http://www.instagram.com/adore_wri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