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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Oct 31. 2022

심폐소생술과 PTSD

나는 과연 그 상황에 뛰어갈 수 있을까?

약 3주 전 금요일 오후,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도와달라는 아주머니의 외침에 뛰어갔더니 이미 심정지가 온 할아버지가 바닥에 누워 계셨다고.

살면서 절대 맞닥뜨리지 않았으면 하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왜 하필 본인이 그 시간에 거길 지나갔고, 왜 하필 그 할머니는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는지 모르겠다면서.


그러면서도 자신이 CPR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 분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며 남편은 집에 와서도 계속 전전긍긍했다. 머릿속에는 이미 피부색이 바뀐 그 분 얼굴이 떠나질 않는다고 했다.


보다못한 내가 결국 구급대에 연락해서 그 분 생사만이라도 제발 알려달라 했고,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는 말에 우리가 최초 신고자에 CPR 시행자라고 지금 남편이 계속 울고 있다고 빌고 빌어서 모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는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병원 역시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 했지만 '모르시는 게 나을거다' 라는 암시를 주셨다.


순간 남편에게 이 사실을 전해야 하나... 멘붕에 빠졌다.

어떡하지? 살아서 집에 가셨다고 할까?

사실대로 알려달라는 남편에게 이야기를 전하자 남편은 한참을 엉엉 울었다.


남편은 청색증이 온 얼굴과 구급대원이 올 때 까지 계속 CPR을 했던 그 손의 감각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내가 손을 잡는 것 조차 한동안 거부했다. 지금도 거의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오죽하면 사후 경직은 언제부터 일어나는거냐고 물을 정도였으니까.


보건샘과 상담샘한테 상황을 이야기 하니, 보건샘은 일반인의 99프로가 그 상황에 119 신고라도 해주면 다행이고 대부분은 피한다며 '남편이 참 착한 사람이다, 하지만 일반인의 경우 그런 상황에서는 트라우마가 발생하니 옆에서 잘 케어하시라' 하셨다. 그리고 상담샘은 남편이 최소 2주는 계속 그 상황을 복기하면서 후회, 죄책감 등에 시달릴거라며 옆에서 쌤이 잘 다독여주라고 하셨다. 증상이 한 달 이상 진행되면 PTSD일 수 있으니 지켜보다가 나빠지면 병원에 가야 한다는 것도 알려주셨고.


첫 주에는 남편은 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고, 잠이 들어도 계속 헛소리를 했으며 갑자기 멍해지기 일쑤였다. 술과 담배가 늘었지만 딱히 방법이 없어 제지하지는 않았다.

남편은 밤마다 악몽이 계속된다고, 꿈에서 계속 그 상황이 반복된다고 했다.


그나마 삼주차에 들어서니 그래도 조금씩 증상이 나아지는 것 같아 보였다.


나 역시, 이미 고인이 되신 그 분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왜 내 남편에게 하필 그 시간에 그 일이 벌어졌을까. 괜히 화가 나고 속이 상했다.

남편은 구조요청을 듣고 그냥 지나쳤으면 더 큰 후회가 되었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달래는 중이었다.


구급대원이나 의료진들은 정말 대단하다.

우리는 한 번 이런 상황을 맞닥뜨렸는데도 이렇게 일상이 무너지는데 그 분들은 저런 상황을 계속 마주하고도 살아가고, 사람을 살리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구나 싶었다.  




29일 토요일 밤 11시 반쯤 뉴스 속보가 떴다.

이태원 압사 사고.

몇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며 80건이 넘는 구조요청이 접수되었다고 했다.


상황은 너무나도 처참했다.  

당시 KBS에서 보도하는 영상은 클럽음악이 쾅쾅 울려퍼지는 길바닥에 사람들이 누워있고 소방, 경찰, 시민들이 여기저기에서 CPR을 하는 것이었다. 영상은 블러 처리조차 되어있지 않았다.


영상을 보는 내내 이게 무슨일이지? 싶은 비현실감밖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 기괴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영화는 아닌데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거지?


SNS에는 길에 쓰러진 사람들의 사진과 영상이 고스란히 올라와 있었고 무심코 클릭한 영상과 사진들은 날 것 그대로의 이태원 참사 현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속에는 사망자가 길에 여기저기 누워 있었고, 압사 현장에서 사람들을 끌어내는 장면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상황이 궁금했지만 뉴스를 계속 보고 있을 순 없었다.

