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놓치는 꿈

by 이재리

망했다. 이번에도 시간 계산에 실패했다. 일부러 계획보다 더 일찍 기차를 타고 올라왔음에도 그랬다. 공항이란 곳은 도대체가 왜 매번 이런 식인지. 공항으로 이동하는 공항철도 안에서 다리를 위아래로 덜덜 떨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해도 10시 안에 인천공항 제2 터미널 3층에 위치한 은행에 도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온라인 환전 신청한 400유로를 그대로 날리게 생겼다.


대체 그 돈을 못 찾으면 어디서 현금을 갖고 포르투갈까지 날아가야 한단 말인가.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서 당장 음료수라도 사 마시고 싶으면 나는 그곳에서 구걸이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절망적이었다. 얼른 은행에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마자 가벼운 인사를 던지고는 본론부터 꺼냈다.


“아, 다름이 아니라 제가 오늘 온라인 환전한 돈을 수령하기로 했는데, 10시까지는 도착을 못할 것 같아서요. 어떡하죠? 한 15분 정도만 기다려 주실 수는 없나요?”

“고객님 수령 신청하신 지점이 인천공항 제2터미널점이신가요?

전화 속의 누군가는 잠시 옆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과 몇 마디를 나누더니 그 사람에게 수화기를 넘겼다.

“네, 고객님 안녕하세요. 혹시 비행기 시간이 어떻게 되세요?”

“새벽 1시쯤이요.”

“아, 그러면 시간이 조금 여유가 있으시니까요. 인천공항 제1터미널에 가시면 24시간 영업하는 저희 은행 지점이 있거든요. 거기서 먼저 온라인 환전하신 돈을 수령하시고 다시 제2터미널로 오시면 될 것 같아요.”

“수령 지점을 제2터미널로 했는데 1 터미널 가서 찾아도 괜찮나요?”

“네, 고객님. 교차수령 가능하세요. 가셔서 저희랑 통화했다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안도감에 깊은숨이 쉬어졌다. 그래, 일찍 나와서 역시 좋은 점이 있지. 이럴 줄 알았어. 이래서 내가 이제 공항 올 때는 오버스러우리만치 일찍 나오는 거잖아. 공항이란 곳은 도대체가 예측을 할 수가 없다니까. 공항으로 가는 열차의 문 위에 달린 전광판에서는 이제 곧 김포공항에 도착한다는 화려한 화면이 지나가고 있었다.


요즘 말로 나는 J 98%의 인간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 어느 말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더 쉽게 이해한다. 10년, 20년이 지나도 통용될 수 있는 문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런 계획형 인간인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장소가 바로 공항이다. 공항에서의 시간을 계획하기란 일반 여행에서의 시간을 계획하기보다 훨씬 어렵다. 일단 공항은 그 규모와 수용 인원이 방대해서 시간을 대략적으로라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분명 공항에 비행기 출발 3시간 전에 도착하는 것으로 일정을 모두 짜 놓아도 늘 중간에서 일이 꼬이고 막상 도착해서는 비행기를 놓칠까 봐 허겁지겁 달리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공항에 가는 길은 언제나 초조하고 불안하다. 체크인 줄이 얼마나 길지 예상할 수 없고, 짐 검사를 통과하는데 얼마나 오래 걸릴지, 출국심사장에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면세품 인도장은 또 어떨지, 게이트는 얼마나 멀리 있을지 이 모든 게 예측 불가능이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놓칠까 지나치게 걱정하는 버릇은 태어날 때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도 처음 공항에 왔을 땐 감탄에 감탄을 더하기 바빴다. ‘와, 왜 이렇게 커?’ 인간은 거대한 스케일, 즉 그 크기와 규모가 너무 클 때 다름 아닌 경외감을 느낀다고 한다더니 사실이구나.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건축물 중에 이렇게 커다란 것은 없었다. 그래서 인천공항을 처음 왔던 날은 미어캣이 부럽지 않게 목을 빼고 사방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몇 번이나 비행기를 놓칠 뻔했다. 처음 유럽 여행을 가기 위해 인천 공항을 왔을 때부터가 그랬다. 분명 그때만 해도 공항에 사람이 넘치도록 많지는 않았을 때라 비행기 출발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나 또한 비행기 출발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했지만 공항 구조가 낯설어 한참을 헤맸다. 체크인 카운터도, 출국장도 공항을 뺑뺑 돌아가며 겨우 찾아다녔다.


게다가 체크인 수속을 겨우 마치고 받은 탑승권엔 비행기 탑승 시간이 출발 시간보다 30분은 이르게 적혀 있었다. 어지러웠다. 모든 곳의 줄이 길었고, 겨우 출국 심사를 마치고 나왔으나 게이트까지는 또다시 모노레일을 타고 가야 했다. 모노레일을 기다리는데 또 5분이 지났고, 모노레일을 타고 내리니 시계는 26분을 말하고 있었다. 탑승 마감 시간이 30분인데.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런데도 온라인 면세점에서 구매한 면세품을 찾아야겠다 싶어서 미친 듯이 공항을 뛰어다녔다. 그러다 한 공항직원분에게 붙잡혀 혼난 후에 겨우 마지막으로 탑승할 수 있었다.


일본 여행을 떠나는 길에도 비슷한 일은 벌어졌다. 일전의 일을 교훈 삼아 분명 비행기 시간보다 4시간은 일찍 나왔는데 공항철도를 타러 서울역으로 가는 길이 꽉꽉 막혀서 버스가 움직이질 않았다. 마음은 급하고 시간은 빠르게도 흐르는데 버스가 움직이질 않으니 걸어서 뛰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괜찮겠지, 아직 3시간 남았으니 괜찮겠지, 스스로를 달래 가며 겨우 서울역에 도착해서 뛰어서 열차에 탔다. 반쯤 기도하며 공항철도를 타고 흘러 공항에 도착해 다시 카운터까지 뛰었고 결국 마지막으로 체크인할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 비상구를 앉는 행운까지 받아가며.


그러나 바로 그 여행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놓쳐버렸다. 이건 정말 할 말이 없게도 그 전날 여행에서 만난 친구들과 너무 기분 좋게 술을 마시다 새벽 4시에 짐을 싸러 가야겠다며 올라가 그대로 뻗어버려 다음날 오후 12시가 넘어서 일어난 탓이었다. 비행기는 오전 11시였는데 말이다. 그러나 비행기를 놓쳤다는 충격은 컸고 항공사에 전화를 하고 이전에 예약한 왕복 비행기 값보다 비싼 돈을 주고 돌아가는 편도 비행기를 끊었으니 잊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여전히 스트레스와 압박에 시달릴 때면 종종 비행기를 놓치는 꿈을 꾼다. 정확히 말하면 비행기를 놓칠까 봐 에스컬레이터에서, 공항철도 안에서 전전긍긍하는 꿈을 꾼다. 솔직히 말하면 큰 압박이 없어도 종종 꾼다. 그래도 이제는 어디든 항상 미리미리 출발해서 느긋하게 가는 편이다. 늦을까 봐 걱정하는 동안 겪을 불안과 초조, 그 스트레스가 너무 싫어서 선택한 내 삶의 방식이다. 혹여 더 기다리더라도 마음 편하게 가자. 한두 시간 일찍 가서 잃은 건 별로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남는 시간엔 사람들 구경도 하고, 사진 정리도 하고, 돌아온 길을 되돌아봐도 좋으니까.


처음 가본 인천 공항 제2터미널. 이렇게 사람이 없는 건 처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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