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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리 Mar 06. 2024

시험이 끝나고 난 뒤

   시험이 끝난 후 가장 먼저 생긴 변화는 드디어 그토록 갖고 싶던 차가 생긴 것이었다.

   “내가 너 이번에 합격하면 중고차 한 대 사 줄게.”

   아빠는 회사도 그만두고 방 안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는 딸이 걱정이 됐던 모양인지, 자꾸 차로 사람을 꼬셨다. 일종의 동기부여 방식인지도 모르겠으나, 어쨌든 효과는 굉장했다.


   “그래서 무슨 차 사줄 건데? 나는 말리부가 좋은데.”

   최종 합격을 알리고 나서 생긴 잠깐의 정적을 틈타 나는 놓치지 않고 물었다. 아빠는 크게 웃더니 일단 알겠다고 기다려보라고 했다.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와서 그 차는 중고차 값도 그렇게 싸지 않으니 그럴 거면 그냥 새 차를 한 대 해주겠다고 말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시험을 보러 다닐 때마다 온갖 대중교통수단을 다 이용해 가며 고생했던 기억들이 머리에 스쳤다. 훨씬 더 이른 시간에 준비를 시작하고 버스와 기차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던 순간들이. 내가 차만 있었어도, 이렇게까지 고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싶었던 날들이.




   그런 말들이 없었다면 이렇게 끝까지 공부하고, 목표를 이뤄낼 수 있었을까 의문스러웠다. 맨 처음 공부를 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주변 사람들이 해줬던 응원의 말들을 잊지 않았다. 너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너만큼은 더 좋은 길을 가라고 진심을 담아 해 줬던 그 말들을, 나보다 더 나를 믿어준 사람들을. 평생 잊고 싶지 않을 것 같다.


   흔들리는 순간은 많았다. 다른 친구들의 좋은 소식이나, 전에 있던 회사 동기들이 승진한 소식 등을 듣는 순간마다 내 선택이 과연 옳았을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나는 다른 세상으로 가고 싶었다. 그게 도피일지 도전일지는 해보고 나서 결정하고 싶었다.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원래 다 이래, 인생이라는 게 별거 있어? 하면 스스로 위로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누군가는 그게 쉬울 수도 있고, 현실 자체에 만족할 수도 있지만 나는 좀처럼 그게 되지 않았으므로.


   내가 원하는 세상에 가려면 반드시 이 과정이 필요했다. 다른 사람들의 응원, 다른 세계에 대한 열망 이 두 가지로 버틸 수 있었다. 수많은 걱정과 고민이 머릿속에 차오르더라고 과감히 고개를 젓고 내가 가던 길을 갈 수 있었다. 그들에게 감사하고 노력한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차 키를 들어 올리며 엄마에게 물었다. 차를 구매한 지 채 일주일이 되지 않아 집 지하 주차장으로 차가 들어섰다. 그다음부터 엄마와 나는 매일 어디를 갈지를 고민하며 최대한 차와 사람이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 만한 것이 있는 길을 골랐다. 운전면허를 따고 거의 10년 만의 자차를 갖게 되고 운전을 하게 됐으므로 운전 연습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내 옆에 탄 엄마도 잔뜩 긴장해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도 했다. 너무 느리게 가는 경우는 다반사였고, 횡단보도에 사람을 못 보기도, 신호를 놓치기도 하는 등 위험한 순간들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연습을 하면 할수록 모든 방면에서 나아지는 게 느껴졌다. 주차마저 쉽게 하게 되는 날이 분명히 왔다. 모든 연습과 그에 따른 성취, ‘성공 경험’은 중요한 것이라는 걸 느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또다시 비슷한 결정의 순간이 온다면 이 ‘성공 경험’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또 다른 도전을 하게 될 때에도 참고하고, 덜 주저하고,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것도. 사실 이 성공했다는 경험 자체만으로 더 나은 인생을 갖게 됐다는 기분이 들었다.


   ‘더 나은 인생’

   그걸 위해 나아가는 길이 결코 쉽지만은 않지만, 한번 해볼 만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쉽지 않은 삶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 있는 것들이 있음을 상기하며. 인생의 다음 단계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자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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