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우성 Sep 27. 2021

그동안의 일

벌써 1년 반.

마지막 글이 2020년 3월이었다. 2019년 겨울 코사무이에서 2주 동안 머물면서 하루에 몇 시간씩 요가 수련을 하던 날의 이야기를 <스타일 H>에 기고했었다. 한국이 아닌 곳에서 머물렀던 마지막 기억이었고, 행복의 비밀을 조금 엿본 것 같은 시간이었다. 일상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타진해봤던 여행이기도 했다. 이후 1년 반을 아무말 없이 보냈다.


2020년은 팬데믹의 시작이었다. 2021년 추석을 지난 지금은 역대 최고 확진자 수 기록을 다시 썼다. 2020년 12월, 우리가 결혼하던 날은 확진자 수가 최초로 1천 명을 넘었다. 결혼식 하루 전날까지 모두에게 전화를 돌렸다. 오지 않으셔도 괜찮다고. 부담은 갖지 않으셔도 좋다고. 마음만으로도 감사드린다고 한 명 한 명 말씀드리려고.


"우리 둘이랑 가족만 있으면 충분해. 이미 행복해."


우리는 결혼식 하루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결혼식 당일에는 새벽부터 함박눈이 내렸다. 오는대로 쌓이는 눈이 신부화장을 마치고 식장으로 향하는 순간까지 그치지 않았다. 하객이 모이는 순간에도 펑펑 참 풍성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손님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민폐일 게 분명한 결혼식이었는데, 우리를 축하해주러 온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서 좋은 웃음을 보았다.


"결혼식 날 눈이 내리면 '대박'이래! 도대체 얼마나 잘 살려고 그러는 거야?"


식장에는 들어올 수 없는 사람도 많았다. 식당에도 인원이 제한돼 있었다. 물론 악수도 못 했다. 얼굴만 겨우 보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상황에서도 저 한 마디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우리 요가 선생님, 프리야 선생님의 아름다운 주례사는 요즘도 매일 생각한다. 내 친구 성빈이는 좀처럼 떠는 일이 없는 담대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긴장하는 얼굴을 우리 결혼식에서 처음 봤다. 아낌 없는 축하와 덕담을 건내던 예쁜 사람들. 고마운 사람들.


놀랍게 우리를 닮은 알레산드로 멘디니 와인 오프너


2021년은 많은 것이 달라졌고,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고,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변한 것은 일상, 살아남은 것은 사업, 변하지 않은 것은 사랑이었다.


혼자일 때의 일상과 둘이 된 후의 루틴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나는 늦게 자는 사람에서 일찍 일어나는 사람으로 변했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는 일은 매일의 도전이 되었다. 요즘은 12시 경에 잠들어 5시 경에 일어나는 도전을 매일 한다. 대부분 실패한다. 실제로 일어나는 시간은 6시 정도.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내 회사, 더파크(https://www.youtube.com/c/더파크tv)는 주 2회 업로드를 루틴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조금 더 바빠졌지만 곧 구독자 1만 명이 될 것 같다. 여전히 자동차를 주로 다루고 간간이 내가 읽은 책을 리뷰했다. 가설을 세우고 행동으로 검증하면서 빠르게 변화하는 것. 앞으로는 이 과정을 조금 더 빠르게 적용해볼 생각이다.


다른 채널들에 비해서 성장이 느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천천히 성장하면서 좋은 분들이 구독자로 모이고 있다는 확신이 있다. 그게 중요하다. 그래야 좋은 취향과 태도를 다룰 수 있다. 그런 미디어가 되고 싶어. 그 생각만은 변하지 않았다.




오늘 오후에는 <수트 suits> 시즌 9의 마지막 편을 보았다. 루이스와 실라가 결혼식과 동시에 딸을 출산하고, 같은 결혼식장에서 하비와 도나가 결혼했다. 그 두 장면이 교차 편집되면서 깔렸던 내래이션이 좋았다.


"Love is a terrifying thing. It’s not safe. Because when you love someone, you have to face the fact that you can lose them."


"사랑은 무서운 거야. 안전하지 않아. 누군가를 사랑하면, 언젠가 그들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과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야."


주례는 스탠 립시츠 선생, 언젠가부터 모두의 친구가 된 멋진 정신과 전문의


매일 직면하고 있다. 사랑의 다양한 얼굴과는 매 순간 새롭게 인사한다. 허투루 피하고 싶은 건 아무 것도 없다. 마주하고, 직면하고, 바라보고, 알아차리면서 조금씩 깊어지는 일. 사랑의 진짜 얼굴에서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매일 조금씩 더 아끼는 일.


그렇게 성장하고 있다.


믿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제의 꿈, 조금 더 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