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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Jul 10. 2024

괜찮아, 글쓰는 내가 있으니까

나를 위로하는 가장 위대한 것은 내자신

책 [나에게 소설은 무엇인가]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나는 작가라는 자의식 하나로 제아무리 강한 세도가나 내로라하는 잘난 사람 앞에서도 기죽을 거 없이 당당할 수 있었고, 아무리 보잘것 없는 밑바닥 인생들하고 어울려도 내가 한치도 더 잘날 거 없었으니 나는 참으로 대단한 빽을 가졌다 하겠다” 나에게 생긴 또하나의 자의식인 작가는 (고)박완서 작가님의 말처럼 좌절 직전마다 힘있게 나를 위로했다. 

“괜찮아, 지금의 감정을 넌 글로 써내면 돼”

“저사람이 글감을 던져줬잖아. 오히려 고마운걸”


글로 밥벌이를 하는 작가가 아니어서, 이렇다 할만큼 유명세가 없어서, 가끔은 나도 나를 작가라 불러도 괜찮을지 의문을 가지곤 하지만 나만큼은, 내자신 만큼은 나를 작가로 인정해줘야 할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작가라는 자의식이 잘난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끄럽지 않게 만들어줬고, 때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뭐든 배울 수 있게 해줬다. 누군가 나를 비ㅋ난할 때 예전에는 ‘나는 왜 이모양일까’하고 생각 했겠지만, 지금은 나를 비난하는 말조차 어떻게 글감으로 다듬을지 부터 생각한다. 비난은 나에 대한 참고할만한 평가나 결과가 아니라 어떤 한 개인의 생각일 뿐이라는 사실이 내가 쓴 글을 통해 자명해진다. 일기에 머무르든, 책이 되든 글을 쓰고 난 후엔 한낮의 비난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나는 더욱 작가가 되어야만 했고, 작가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는 일을 매일 마음에 새긴다. 


지금 당장 누군가를 감탄하게 할 글을 쓰지는 못하더라도 언젠가 그런 글을 써낼거라는 희망을 가진다. 희망이라는 불빛에도 불구하고 종종 어두워질 때가 많다. 나같은게 무슨 작가인가라는 생각에 나를 소개하기를 그저 회사원에 그치며 마음이 편해질 때가 많다. 회사원이라는 자아 뒤에 숨을 때 차라리 마음이 편한 것은 대단한 글을 써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안함도 잠시, 지루한 편안함이 지속되면 곧 불안이 찾아온다. 회사원으로만 살다가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곧장 편안함을 내던져버리고 꾸역꾸역 의자 골짜기에 엉덩이를 들이민다. 작가이든 아니든 이제 나는 쓰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좋은 평가를 받지 않은 글일지라도 나는 세 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나는 작가다. 점점 그 단어에 익숙해지고 있는 틀림 없는 작가가 되었다. 어느 봄날 100%의 충만한 작가라는 느낌이 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작가의 0.001%를 성실히 채운다. 살면서 작가인 나에게 수없이 자기비하의 시기가 찾아와 매일 모든 문장을 지워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의 0.1%를 포기하지 말자고 나를 토닥인다. 중요한건 100%에 가까워 지겠다는 간절함이지, 지금 10%밖에 안되는 내모습이 아니다. 100%의 작가가 되었을 때 지금 글을 읽으며 부끄럽더라도 지금 10%의 나에게 최선인 오늘을 보내면 그만이다. 

글을 쓰는 내가 나머지의 모든 내 자아들을 든든하게 만든다. 나는 계속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나는 오늘 이 감정을 글로 쓰면 되니까, 다 괜찮다.



쓰는 아도르

사진, 글 adore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dore_writing
인스타그램 : http://www.instagram.com/adore_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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