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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성 Apr 22. 2019

사랑은 간청해선 안 됩니다

정말, 돌이켜보면 늘 그랬다

늘 느닷없었다. 어쩌면 순간이었다. 마음은 갑자기 생겼다가 내내 어쩔 줄 모르게 만들었다. 만날 때마다 몇 가지 단어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머리가 좀 복잡해졌다. “반했다”와 “좋아한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지금은 반한 걸까, 좋아하는 걸까? “좋아합니다”와 “사귀어주세요”라는 말은 또 얼마나 다를까? 


“좋아합니다”라고 말했는데, “저는 아닌데요”라는 대답을 들었을 때의 마음은 또 어떨까?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사귄다”는 말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관계와 단어 사이의 거리가 너무너무 멀어 보였다. 관계는 흐르는데 단어는 자르는 것 같았다. 


이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진다는 건 아주 명백하게 부정적인 신호였다. 그 관계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좋았던 관계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뤄졌다. 마음은 계산할 틈도 없이 통했다. 고민은 잘 안 될 사이에서만 주로 생겼다. 이건 아주 개인적인 통계, 마음과 머리가 들려주는 정직한 조언이기도 했다. 내가 누군가를 크게 좋아한다고 해서, 그 마음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어쩌면 사랑을 둘러싼 거의 모든 괴로움이 이 괴리에서 왔다. 


시작은 아주 작고 세세한 호감이었을 것이다. 경쾌한 걸음걸이, 곤란함을 돌파하는 태도, 수저를 다루는 기품 같은 것. 그 결과치가 쌓이고 쌓여서 결국 거대해진 마음이었다. 커진 마음은 곧 관대해졌다. ‘이런 점은 좋고 저런 점을 별로’라고 생각할 수 있는 단계를 무심하게 지나버렸다. 이성이 희미해졌다는 뜻이다.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 감정의 정체를 조금 더 상세히 알고 싶었다. 친구는 말했다. 


“복잡할 거 없어. 그냥 좋은 거지 뭐. 좋아한다고 말해. 데이트하자고 해.”
 “거절당하면?”
 “어쩔 수 없지, 뭐.”


과연 옳은 말이었다. 관계의 시작과 마무리가 저 안에 다 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주저하고 있었다. 이런 마음이야 몇 번이고 왔다 가는 거니까. 스스로를 믿을 수 없기도 했다. 괜히 거절당하고 싶지 않았다. 행동에는 확신이 필요했다. 


그날의 온도가 아직 생생하다. 초여름 혹은 늦봄의 밤이었다. 아마 6월이었다. 근처에 왔다는 연락이었는지, 뭘 빌려주러 나가던 길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예정에 없던 만남이었고, 너무 바빠서 분초를 다투는 와중이었다. 하지만 메시지를 받고 로비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내 머릿속엔 갑자기 예쁜 공원이 갑자기 생긴 것 같았다. 사무실에서 받던 스트레스, 거기서 쓰던 원고의 실마리 같은 건 다 사라진 공백이었다. 한적하고 산뜻한 마음으로 흰색 강아지처럼 그랬다. 아주 잠깐이라도 같이 있고 싶었다. 


“아이스크림 먹을래? 커피?”


역시, 돌이켜보면 느닷없었다. 우린 그럴 사이가 아니었다. 용건을 마치고 건조하게 돌아서는 게 어울리는 사이였다. 그래서 들은 대답은 완곡한 거절이었다. 


 “오늘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어요. 좀 서늘하기도 하고.”
 “그럼 버스? 잠깐 정류장까지 걸을까?”
 “네! 좋아요.”


마음을 다 빼앗긴 상태에선 아주 작은 긍정도 기뻤다. 순간의 표정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됐다. 그 표정이 미소에 가까웠는지 웃음에 가까웠는지, 어쨌든 그냥 예의는 아니었는지를 몇 번이고 곱씹기도 한다. 그러니 누굴 혼자서 좋아한다는 건 대체로 피곤하고 고된 마음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사소하게 의미를 부여하면서 셈이 늘어간다는 건 아주 부정적인 신호였다. 냉정한 망조였다. 


그날의 기억은 지나치게 서정적이었다. 6월의 밤공기, 머리카락, 갑자기 좋은 냄새, 옆모습, 맨살의 풍경들이 도장처럼 찍혀버렸다. 순정만화 같은 풍경이었고, 휩쓸려 버린 마음이었다. 고백했고, 거절당했다. 소설 <데미안>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사랑은 간청해서는 안 돼요.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사랑은, 그 자체 안에서 확신에 이르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더 이상 끌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끕니다.”


지나고 보면 담백해지는 것만이 중요했다. 산책은 산책일 뿐이라서, 그 짧은 시간의 모든 자극에 마음을 다 빼앗겼다 해도. 혼자서 부풀린 마음은 혼자만의 것이라는 걸 그땐 몰랐다. 모든 고백이 선물은 아니니까, 적잖이 당황했다는 얘기는 나중에 들었다. 


“싫지 않았어요. 그렇게 얘기해줬을 때 나, 좋았던 것 같아요. 근데 이래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은 했어요. 괜찮은 관계일까.”


좋은 관계에 조건이라는 게 있다면 그건 오로지 평화일 거라고 자주 생각한다. 가만히 흐르는 강처럼 자연스럽고 혼자 있는 일요일 오후처럼 밋밋한 사이. 이런저런 계산으로 복잡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화하거나 침묵할 수 있는 관계. 간혹 권태라는 단어를 발견하는 주말에는 그저 맛있는 저녁을 같이 만들어 먹는 식으로 다시 웃는 시간 같은 것. 


하지만 나는 내일도 흔들리겠지. 이러다 갑자기 만나는 서정적인 밤, 혼자서 속절없이 휩쓸리겠지. 다시 거대해지는 마음을 바라보면서 “모든 사랑이 시작부터 평화로운 건 아니잖아?” 다시 한번 고백하겠지.


글, 사진/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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