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도착했다. 이번 이베리아 여행의 일정은 포르투갈 포르토로 입국해서 리스본, 세비야, 그라나다, 말라가를 거쳐 바르셀로나로 출국하는 것이었는데 두 국가 모두 직행 비행기가 없어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서 경유를 해야 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잔뜩 흐린 날씨 탓에 바깥은 아직 어두컴컴했고 공항의 분위기가 제법 스산하게 느껴졌다.
스키폴 공항은 보안에 철저한 편으로 보였다. 환승객을 대상으로 짐검사를 다시 하고, 여권 심사도 진행했다. 경유 시간이 1시간 40분 정도로 꽤 촉박했던 터라 긴 여권 심사 줄을 보고 기겁을 했으나 비행기 시간이 임박한 승객은 다른 줄로 따로 빼 주시길래 얼른 심사를 마치고 나와 게이트를 찾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모든 공항마다 돌아가는 방식이 다른 게 신기했다.
여행이라는 게 어쩌면 그런 매력이 있다. 새로운 공항, 새로운 숙박 장소, 새로운 여행지에 갈 때마다 그 공간의 룰을 새로 익혀야 한다. 새로 적응하는 과정이 나쁘지 않다. 어느 순간부터 인생의 모든 것이 익숙하고 편안해 지겹기만 했으니까. 낯설다는 감정을 마냥 회피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 해본 것이 새로 생길수록 좋았다. 내가 모르는 세상의 얼굴을 더욱 세밀하게 관찰하고 그려 나가고 싶었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우려했던 것은 기나긴 비행시간이었다. 나이 앞에 3자를 단 순간부터 모든 것이 나이 탓 같긴 하지만, 허리만큼은 정말 20대와 심각하리만치 달랐다. 이제 2, 3시간을 걷는 것은 물론 그 시간만큼 앉아만 있어도 허리가 아파서 참기 힘들었다. 가방 속에는 허리 통증에 잘 듣는 진통제를 한가득 챙겨 놓았지만 그래도 안심되지는 않았다.
또 하나 걱정되는 건 답답함이었다. 체크인 때부터 비행기가 만석이라는 얘기를 듣고 답답한 마음은 한층 가중되었다. 그 작은 이코노미 좌석에 몸을 구겨 넣고 14시간을 버티는 생각만으로도 온몸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가끔 온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하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차마 설명하기 어려운 초조하고 불안한 감정에 눈앞이 까마득해지곤 했는데 이번 비행에서도 그러면 어쩌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어야 했다.
전에 한 번 심하게 겪었던 멀미도 걱정이었다. 난기류가 나를 도와줄까? 누구를 원망하고 또 어디를 향해 기도해야 할지 몰라 탑승 게이트가 열리기 전까지 공항 한편에 자리를 잡고 스트레칭만 계속할 뿐이었다. 나이가 드니 확실히 여행을 하기가 어려워지는구나. 왜 삶을 살아갈수록 모든 게 쉬워지기만 하는 건 아닐까. 어떤 장벽은 왜 높아지기만 할까, 한숨을 쉬었다.
막상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은 금방 갔다. 화장실 근처 복도 쪽 자리를 잡았더니 그렇게 답답하지 않았다. 다행히 옆자리에는 체구가 작은 여성분이 타고 있었고, 앞에 앉은 남자분도 그렇게까지 심하게 의자를 뒤로 젖히지는 않았다. 이륙 직후 제공되는 저녁을 먹고 다른 사람의 뒤통수에 달린 작은 화면에서 <미이라2> 같은 옛날 영화를 보고 있으니 솔솔 잠이 왔다. 새벽에 잠시 깨서 화장실 앞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다시 잠들었다가 일어나니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도착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환승, 얼마 지나지 않아 탑승이 시작됐다. 탑승권을 스캔하고 게이트를 통과한 후에 계단을 내려가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이동한 끝에 비행기에 올라탈 수 있었다. 비행기는 좌석 두 개씩 나란히 두 줄로 배치되어 있는 아주 작은 비행기였다. 세상에 이렇게 작은 비행기는 처음 봤다. 이런 걸 타고 3시간을 다시 이동해야 한다니, 이거 안전한 건가? 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비행은 탑승객 대비 좌석에 여유가 있었다. 옆자리에는 나보다 좀 더 큰 덩치를 가진 남성 분이 탔지만 이내 그는 머리를 앞 좌석에 박고 잠이 들었다. 어쩐지 답답하기보다는 안락한 기분이 들었다. 왼쪽 창가에서는 색다른 하늘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고 조용히 다운 받아 놓은 노래를 들으며 비행기의 커다란 소음과 잦은 진동을 느끼는 게 나쁘지 않았다. 드디어 여행에 대한 걱정보다 설렘이 앞서면서 멈춰 있던 것 같던 심장이 간헐적으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