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살다 간 인생
나의 영원한 강아지 '해피'는 오래오래 살았다. 장례를 모두 마치고 나중에 정신이 들어 들춰본 '화장증명서'에는 사망신고로 주민등록 말소를 알리듯 딱딱한 글씨로 해피의 죽음을 명명하고 있었다. 사망원인은 자연사. 한 달 전, 병원에서 '간암'인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무엇이 해피의 숨을 끊었는지는 모르나 우리에게는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도 해피는 오랜 세월을 충분히 살았기에 '자연사'가 마땅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고 화장을 하기 전, 염습하는 과정을 가족 모두가 지켜보았다. 강아지를 깨끗하게 닦아주고 속옷을 입혀주는 것이었다. 미처 닦아주지 못한 해피의 눈물을, 마지막 가는 길에 흘려 보낸 오물을 우리 대신 장례지도사님이 정성껏 지워주셨다. 이 세상에서 나쁜 것은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는 듯 아주 정성 들여서 온몸을 구석구석 닦아주셨다. 털은 아직도 곱디 고았다. 장례지도사님은 해피의 나이를 보시고서는 가지고 태어난 생은 아낌없이 살다 간 것 같다며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주셨다. 하지만 나는 해피가 화장 후 한 줌도 아닌 한 꼬집의 재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을 때까지도 인정할 수 없었다. 해피는 분명 몇 주전만 해도 늙었지만 건강한 강아지였으니까. 생명의 끝이 그렇게 갑작스러울 수는 없었다.
오래 살다 갔네 다행이야
나는 해피를 떠나보낸 후 그다음 날 연차를 썼다. 강아지를 키우셨던 대표님은 연차 사유에 대해 적당한 이해와 위로를 건네주셨다. "그래도 18년이면 원 없이 살다 갔네요. 하루 푹 쉬고 와요" 대표님은 위로를 주려고 한 말씀이셨겠지만 또다시 내 안의 응어리가 건드려졌다. '18년은 정말 해피에게 충분한 시간이었을까'라는 생각은 슬퍼할 새도 없이 죄책감으로 빠지게 만들었다.
해피가 떠나기 1년 전쯤, 나는 가족들에게 대뜸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선포했다. 가족들은 모두 해피가 떠난 후에 천천히 생각해 보자며 나를 말렸다. 하지만 나의 집착스러운 고집으로 결국 고양이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그 결정을 지금도 후회하진 않지만 해피를 떠나보낸 후에는 미안함이 한 번에 파도처럼 밀려왔다. 마지막 순간인지도 모르고 그 소중한 마지막 1년을 해피보다 고양이를 바라보며 살았다. 마치 오랫동안 함께한 연인의 죽음 앞에서 바람피우는 꼴이었다.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 마지막 1년을 해피는 어떻게 기억할까. 혹여나 그 시간에 나의 오랜 사랑의 이정표가 바뀌었다고 생각했을까. 그 슬픔은 해피의 시간을 더욱 단축시키지는 않았을까. 언제나 이별에 서툰 내가 그 오랜 사랑의 마지막을 망쳤다는 생각에 한 동안 속절없이 우울감에 빠져있었다.
해피가 떠나기 한 달 전쯤, 정기검진을 받은 언니가 집에 와서 펑펑 울었다. 초음파와 피검사 결과 아무래도 '간암'인 것 같다는 판정. 그리고 이제는 나이가 있으니 길면 6개월일 거라는 의사소견. 그래서 언니는 그날 하루종일 해피를 붙들고 울었다. 그때였을까. 감정을 통해 해피는 자신에게 곧 닥칠 미래를 알아차린 걸까. 해피는 그날 이후로 급격히 상태가 악화되었다.
자고 일어나면 갑자기 절뚝거리고 어느 순간 대소변을 못 가리고 그러다 갑자기 쓰러지는 날들이 18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게 신기할 정도로 한 번에 해피에게 몰아쳤다. 해피의 마지막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 가족들은 대책 회의에 들어갔다. 마지막을 어떻게 해야 할까 장례식장을 알아보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가족들이 등 떠밀어서 가듯 해피는 급하게 무지개다리를 훌쩍 넘어버렸다.
나는 뭐가 그리 급해서 너의 마지막 1년을 기다려주지 못했을까.
너는 뭐가 그리 급해서 제대로 인사도 없이 떠나버렸을까.
뭐가 그리 급해서 우리는 이별을 준비 없이 했을까.
나는 해피의 시간이 충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헤어짐에도 충분함은 있을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