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갇혔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정확히는 이 거지 같고 빌어먹을 인생에 갇혔다는 생각을 했다.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런 생각은 한번 들고나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발전한다. 확증 편향이라고 다들 들어봤겠지. 인간은 자신이 확신하는 대로 생각한다. 나라고 다를 리가 있나.
3년 전부터는 아비투스에 사로잡혔다. 결국 인간이 가진 취향과 생각은 그가 속한 계급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문장이 뇌 한구석에 깊숙이 박혀 뺄 수 없게 되었다. 아쉬운 일이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세상의 관념에 젖지 않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러한 노력조차도 관념 안에 속해 있었으니 말이다. 30년 넘게 다른 사람과는 구별되는 사고를 하고 취향을 갖기 위해 구구절절히도 노력했으나 결국 나는 특별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니라고 애써 부정한 게 또다시 몇 년. 결국 유튜브 알고리즘에 지배당하는 나를 발견한 어느 날 더 이상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애쓴다고 애쓰며 살아온 내 삶의 궤적은 남다르지 않았다. 나 또한 남들과 똑같은 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왜, 무엇을 위해 그리는지 그 무엇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말이다.
그러고 나니 문득 내 스스로가 낯설었다.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이지? 생각해 보면 내 자신에 대해 심도 있게 고려해 본 적이 많지 않았다. 그저 내가 가진 욕망과 불안을 채우는 데 급급했다. 명확하게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삶의 목적과 방향성을 갖고 있는지 그것이 옳은 지 그른 지에 대해서 내 스스로 사고한 적이 없었다. 으레 사람들이 박수 쳐주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그들의 격려에 춤을 췄을 뿐이다.
그래서 찾고 싶었다. 본래의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속성과 특징으로 이루어진 집합체인지. 내가 가진 문화적 자본을 차치해 두고,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어떤 것으로부터 도망쳐 나와 온전한 내 시야로 바라보고 온전한 내 사고로 생각하고 싶었다. 그게 가능한 일인지, 아니면 결국 모든 인간은 평생 그들의 상상의 벽 안에 갇혀 살아야 하는 운명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최대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단절된 나만의 여행을 계획했다. 낯선 공간과 문화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으며 온전히 나만의 감정을 명확히 느끼고 내 나름의 신념을 쌓고 싶었다. 내 기본적인 취향을 모두 재확인하고, 기존의 믿음을 의심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인생에 한 번쯤은 그런 시간을 가져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정확히는 그런 시간이 내게는 반드시 필요했다.
여기까지 쓰고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바라봤다. 열차는 곧 양동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청량리 역까지 대략 30분 정도가 남았다. 여행의 시작은 기다림이었다. 여행지에 도착하기까지 긴히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견뎌야 했다. 열차를 타고 서울로,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공항 제2터미널로, 여기서 비행기를 타고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으로, 다시 환승을 해야 비로소 첫 여행지인 포르투갈의 도시 포르토에 도착한다.
약 2주간의 여정이 내게 어떤 것을 남겨줄 수 있을까. 나에게 집중하는 법을 터득하고, 내 자신과 더욱 친해져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러고 나면 이 세상살이가 조금은 더 수월해질까. 많은 물음이 피어올랐다. 사실 기대보다는 걱정과 피곤함의 앞섰다. 당장 14시간의 비행을 이코노미 그 작은 좌석에 앉아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막막했다. 이게 30대의 여행인가.
부디 바라는 한 가지는, 내 좀먹은 체력이 나의 사고를 정지시키지 않는 것이다. 지난 한 달 동안 열심히 체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했다. 하루에 한 시간은 운동하려고 애썼다. 그게 수영이든 러닝이든 열심히 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근육이 놀래서 담이 들거나 운동하기 전보다 더 지쳐 침대 신세를 지거나 했기 때문에 염려가 됐다. 집을 나서기 직전 실시한 20분짜리의 짧은 스트레칭에도 다리를 후들거리며 떨고 있다. 이렇게 비루한 모습으로 일단 출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