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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마틴 Jul 05. 2021

이상형 조언해주다가 사귀게 되었습니다.

와이프라 쓰고 룸메이트로 읽습니다 - ①


이 쪽으로 잠깐 와주시면 안돼요?


2018년 2월 초 주말, 안국역 근처 치킨집에서는

스피치 모임 뒤풀이가 있었습니다.


남들 앞에서 조리 있게 말을 하거나

자신 있게 발표를 하고자 하는 분들이

오는 수업이었어요.


저도 그런 사람 중 1명이었구요. 


합정, 강남 등 다른 지역에서 수업을 듣던

스무 명 정도가 뒤풀이에 참여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면이었는데

스피치 모임이다 보니 다들 말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적은 편이었죠.


저는 오른쪽 끝 테이블에 앉아서

3명의 누님들과 "이상형 찾기"에 대해

얘기 하고 있었어요.


그때는 광고대행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광고주중 하나가 '연애 컨설팅' 이었거든요.


당시 광고주가 운영하는 컨설팅 클래스도 들어서

'연애'에 대해 이론은 빠삭했습니다.


사장님이 "광고주 상품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좋은 광고를 만들 수 있다"고 저를 떠밀었어요.


그럼에도 저는 솔로였습니다.


아무튼,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이상형을 찾는 과정은 믿기지 않겠지만

꽤나 과학적인 접근 방식이었습니다.


종이에다 펜으로 막 적어가면서 알려드렸는데

누님들이 굉장히 좋아하셨던 걸로 기억해요.

저는 초면에 왜 이런 걸 해드렸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다 보니 반대쪽 테이블에서도

펜으로 사람을 웃기는 제가 궁금했나 봐요.


갑자기 이쪽으로 오시더니

제 어깨를 톡톡 치셨대요.


저희도 궁금한데

이 쪽으로 잠깐 와주시면 안돼요?


어차피 이 자리가 끝나면 대부분은

볼 일이 없을꺼고, 혹시나 몇 명과 친해지면

또 그런 게 소모임으로 남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상형을 찾아드린 3명의 누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옮겼습니다.


앉자마자 폭풍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도대체 뭘 하길래 그렇게 박수치며 웃었냐고


"아.. 이상형을 어디서 만나야 할지 알려드렸는데요"


짝짝짝짝짝짝짝짝짝 x2

물개 박수를 치면서 자기들도 해달라고 합니다.

분위기가 좋아서 한분씩 해 드렸어요.


"남자친구가 몇 분 거리에 살았으면 좋겠어요?"

"지하철 타고 한 시간이요!"


지금 사는 집을 기준으로 대중교통으로

1시간 이내인 거리까지 원을 그립니다.


이 분은 분당에 사시니까

사당, 건대 근처까지도 포함 되네요.


"애인이랑 공유하고 싶은 취미가 있으세요?"

"러닝이요!"


아까 그렸던 원 안에서 러닝하기 좋은 곳을

찾아서 작은 원을 그립니다.


한강, 강남역, 분당 탄천등이 있네요.

그림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여기 보시면 두 번째로 동그라미 친 곳 있죠?

그런 곳은 보통 러닝 크루가 있습니다!


거기서 운동하시면서 처음에 말씀하셨던

나이, 성격등이 맞는 분을 찾으시면 됩니다"


뭔가 100% 확신이 든다는 느낌은 아닌데

기존 방법들보다는 좀 더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는 것 같아서 나은 것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1차가 끝나고, 이상형 찾기를

도와드렸던 몇 분과 함께 2차를 갔습니다.


이쪽 동네는 처음 와본데다, 술도 좀 더 먹고 싶었죠.

익선동까지 걸어가서 와인을 먹었습니다.


2차도 늦지 않게 끝나서, 지하철을 탔는데

같은 방향이었던 사람들은 다 남자분들이었어요.


괜찮았던 분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합니다.

같은 그룹이면 물어봐서 연락처 알려주겠다고


갑작스런 솔로들의 동기 사랑에 마음이 짠해집니다.

그러다 모두가 기억하는 분이 나타났습니다.


'그 분 괜찮으신 것 같아요. 말도 잘하시고'

'아! 얇은 남색 코트 입은 분 말씀하시는 거죠?'

'네네 그 분당 러닝 그분이요!'


음.. 모두가 그분이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고 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다들 보는 눈이 비슷한 것 같아요


그날 제 가슴속에는 저도 모르게

새끼 손톱만한 불꽃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9일 후


분당 탄천을 뛰는 러닝 크루에서 

이상형을 찾아야 했던 그 분과 저는

사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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