남편의 트라우마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데 이런 대형 사고를 보고나면 남편의 증상이 다시 악화될까 무서웠다. 다급히 채널을 돌리는 나에게 남편은 그냥 뉴스를 보겠다고 했다. 나는 보지말라 했지만 남편은 굳이 같이 뉴스를 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제 여보의 CPR 트라우마를 저기 있던 사람들은 다 갖게 되겠네...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니 운동장 국기계양대의 깃발들이 다 조기로 계양되어 있었다.

주말 내내 반별로 학생들 현황조사를 했고, 부장 샘들은 부서 샘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우리 학교에는 피해자가 없었지만 지역 단톡방에 올해 임용되신 선생님이 사망하셨다는 이야기 등등이 올라오는 것을 보며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간 공부하느라 못 놀았던 것을 이제부터 즐기자 해서 이태원에 간 것일텐데 그리 되셨다니...


너무 허무했다.


학교에서는 교직원들에게 년 1회 의무적으로 심폐소생술 교육을 한다.  

3시간짜리 교육인데 이 교육은 절대 대충 하지 않는다.

교육이 끝나면 땀이 뻘뻘 나고 다음날엔 근육통에 시달릴 정도니까.


심폐소생술 시행 시 체중을 다 실어서 힘껏 압박해야 하고 1초에 2회씩 숨이 돌아올 때 까지(또는 구급대원이 올 때 까지) 진행해야 하는데 그렇게 해도 골든타임(4분) 안에 CPR을 한게 아니라면 사망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한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도 의료진이나 군대 갔다온 친구들 중에 CPR 할줄 아는 사람들은 빨리 도와달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왔다. 그 얘기에 사람들이 뛰어가는 모습도 뉴스 영상에 나왔고.


그런데 매 해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았다 한들 내가 만약 도와달라는 외침을 들었다면 남편처럼, 또는 현장에 뛰어들던 사람들처럼 나도 기꺼이 뛰어갈 수 있을까?

아마 못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참사 현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일단 사람을 살리고 보겠다는 생각으로 달려들어 CPR을 하는 장면이 여기저기 나왔다. 그러나 좁은 공간에서 벌어진 사고라 구조에 시간이 너무 걸렸고 그 장소에서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봐야만 했던 사람들의 트라우마가 걱정된다. 남편은 지금까지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데 저런 대형 참사를 목격한 사람들의 트라우마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PTSD 증상이 심해지면 정신과에서는 약물을 처방한다고 한다. 상황을 너무 견디기 힘들면 약을 먹으면 그 순간은 드라마틱하게 나아진다고. 물론 임시방편이다. 약을 복용하면서 서서히 시간이 지나고 증세가 나아지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증상은 단기에 나아질 수도 있지만 길어지면 몇십년도 간다고 했다. 그만큼 충격에 의한 트라우마는 무서운 것이었다.


이태원 참사를 겪은 사람들의 트라우마는 얼마나 가게 될까.

길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지만 그렇게 충격적인 사건이 쉽게 잊혀질까.

남편의 트라우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데...




언론에서는 가급적 이태원 관련 영상이나 사진 등을 찾아보지 말라는 PTSD 주의보가 발령중이지만 이미 해당 사고 시점에 현장에 있었던 사람도 엄청나게 많았고, 당시 여과되지 않은 영상과 사진에 노출된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나 역시 그날 밤 떠돌던 그 영상들과 사진들에 의해 받은 충격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중이니까.


뉴스를 보고 울고 있는 나에게 남편은 본인에게 일이 생겼다고 할 때 내가 공감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더니 이제 좀 이해가 되냐고 한다. (그 때도 같이 울었는데! 남편은 내가 ISTP라 공감능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아이러니 한 것은 사람은 자기 일이 되어봐야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라는 점. 아무리 위로하고 곁에 있어주고 하지만 당사자가 아니면 온전히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참 힘든 부분이다. 공감과 이해와 위로라는 것이. 슬프지만 내 진심어린 위로도 당시에  남편에게 별 도움은 안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일이 터진 이 시점에 나의 위로와 진심은 아무 도움이 되지않을 것 같아 너무 무기력하다.


남편에게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남편이 볼까봐 우려스러워 섣불리 글을 쓰지도 못했다. 남편의 트라우마가 사그러들 때 쯤 이런 일이 있었노라 작성할까 몇 문장 끄적거려 서랍에 넣어둔 이야기였는데 이렇게 대형사고 때문에 끄집어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한편으로는 안온하고 지루한 일상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그 끔찍한 현장 속과 밖의 사람들의 트라우마가 오래지 않기를, 그리고 다시는 이런 사고가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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